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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 방학이 계속되고 있다. 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4주일이 지났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너무 오래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고 한탄하곤 했다. 그것은 물론 내가 날이면 날마다 사고를 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누나도 나 때문에 집안 평판이 나빠진다고 덩달아 야단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초등학교 선생 바그너 씨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편이었다. 그는 학교 정원에다 과일 나무를 꽤 많이 심어놓고 있었고, 우리 어머니는 과일 나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환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어머니의 말대로 했더니 복숭아를 아주 많이 땄다고 치하하면서, 잘 익은 복숭아를 한 상자나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바그너 선생과 과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도 여름 방학이 많이 남아 있는데,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맞습니다. 라틴어 학교 학생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랑 똑 같은 나이 아닙니까.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긴 여름 방학을 준다는 것은 사실 곤란한 일이죠. 한창 개구쟁이 짓을 할 나이 아닙니까. 망아지가 우리를 벗어난 꼴이죠. 그러나 그런 걱정은 뭐 이 댁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라틴어 학교에 보낸 집은 어디라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라틴어 학교는 방학을 왜 이렇게 길게 주는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는 이제 방학이 거의 끝나 가지요?"
"이번 주일까지입니다. 다음주에는 벌써 개학입니다."
"실업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6년씩 다니는데... 그런 집 부모들은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바그너 선생은 웃으면서 일어났다.
"아무리 라틴어 학교 여름 방학이 길다고 해도 올 여름 안으로야 어떻게든 끝나겠지요. 너무 걱정 마십시오. 루드비히도 이제 철이 들기 시작하면 곧 점잖아질 겁니다."
"저 녀석이 점잖아진다구요? 그런 날은 아마 내 생전에는 오지 않을 거에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루드비히야, 너도 이제 학문을 전공할 라틴어 학교 학생이다. 그러니 어머님 속 좀 태우지 말아라. 알겠니?"
그러고 나서 바그너 선생은 가 버렸다. 나는 바그너 선생 말대로, 되도록 엄마 마음을 괴롭히지 말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바로 그 날로 사고를 또 한 번 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날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터에 나갔던 나는 빵집 앞을 지나다가 진열장 앞 창문턱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나는 잽싸게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 고양이를 겨냥해 힘껏 던졌다. 그러나 내 손을 떠난 돌은 어이없게도 진열장의 커다란 유리창을 와장창 깨뜨리고 말았다. 나는 잽싸게 몸을 숨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빵집 주인은 범인이 나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곧장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 값으로 5마르크나 받아 갔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되자 야단을 덜 맞기 위하여 평소 내가 쓰던 수법대로 집에 늦게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지독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옆에서 내가 야단 맞는 것을 지켜보던 누나까지 어머니에게 합세해 나를 몰아세웠다.
"아무리 야단을 쳐봤자 소용 없어요. 저 애는 내일이면 또다시 다른 사고를 저지를걸요 뭐. 저 애 때문에 앞으론 아무도 우리 집하고 왕래를 하지 않으려고 할 거에요. 어제는 길에서 법원의 그 총각 판사님을 만났는데, 아주 쌀쌀하게 굴지 뭐에요. 여느 때는 언제나 걸음을 멈추고 한참씩 웃는 얼굴로 집안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어제는 글쎄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까딱 숙이고는 그냥 가 버리지 뭐에요."
어머니는 이제 무슨 결단을 내려야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지는 어머니도 누나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밤새도록 머리를 맞대고 뭔가 궁리를 하였다. 그 결과, 너무나 끔찍한 방안을 내놓고 말았다.
그것은 다음주부터 개학하는 초등학교의 바그너 선생 반에 나를 집어 넣는다는 것이었다. 라틴어 학교가 개학할 때까지 나를 거기 맡긴다는 얘기인 것이다. 바그너 선생은 그 방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어머니 부탁이라면 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 바그너 선생은 4학년 담임이었다. 5학년이라면 거기에 내 초등학교 친구들도 아직 남아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사정사정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마치고 상급학교인 라틴어 학교에 진학한 내가 다시 초등학교 4학년 반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평생 동안 망신시킬 일이라고 몇 번씩 강조해서 얘기했다. 게다가 내가 라틴어 학교에 갔다고 부러워하던, 초등학교에 남아 지금은 5학년인 내 동창생들 앞에 내 얼굴은 뭐가 되느냐고 사정도 해 보았다.
나는 또 앞으로 남은 방학 동안 아무 사고도 저지르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할 테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온갖 일을 가리지 않고 사고를 저질러왔다. 하지만 어머니와 누나 앞에 그렇게 싹싹 용서해달라고 빌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특히 누나는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저 애 말을 믿었다간 우리 집은 이제 동네에서 외톨이가 되고 만단 말이에요!"
그래도 어머니는 달랐다.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얘야, 너도 들었지? 루드비히가 이제 딴 사람이 되겠다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저 애한테는 그렇게 창피한 일이라니, 한 번만 더 기다려 보자꾸나."
어머니 덕분에 나는 당장의 창피는 면하게 되었다. 그나마 사태가 그 정도로 끝나 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이튿날 하루는 침착하게 공부에만 매달렸다. 비록 라틴어 동사의 격변화를 순전히 엉터리로 외우고 쓰고 그랬지만, 라틴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어머니는 기뻐하는 눈치였다. 누나도 라틴어라면 어머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는 이렇게 엉터리로 공부를 하면서도 한껏 뽐내고 점잔을 떨었다. 그렇게 하루는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요일인 그 이튿날까지 그 짓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우리 이웃인 세크 네 농장에는 아직도 고문관 비숍 씨가 계속 손님으로 머물면서 피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 부인은 나만 보면 잔뜩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그 집 생나무 울타리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벌써 부엌일 하는 하인 아이를 불러 대면서 경보를 울리곤 하였다.
"앨리스야, 조심해라. 저 사고뭉치가 또 왔구나."
비숍 씨 부인은 앙고라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그 고양이도 언제나 그들과 함께 옆에 있었다. 비숍 씨 부인은 그 고양이한테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나비야, 우유 좀 마시겠니? 꿀이라도 좀 줄까?"
비숍 씨 부인은 마치 그 고양이가 자기 어린애나 되는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