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닷새가 지났다.

프리다 고모의 딸 안나도 올해 처음으로 영성체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 날은 프리다 고모가 안나를 데리고 페피 아저씨 집으로 와서 법석을 떨었다. 나는 속으로 욕지기가 날 지경이었다. 프리다 고모의 딸 안나는 못생긴, 꼴불견 변덕쟁이다. 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는 그 아이 칭찬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워낙 떠벌이는 바람에 나는 눈꼴 사나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프리다 고모는 파니 아주머니와 제일 가까운 사이다. 둘은 마주 앉기만 하면 늘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다.

프리다 고모는 저녁이면 자주 놀러왔다. 프리다 고모는 지난번에 왔을 때 나도 첫 영성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더니 페피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페피 아저씨가 참 좋은 일을 하십니다. 다만 그게 별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은 됩니다만."

그러더니 나더러 제대로 준비를 하고 있느냐고 심술궂게 물었다. 나는 벌써 2주일 전부터 영성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주일 전부터?"

"그래요."

그러자 파니 아주머니가 안나는 언제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느냐고 물었다. 프리다 고모는 안나도 2주일 전부터 해왔다고 말하면서 덧붙였다.

"똑같이 준비를 한다지만 실제 하는 건 천양지차야. 나는 아무래도 우리 안나 때문에 걱정이야. 첫 영성체라고 해서 어찌나 정성을 드리고 경건해졌는지, 몸마저 아주 약해졌다니까. 이 아이가 글쎄 뭐라고 했는지 들어보세요. 지난 금요일에는 애가 너무 약해진 것 같기에 고기 수프를 좀 끓였지 뭐유. 그런데 애가 통 먹으려 들어야지. 영성체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조금 먹는 건 건강을 위해 그러는 거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주실 일'이라고 하면서 달랬죠. 그랬더니, 이것 좀 봐요. 우리 안나가 뭐라는지 아시겠어요? '엄마, 안 돼요. 그게 아주 조금일지라도 그만큼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 아니겠어요? 전 안 먹겠어요' 아, 이러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지 않겠어요? 내가 보기엔 우리 애는 아무래도 너무 경건하고 착해요. 글쎄, 그게 조금일지라도, 하나님을 그만큼 괴롭히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니까요, 글쎄..."

이 수다에 파니 아주머니는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페피 아저씨는 가슴이 벅차서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돌아다보면서 나무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도 들었지, 안나 얘기를? 정신차려야 한다. 영성체는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야."

나는 안나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나의 이야기는 어느 성인의 이야기에 나와 있는 것이고,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벌써 읽고 배웠다고 해 주었다.

프리다 고모는 자기가 수다를 떤 것이 내 말 한 마디로 무너져 버리자 잔뜩 화가 났다. 그러더니 나는 거짓말만 하는 아이니까 내 말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 내 말이 사실이라 해도 자기 딸 안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어서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했다. 지난 밤에는 안나가 침대 위에 앉아 잠도 자지 않고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빵 껍질을 한 조각 먹어서 그것 때문에 그런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 물어보았죠. 네가 빵 껍질을 먹으면 먹은 거지 그게 도대체 네가 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그랬더니 얘가 하는 말 좀 들어 보세요. 식사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걸 먹었기 때문에 그건 군것질이라는 거에요. 또 그 빵 껍질이 자기 몫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해 드리는 일이란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울면서 다시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거지 뭐에요. 이 아이는 글쎄 이렇다니까요. 그저 속세를 떠난 아이 같기만 해요."

이 이야기도 나는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책에서 읽을 때도 감동을 못 받았는데 프리다 고모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또 그 말을 끄집어내면 쓸데없이 여러 가지 말을 주고받게 될까 봐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페피 아저씨 부부는 너무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페피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 안나 같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남의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2,3 마르크나 훔치고도 전혀 뉘우치지 않는 녀석도 있답니다. 세상 참... "

프리다 고모도 파니 아주머니에게 그 얘기를 벌써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게 모두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지 뭐유."

나는 그럼에도 잠자코 참고 듣기만 했다. 그래서 영성체 받는 날이 왔을 때는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그만큼 참았으면 나도 고행을 할 만큼은 한 셈이 되는 것 아닌가.

어머니는 내가 영성체 받는 날을 위해 검은 예복과 커다란 초를 보내주었다. 또 편지에는 참석하지 못해서 섭섭하다는 것, 그러나 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뜻을 세워 항상 어머니를 즐겁게 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물론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우리 학교에서 첫 영성체를 받는 아이는 모두 14명이었다. 학교 수위 부인은 우리들이 아주 훌륭해보이고, 정말 천사 같이 보여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안에는 시내의 여학교 학생들도 와서 줄지어 앉아 있었다. 안나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흰 옷을 입고, 머리는 고수머리로 지졌다.

안나는 제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는 내가 아주 착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나도 마음이 아주 순한 상태여서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날, 성당 안에서 내 모습은 평소의 내 모습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영성체에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앞으로 개구쟁이 짓은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 영성체가 끝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나는 파니 아주머니와 페피 아저씨 옆으로 갔다. 그 옆에는 프리다 고모도 서 있었다. 프리다 고모는 나를 보더니 대뜸 시비조로 나왔다.

"네 초가 제일 굵구나. 너만큼 굵은 초를 가진 애는 아무도 없다. 그 초는 우리 안나에게 사 준 것보다는 두 배 이상 비싸겠다. 네 어머니는 어쩌자고 그리 눈만 높은지..."

그러자 파니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야 고급 관리하고 결혼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과부가 되려면 하급 관리나, 없는 사람의 과부가 되어야 분수를 알 텐데..."

나는 방금까지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항상 우리 어머니 덕을 보면서도 우리 어머니를 좋지 않게 헐뜯는 이들을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리쯔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프리쯔의 하숙방에서는 길 건너의 프리다 고모네 집 안이 환히 들여다 보인다. 창문을 통해 거울이 달린 옷장이 정면으로 보였다. 마침 프리쯔는 새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잘 저녁, 프리다 고모 네 유리창과 옷장 거울은 박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