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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무척 착해졌다. 종교 선생 팔켄베르크는 우리에게 3주일 동안이나 영성체 준비를 시켰다. 그래서 나도 프리쯔에게 말했다.
"야, 이젠 우리도 좀 달라져야겠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지."
프리쯔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한 번 팔켄베르크에게 몹시 충격을 받았다. 팔켄베르크가 흐느껴 울면서, 자신이 이렇게 타락한 아이들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도저히 안내하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며 기도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는 그 때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누가 문 손잡이에다가 겨자를 발라놓은 것을 팔켄베르크가 봤기 때문이었다. 팔켄베르크는 보고 똥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나는 프리쯔가 그렇게 한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 때 팔켄베르크가 그걸 잡고 들어온 것을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때문에 우리를 데리고 그런 나쁜 장난이 없어지도록 반 시간 동안이나 우리를 붙잡고 기도를 드렸다. 그 시간이 끝나자 프리쯔는 우리가 함께 기도 드린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지 않았다면 팔켄베르크는 아직도 기도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도 해 주었다.
"프리쯔, 이젠 너도 달라져야 해. 마음만 먹으면 그건 무척 쉬운 일이야."
프리쯔는 내가 이미 사람이 바뀐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 난 이제 마음이 아주 경건해졌어. 내가 기도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 파니 아주머니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날 살펴보지. 몇 번 그러더니 페피 아저씨한테 가서 내가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고 그러는 거야. 파니 아주머니는 내가 이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나 역시 그런 것 같아. 난 이제 혼자서도 기도를 할 수 있어. 그것도 10분, 15분씩 말이야. 그리고 파니 아주머니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건 확실히 변한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지?"
"아주 쉬워. 하려고 마음 먹으니까 그렇게 되더라구. 그러니까 너도 노력해 봐."
프리쯔는 내일부터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구두장이 레텐베르거 집 창문에 돌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레텐베르거?"
"응, 난 오늘 그 자식 집 유리창에 돌을 던져야 해."
그 작자가 학교 수위한테 프리쯔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았다고 고자질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나도 함께 할 테니, 영성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프리쯔는 그 작자의 창문을 부수기 전에는 화가 나서 기도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레텐베르거는 프리쯔만 보면 언제나 웃어댔다. 어제도 프리쯔를 보더니 뒤에서 웃어대며 고함을 질렀다.
"옳지 네 놈이구나. 내가 다 봤다, 네가 하는 짓을! 요 사고뭉치, 못된 놈아!"
사태가 이렇게 험악하다 보니 나로서도 프리쯔가 옳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함께 행동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1주일 동안이나 영성체 준비를 해왔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준비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라틴어 학교에 다니느라 묵고 있는 파니 아주머니 네 집은 결코 지내기 편한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배가 고팠다. 파니 아주머니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하숙비를 충분히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배가 부르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서 내게 음식을 늘 조금씩만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라곤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나 하나에게서 하숙생 두 사람만큼의 이익을 남기려고 그러는 것 뿐이다.
파니 아주머니는 내가 기도하는 것도 빠짐없이 감시했다. 잠자기 전에 나는 묵상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위인들의 고해록을 대충 중얼중얼 읽는 것으로 그걸 대신했다. 밖에서 그걸 들은 파니 아주머니와 페피 아저씨는 이제 내가 믿음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페피 아저씨는 신앙심이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금 재판소의 서기지만, 원래는 신부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나는 페피 아저씨와 파니 아주머니가 대판 부부 싸움을 할 때 그 진상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페피 아저씨는 머리가 나빠서 신학교 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신학교 입학 시험을 무려 다섯 번이나 보았다면 이건 알쪼 아닌가. 그런데 이 페피 아저씨를 팔켄베르크가 좋아했다. 아저씨가 거의 매일 성당에 나가서, 사람들이 술집이며 거리에서 팔켄베르크 험담을 한 것을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이 집에서 하숙을 하도록 한 것도 이 아저씨의 그 알량한 신앙심 때문이었다. 이 아저씨네 집에 가서 지내면서, 아저씨처럼 신앙심이 두터워지도록 배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아무리 신앙심에 보탬이 된다고 해도 고자질하는 것 따위는 배울 생각도, 취미도 없다.
어머니는 얼마 전 이 아저씨에게 나의 영성체 받는 일을 좀 도와 주라고 편지를 보냈다. 페피 아저씨는 얼씨구나 하고 나섰다. 매일 저녁 저녁을 먹은 뒤 9시까지 내 앞에 버티고 앉아서 설교를 하곤 했다.
도대체 감동이라는 것은 느낄 수 없는, 지루하고 짜증나고 사람 미치게 하는 설교를 페피 아저씨는 자그마치 2시간 이상씩 끌었다. 그러고 나서는 술집으로 갔다. 이 세상에 술집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가 졸음이 올 때까지 꼬박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이 페피 아저씨가 어느 영성체 준비책에 씌어 있는 구절을 낭독했다.
'사람들은 날마다 자기 양심을 되살펴야 한다. 성자 이그나티우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 구절을 낭독하며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너도 성자 이그나티우스처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자기의 모든 잘못을 조그마한 공책에다 적어 그것을 베개 속에 넣고 잤다고 한다. 그렇게 잠을 자면서까지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것이다.
나도 그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 나의 잘못을 수첩에다 적어서 베갯잇 속에 끼워 두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명 베갯잇 속에 끼워 두었던 그 수첩이 온데 간데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날, 내가 학교에서 오자마자 페피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야 이 자식아, 너 지난 여름에 내 바지주머니에서 2마르크 훔쳐갔지? 내가 다 안다."
나는 비로소 이 작자가 내 수첩을 훔쳐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 작자의 주머니에서 훔친 것은 60페니히 뿐이었다. 수첩에다 돈 훔친 적이 있다고만 써 놓았지, 얼마나 훔쳤는지를 써 놓지 않은 것이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설마 그걸 훔쳐 볼 놈이 있으리라고는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피니 아주머니는 고해성사는 비밀이므로 그 사실을 우리 어머니에게 써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들이라면 정말 무슨 짓인들 못하랴 싶었다.
식사 후 페피 아저씨는 '영혼의 목욕'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것은 성 안토니우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성자에게 와서 고해성사를 하려고 했다. 성자는 그 사람에게 그 동안 지은 죄를 종이에 적으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고 나서 성 안토니우스는 그가 자기 죄를 한 가지씩 읽을 때마다 그 죄가 씻겨지게 해 주었다.
아저씨는 그 이야기를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파니, 이 얘기에서 우린 교훈을 찾아볼 수 있어. 성자가 죄 많은 사람의 죄를 하나씩 용서해준 것처럼, 우리도 이 애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겠어요. 이 애가 그 동안 자기가 저지른 죄를 남김없이 고백하기만 한다면 말이오."
나는 수첩에다 내 잘못을 두세 가지밖에 적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이 자는 지금 내 약점을 캐내 그걸 이용해 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당한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 당할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사람을 우습게 보는 작자다. 그런 점에서는 파니 아주머니도 여간 아니다. 한다는 말이 걸작이다.
"여보, 저 아이를 용서해주는 건 좋지만, 그전에 저 아이가 훔친 돈은 저 애 어머니가 물어내야 해요."
"당연하지. 그거야 모든 걸 정직하게 하기 위해서도 꼭 말씀 드려야지. 그래야 저 애도 마음이 홀가분해질 테니까."
"하지만 여보, 당신도 바지 주머니에 그렇게 돈을 많이 넣어 다니지 마세요. 술집에 한 잔 하러 가면서 무엇 때문에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가는 거에요? 맥주 세 잔이면 36 페니히밖에 더해요? 거기 있는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죠? 마치 월급 받아서 풍성풍성 돈을 쓰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당신 월급은 정말 그냥 빠듯하게 사는 데도 부족할 지경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우리가 저 애라도 맡지 않았더라면..."
"쓸데없는 소리 말라구! 저 녀석이 들었다가 또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알고..."
"당신이 바지 주머니에다 돈을 많이 넣어 다니는 걸 알면 보나마나 또 훔치려고 하겠지요, 뭐... 벌써 얼마나 훔쳐냈는지 어떻게 알아요. 물론 당신은 알 리가 없죠. 당신은 마치 자기가 장관이라도 된 것처럼 전혀 조심을 하지 않는다니까."
"저는 딱 한 번 60페니히를 꺼냈을 뿐이에요."
나는 듣다 못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말을 믿어줄 그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2마르크는 있었다. 그러나 네가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면 너를 용서하마. 이제부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유혹을 피할 것이며, 내 바지 주머니를 뒤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해라."
나는 무척 화가 났지만 그런 눈치를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성체가 끝나기만 하면 이 두 부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도록 혼내 주고야 말겠다... 페피 아저씨의 금붕어를 잡나서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딴 것이라도 찾아서 아주 망쳐놓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