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결의를 다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어린 양의 수업이 있는 날도 아니었는데, 그가 교장과 함께 우리 교실로 불쑥 들어왔다. 우리는 점심 시간이 끝나고, 우리가 좋아하는 부르크너 역사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부르크너 선생 대신 '어린 양'이 교장과 함께 들어서자, 우리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치들이 왜 나타났지? 너 혹시 걸릴만한 일이라도 저질렀니?"

나는 프리쯔에게 소근거렸다. 프리쯔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생각에 잠겼다.

"글쎄... 아주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처벌 받을 일은 없는데. 너는 어때?"

"나?"

"응, 너 말이야."

"난 없어."

"나도 없는데."

"하지만 저 두 작자가 같이 나타난 것은 틀림없이 또 누굴 혼내주려는 속셈일 거야."

우리는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짐작했던 그런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교장을 한 옆에 세우고 교탁 앞으로 나선 '어린 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어린애다운 천진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의 '어린 양'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으니 모두 기뻐하여라. 너희들의 목자인 이 팔켄베르크는 그 동안 푼푼이 절약한 돈으로 나의 여러 '어린 양'들을 휘해 성(聖) 알로이시우스의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을 하나 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학문을 탐구하는 젊은이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단다.
이 성자의 모습은 이제 우리 여러 '어린 양'들이 조회도 하고, 미사도 드리는 우리 학교 강당 안에 세워질 것이다. 그래서 이 성자님은 거기 거룩한 받침대 위에서 우리 여러 '어린 양'들을 내려다보게 되는 것이야. 그러니 우리 여러 '어린 양'들은 아래에서 성자님을 우러러보면서, 모쪼록 건전하고 두터운 신앙심을 기르도록 하여라."

그러고 나서 교장 선생이 팔켄베르크와 자리를 바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팔켄베르크 선생님이 그 조각상을 사신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며, 우리 학교 전체가 기뻐해야 할 일이다. 토요일에는 그 성인의 조각상이 이리 오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같이 시외까지 나가서 그 조각상을 모셔와야 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학교에서 뜻 깊은 제막식이 거행된다. 물론 이 뜻 깊은 이틀간의 행사에는 단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이상."

그들은 다른 교실에도 가서 그 말을 전하기 위해 부랴부랴 나가 버렸다. 나와 프리쯔는 수업이 끝나 교문을 나서면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린 양은 일부러 토요일을 골라 그걸 운반해 오게 했을 거야. 그 작자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꼴은 죽어도 못 보니까."

"그래 맞아. 그리고 일요일에 제막식을 한다는 것은 교장의 머리에서 짜낸 생각이겠지. 그 자도 야비한 것으로 따지자면 '어린 양'에 뒤지지 않을 거야."

우리는 두 사람의 욕을 한바탕 하고 나서, 그 조각품을 실어 오는 마차를 뒤집던지, 아니면 다른 조처를 해야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일단 프리쯔의 하숙집으로 가서 상의하기로 했다. 프리쯔의 하숙집 주인도 벌써 그 조각품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 지방 신문에 이미 그 기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토요일에 그걸 들여오고, 일요일에는 제막식을 한다고? 그거 참 안 됐구나."

그는 우리를 많이 이해해 주었다. 우리와 이야기도 나누고, 또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그도 팔켄베르크를 욕했다. 그의 아들 페피가 우리 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이웃에 사는 팔켄베르크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페피의 머리가 나쁜 탓이다.

프리쯔의 하숙집 주인은 신문에 실린 성인의 조각상에 대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흥, 그 작자가 학교에 뭐 대단한 것이나 바치는 것처럼 요란하게 광고했지만, 그건 사실 그런 게 아냐. 결코 동네방네에 잘했답시고 떠들게 못 된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그 조각상은 대리석도 아니고, 구리로 만든 것도 아니야. 그냥 석고를 부어 만든 거야. 그것도 훌륭한 조각가가 만든 게 아니라, 석회 공장 직공이 한 번 빚어본 거야. 쓰다 버리게 된 본이 있어서 말이야. 거기다 반죽을 부어서 구어 낸 것인데, 솜씨가 하도 거칠어서 도저히 팔 수 없는 물건이었지.

그래서 공장 마당 한 구석에 그냥 버려둔 채 2,3년 동안이나 눈, 비를 맞았던 물건이야. 그런 걸 팔켄베르크란 작자가 어떻게 발견해서 공짜로 얻은 거겠지. 그러고는 많은 돈이나 주고 산 것처럼 생색을 내는 셈이란 말이야. 그 작자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야. 그 작자는 지금도 내 이웃이지만, 고향에서도 나와 같이 자랐어. 그래서 나는 그 자식이 얼마나 위선자고, 옹졸하고, 간교한 줄을 잘 알고 있지."

그렇게 우리 셋은 '어린 양' 욕을 실컷 했다. 세 사람이 이렇게 한 마음으로 누굴 욕한다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 자는 어린 양이 아니라 강아지야."

"맞아, 파렴치한이지."

"세상의 법은 엉뚱한 사람들만 족치고 있는 거야. 상대를 잘못 고른 거지. 그래서 그런 작자가 설치고 있는 거란 말이지. 살인 강도보다도 실은 우선 그런 작자를 잡아 족쳐야 하는 건데."

"맞아요."

"지옥의 왕이 그 녀석을 본다면 시뻘겋게 단 인두로 다림질을 해버릴 거야."

"살이 너무 쪄서 다림질도 하려고 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걸."

"암, 적어도 2,3일은 족히 걸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