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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라펜아우어 네 집 근처의 양어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장난감 군함을 양어장에 띄웠다. 스크루는 잘 돌았고 배는 물살을 멋지게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도 바지 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씩 들었다. 배가 너무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르투어는 배를 몰면서 신이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적군을 향해 돌격! 포병들은 각자 제 위치! 준비, 발사! 가운데 대포는 포구를 좀더 위쪽으로 해서 발사! 꽝! 박살이다! 이겼다, 만세!"
아르투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큰 소리로 외쳐댔다. 나는 그게 뭐하는 소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해전을 지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처음에 대위에 불과했지만 전투에서 계속 이겼기 때문에 이제 프러시아의 해군 제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서 태엽을 감아. 그리고 배를 왼쪽으로 몰아! 적군의 군함은 지금 그 쪽에 몰려 있다!"
나는 아르투어가 시키는 대로 태엽을 감았다. 그러나 입으로만 싸우는 것은 어쩐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야, 해전이 벌어졌다면 뭔가 진짜로 터지는 소리도 나고, 그래야 재미있을 것 아냐? 군함 속에 화약을 집어 넣고 터뜨리자. 그러면 훨씬 더 재미날 거야."
"화약을 가지고 노는 건 위험해. 그랬다간 혼나. 그리고 우리 쾰른에서는 애들이 그런 걸 갖고 놀지 않는단 말이야."
"야, 하지만 입으로만 대포 소리를 내는 게 무슨 대장이냐?"
나는 낄낄 웃어 버렸다. 그러고 그가 화약을 다룰 줄 모른다면, 내가 대신 터뜨려 줄 테니까 명령만 내리라고 하였다.
"난 네 밑에서 대위 정도로 만족할 테니까 말이야."
그러자 그는 아주 좋아하면서, 명령만 내리는 거라면 자기도 얼마든지 화약을 터뜨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 해군 제독이 직접 대포를 쏜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 그러니까 난 명령만 내릴 거야. 넌 내 부하니까, 내가 명령을 내리면 대포를 쏘는 거야. 알았지?"
"그렇지."
나는 호주머니에 화약을 한 갑 넣고 있었다. 난 화약 한 갑 정도는 늘 가지고 다녔다. 나는 언제나 불꽃놀이를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화약 심지도 몇 개씩 잊지 않고 넣어 가지고 다녔다.
우리는 장난감 기선을 물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화약을 장치할 곳을 찾아보았다. 배 위에는 대포들이 있었지만, 그 대포에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갑판을 들어올리고 그 밑에다 화약을 장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갑판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와 마치 대포를 터뜨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했다. 연기가 보다 멋있게 피어 오르게 하기 위해서 화약 한 봉지를 전부 쏟아 넣어 버렸다. 그리고 갑판을 다시 덮고 벌어진 틈으로 심지를 꽂아 넣었다. 아르투어가 제대로 발사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틀림없이 멋있는 광경이 벌어질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근처의 나무 뒤로 뛰어가 숨더니, 전투를 시작하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때려부숴라! 때려 부숴, 용감한 대위야!"
나는 기선의 태엽을 감고, 화약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에 불이 제대로 옮아 붙을 때까지 기선을 꽉 잡고 있다가 앞으로 힘껏 밀어 보냈다. 스크루가 돌아가고 심지에서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었다. 아르투어는 미칠 듯 환호성을 질러대면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 뒤에선 나오지 않은 채였다. 고함을 질러대던 그는, 왜 터지는 소리가 나지 않느냐고 초조하게 물었다. 나는 심지에 댕겨진 불이 화약 있는 데까지 타 들어가면 곧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무 뒤에서 머리를 내밀며 소리를 질렀다.
"앞 갑판 대포 발사!"
그 순간이었다. '꽝!' 하고 무시무시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 때 나는 무언가 내 귀 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아르투어가 무섭게 비명을 지르면서 머리를 얼싸안은 것은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잇달아 '치지직' 불 꺼지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양어장의 수면 위를 가득 채웠다.
아르투어의 상처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무엇에 스쳤는지 이마의 살갗이 약간 찢겨서 피가 조금 내비친 정도였다. 아마 화약이 폭발할 때 납 병정이 튀어 나가 그의 이마를 스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 내비친 피를 닦아 주었다.
그는 자기 기선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물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서지고 남은, 기선 앞 부분의 일부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부분은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르투어는 그 모습을 보자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배가 없어지면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게 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스크루가 갑자기 빨리 돌아서 배가 손 닿지 않는 깊은 데로 흘러가 버려서 그만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라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두워진 다음에 집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쩌면 배 같은 것에 대해선 아무도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누가 배가 어디 있느냐고 묻거든, 저 안에 그냥 있다고 그러란 말이야. 이제 그건 별로 갖고 놀고 싶지 않다고 그러는 거야. 그랬다가 한 2주일쯤 지나거든 갑자기 기선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거지. 누가 훔쳐간 모양이라고 하면서..."
아르투어는 그러겠다고 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