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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 되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줄을 지어 거리를 지나 행진하게 되었다. 맨 앞에는 교장 선생이 팔켄베르크와 함께 걸어갔고, 그 뒤를 다른 선생들이 따라갔다. 우리 담임 선생 구르바는 신교도인 까닭에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거리를 빠져 나가 한참 걸어가면 언덕길이 나타난다.. 우린 그 언덕 위에 멈춰 서서 조각상이 오기를 기다렸다. 거기서는 멀리 석회 공장이 있는 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그 마을까지 가지 않고 언덕에서 기다리게 된 것도, 그 성인 조각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학교 수위 영감님이 석회 공장 마을 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와, 성인상이 오고 있다고 보고를 하기까지 그곳에서 30분 동안이나 서 있어야 했다.
이윽고 언덕 아래쪽에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 위에는 큼직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팔켄베르크는 마차 앞으로 뛰어가서 마부에게 성 알로이시우스 조각상을 운반해오는 마차냐고 물었다. 마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상자 안에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팔켄베르크는 마차가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면서 화를 냈다. 상자에다 전나무 장식이라도 좀 해 오면 좋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마부는 자기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며, 자기는 다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팔켄베르크라도 이런 때 마부에게 무어라고 대꾸를 하겠는가.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마차 뒤를 따라 걸어갔다. 학교 강당에서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종이 울렸다. 마부는 강당 앞에 마차를 세우고 상자를 끌어 내리려 했다. 그러자 팔켄베르크가 말리고 나섰다. 팔켄베르크는 상급반 중에서 제일 몸집이 큰 학생 네 명을 시켜 상자를 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상자를 강당 안으로 운반시켰다. 네 명 가운데 두 명은 포인트나 하고 라이헨베르거였다. 나머지 두 명은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우리들은 이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종 소리도 그쳤다. 상급반 학생 네 명만이 남아 일을 거들면 되는 것이다. 제막식과 헌납식은 내일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조각상이 어디쯤 세워지는지 보아 두었다. 오른쪽에서 세 번 째 창문가였다. 그 곳에 받침대가 차려지고,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프리쯔와 함께 나는 교문을 나섰다. 그때 모범생인 프리데만이 우리를 따라왔다. 그가 옆으로 붙자 프리쯔는 동사 변화를 아직 공부하지 않아서 빨리 집에 돌아가 벼락 공부라도 해야겠다고 능청을 떨었다.
"동사 변화? 그런 숙제도 있었어?"
프리데만이 물었다.
"숙제가 있다는 게 아니구, 월요일에 시험을 보잖아."
"월요일에 시험을 봐? 난 처음 듣는 얘긴데?"
"구르바 선생이 며칠 전에 분명히 그랬어. 월요일에 동사 변화 시험이 있으니까 단단히 준비해 오라고 그랬잖아. 루드비히, 너도 들었지?"
"글쎄, 난..."
프리쯔는 프리데만 모르게 내게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 같다고, 아니 분명히 그렇다고 대꾸해 주었다. 그러자 겁이 많은 모범생 프리데만은 시험 칠 일이 걱정이 되어 곧장 우리를 떠났다.
"이제야 둘이만 남았구나."
"그런데 그 녀석은 왜 따돌린 거야? 월요일에 시험 본다는 소린 없었잖아?"
"물론 없었지. 하지만 그 녀석이 옆에 있으면 속 시원한 일을 꾸밀 수 없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는 이제 '어린 양'이 폭삭 주저앉을 지경으로 멋지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다고 소곤거렸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조각상에 돌을 던져서 그걸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자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프리쯔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진심이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 혼자서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속으로 좀 겁이 났다. 들키는 날에는 퇴학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리쯔는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게 감쪽같이 하면 될 것 아냐? 그리고 말야, 그 일을 해치운 뒤에도 '어린 양' 그 자식이 눈치채지 않도록 엄청 행동을 조심해야지."
우리는 8시 정각에 교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프리쯔와 함께 동사 변화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