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는 비숍 씨의 아들 아르투어를 만났다. 나하고 동갑내기라고 했지만, 키는 나보다 훨씬 작았다. 머리를 길게 길러 거의 어깨에 닿을 정도로 치렁치렁했다. 다리는 마치 새 다리처럼 가늘고 거기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 그것이 도회지 부자 집 아이들이 잘 입는 세일러복이라는 것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은 도대체 이 녀석이 사내아이인지 계집아이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아르투어 옆에는 안경을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아르투어의 가정교사였다. 그들은 라펜아우어네 집 앞에서 사람들이 건초를 쌓아 올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사람들 지금 뭘 하는 거예요?"

아르투어가 건초 말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음, 지금 건초를 말리는 거다. 저렇게 여러 번 뒤집어서 잘 말렸다가 겨울에 짐승들을 먹이는 거야."

가정교사의 말이었다. 그러자 아르투어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되물었다.

"짐승이요? 무슨 짐승 말이죠?"

그 때 내 옆에는 세크 로렌즈가 같이 서 있었다. 우리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르투어는 짐승이라니까 아마 사자나 코끼리쯤 기르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 따위가 우리하고 동갑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점심을 차려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고문관 비숍 씨가 오늘 우리 집에 또 오셨다. 너 보고 오후에 와서 그 분 아드님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시더구나."

나는 오후에 친구 렌쯔하고 낚시질하러 가기로 약속을 해 놓았다. 그래서 나는 그 집에 가기 싫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안나 누나가 당장 덤벼들 듯이 나섰다. 겨우 농사꾼 아이들하고 어울려 낚시질이나 다녀야 되겠느냐고 마구 야단을 쳐대는 것이다.

나는 내 친구하고 낚시질을 하는 것이 훨씬 재미도 있고, 집에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는, 내가 건초가 뭔지도 모르는 도시 아이와 노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루드비히야, 넌 점잖은 사람들과 어울려 예의범절도 익히고 견문도 넓혀야 한다. 넌 우리 집에서 하나뿐인 남자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넌 라틴어 학교 학생 아니냐."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는 데는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아서 한없이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별 수 없이 손발을 깨끗이 씻고, 어머니가 내주시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나서 세크 네 농장을 향해 집을 나섰다.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 비숍 씨 가족은 마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비숍 씨와 그의 아내, 아르투어의 누나처럼 보이는 처녀도 같이 있었다. 그 처녀는 내 누나 안나와 나이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안나에 비해 옷을 훨씬 잘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안나에 비해 갑절이나 뚱뚱했다.

"아르투어야, 얘가 내가 말했던 너의 이 곳 친구란다."

비숍 씨는 나를 자기 아들에게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들을 나에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아들을 소개하는 대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는 오늘도 순대에다 쇠간을 먹었겠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 뭘 먹었단 말이냐?"

"뭘 먹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하지만 순대와 쇠간을 먹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순대와 쇠간을 먹었을테지. 다른 걸 먹었다면 기억이 안 날 까닭이 없단 말이야."

그는 우리 식구들이 순대와 쇠간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한 번 도둑질한 사람은 다음에도 계속 도둑질을 한다고 믿는 법원의 판사님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그들도 매일 커피만 마시는 족속이란 말인가. 그들은 나에게도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먹어 본 커피 중에서 가장 맛없는 커피였다. 그런 커피를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시다니... 그들은 입맛을 몰라도 정말 한참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집 음식 걱정을 하고 있다니...

아르투어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가정 교사가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비숍 씨는 가정 교사에게 아르투어가 그 날 숙제를 다 했느냐고 물었다. 가정 교사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한 문제가 틀리기는 했지만 그만하면 벌써 상당히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비숍 씨가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오늘은 당신 혼자 산보도 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오. 아르투어는 이 튼튼한 라틴어 학교 학생과 놀 테니까."

가정 교사는 마치 검불처럼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숍 씨는 그에게 담배를 한 대 권했다. 아주 고급 담배이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피우라는 것이다. 그가 나가 버리자, 비숍 씨는 자기 식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저 친구를 데리고 온 건 저 친구에게는 큰 행운인 셈이야. 우리 아니라면 저 친구가 어떻게 이런 전원 풍경을 구경하겠어. 사람은 이렇게 남에게 은덕을 베풀 줄 알아야 하는 거다."

그러자 아르투어의 뚱뚱한 누나가 입을 뾰로통해 가지고 쫑알거렸다.

"난 저 사람 징그러워 죽겠어요. 계속 나만 멍하게 쳐다보잖아요. 이러다가는 저 사람도 요전 그 가정 교사처럼 시를 쓰지나 않을까 무서워요."

아르투어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투어는 나에게 자기 장난감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르투어는 장난감 기선을 가지고 있었다. 태엽을 감아주면 스크루가 돌아서 진짜 기선처럼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갑판 위에는 납으로 만든 병정 인형들과 뱃사람들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아르투어는 그것이 '프로이센 호'라는 군함이라고 말했다.

세크네 농장에는 그 배를 띄울만한 개울이나 연못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라펜아우어 네 근처 양어장으로 가서 그 배를 띄우자고 말했다.

"그러면 아주 재미있을 거야."

아르투어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배를 어떻게 거기까지 들고 가느냐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내가 배를 들고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뛸 듯이 좋아했다.

"넌 그렇게 힘이 세단 말이야?"

"이런 것쯤이야..."

우리가 아르투어의 방에서 나오자 거실에 앉아 있던 비숍 씨가 우리더러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라펜아우어네 집 근처 양어장으로 배를 띄우러 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르투어의 어머니가 질색을 했다.

"아르투어야, 그 무거운 걸 들고 다녀선 안 돼. 그건 너무 무겁단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것을 들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비숍 씨는 껄걸 웃으면서 말했다.

"저 녀석은 기운이 센 바이에른 놈이야. 매일 순대와 쇠간을 먹기 때문에 무거운 걸 들고 다녀도 괜찮을 거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