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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계속 달렸다. 우리는 다음 정거장에서도 맥주를 사 마셨다. 맥주를 마실 때 나는 몹시 어지러웠다. 그러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빙빙 돌기 시작했다. 뱃속도 심상치가 않았다. 소화를 거꾸로 시키는 것일까? 그 동안 마시고 삼켰던 것들이 입으로 올라 오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밀어 보았다. 그렇게 하면 혹시 좀 나아질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의 효과가 없었다. 뱃속은 한층 더 부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담배를 피우고 맥주 마신 것 때문에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이런다고 여기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 아닌가.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온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소용이 없었다. 나는 후닥닥 모자를 집어 들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부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꼬라지 좀 보라구.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게 바로 저 놈들 본색이 드러난 거야. 저 자식들이 개울에다 코를 박고 죽지 않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만."
"잘 논다. 잘들 놀아."
입 가진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나는 몸이 너무나 괴로워서 한 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저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이 고통이, 이 괴로움이 가셔 주기만 한다면 두 번 다시 술 담배 따위는 입에 대지도 않을 텐데... 그 뿐만 아니라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고, 어머니를 노엽게 하고 슬프게 하는 짓거리는 다시는 하지 않을 텐데...'
나는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이토록 괴롭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자 속에 이 따위 배속에서 토해 낸 것을 담고 있는 것보다는 주머니 속에 좋은 성적표를 넣어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리쯔는 내가 순대를 먹고 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도 술 담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우겼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게 하기 않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쯔의 거짓말이 못마땅했다. 나는 고통 때문에 갑자기 정직한 아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쯔의 거짓말이 싫어졌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지금 나를 낫게 해 주신다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다. 그러나 옆에 앉은 부인은 나의 이런 마음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 냄새를 참아야 하느냐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프리쯔가 내 손에서 모자를 낚아채 기차 창문 밖으로 내밀어 털었다. 그러나 토한 것은 바람에 날려 대부분 창틀로 흘러내렸다.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 기차 화물계원이 올라와서 소리를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자식이 저렇게 지저분하게 만들어 놨어? 이봐, 차장. 기차가 어디 돼지 우리야?"
차장이 곧 달려와서 더러워진 창틀 근처를 살폈다.
"누가 이렇게 쏟아 놓았소?"
"아까 맥주병을 내던졌던 그 어르신네지. 당신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았소? 바로 그 양반이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오."
군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화물계원이 물었다.
"맥주병은 또 뭐요? 그게 어떻게 됐다는 거요?"
"맥주병이야 맥주병이지 뭐긴 뭐겠소? 빈 맥주병이지."
"내가 맥주병을 내던지도록 허락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정말 비열한 사람이군!"
이번에는 차장이 뚱보 군수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러자 뚱보 군수도 지지 않고 차장에게 대들었다.
"내가 뭐라고?"
"당신은 비열한 거짓말쟁이란 말이야! 나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 적이 없단 말이오!"
화물계원이 둘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사이로 끼어 들어 중재에 나섰다.
"자, 그렇게 고함을 칠 필요는 없습니다. 다들 조용히 해결하셔야죠."
그러나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와글와글 떠들면서 나섰다. 프리쯔와 내가 형편 없는 개망나니들이라는 것이다.
"저 녀석들을 잡아 가둬야 합니다. 맛을 보여야 해요."
"맞습니다. 감옥에 집어 넣어야 한다구요."
제일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사람은 초등학교 선생이었다. 그는 자기가 교육자라고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는 너무 몸이 불편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프리쯔가 나를 대신해서 화물계원을 상대하고 나섰다.
"기차역에서 상한 순대를 사 먹고 탈이 났다면, 그건 상한 순대를 먹은 사람이 잘못입니까, 아니면 그런 걸 판 쪽이 잘못한 겁니까? 어느 쪽이 감옥에 가야 하는 겁니까?"
화물계원은 아무도 구속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틀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돈은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비용은 1마르크라는 것이다.
우리는 1마르크를 화물계원에게 주었다. 그리고 창틀은 다시 깨끗하게 치워졌다.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나는 바람을 쐬려고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놓았다.
프리쯔는 엔돌프에서 내렸다. 그리고 얼마쯤 더 가서 기차는 내 고향 역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나를 역에까지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몸이 좋지 않았다. 머리도 계속 아팠다.
밤이어서 얼굴이 창백한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나는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키스를 해주더니 당장 물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냐, 루드비히야?"
안나도 옆에서 물었다.
"루드비히, 너 모자는 어쨌니?"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면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방앗간 마을에서 상한 순대를 먹고 혼이 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뜨거운 차를 좀 마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니 식당에 불이 밝혀져 있었고,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 가정부인 테레즈 할멈이 달려 나와 나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 맙소사, 우리 도련님 얼굴이 저게 뭐람! 두 분이서 우리 도련님을 너무 공부만 시켜서 저렇게 가엾게 됐지 뭐에요!"
어머니는 내가 좋지 못한 것을 먹어 그렇다면서 빨리 차를 끓여 오라고 말했다. 테레즈는 부엌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았다.
우리 집 삽살개는 나에게 계속 뛰어오르면서 혀로 핥으려고 했다. 내가 돌아온 것을 모두들 기뻐하고 있다. 나는 마음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어머니가 그 동안 착실히 지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늘 착실하게 지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앞으로는 정말 착실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상한 순대를 먹었을 때 당장 자빠져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고 위로해 주더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 때, 이제부터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어머니가 기뻐할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하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벌을 받았다는 따위 소식은 두 번 다시 집에 전해지지 않도록 하겠노라고, 식구들이 나를 모두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안나 누나가 그러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말했다.
"너 가만히 보니 성적표가 형편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니?"
누나가 또 다시 날 붙잡고 꼬치꼬치 심문하려는 것을 어머니가 막아 주었다.
"안나야, 그런 얘긴 꺼내지 마라. 루드비히는 몸도 성치 않고, 이미 새 사람이 되려고 결심하고 있지 않니. 우린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단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테레즈 할멈도 내가 거의 죽을 상이 되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집안이 떠나가라고 크게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도련님이 너무 공부를 해서 그래요. 두 분이 우리 도련님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거라구요."
할멈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어머니는 할멈을 달래야 했다.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누우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편안했다. 어머니는 내 방의 불을 꺼 주시면서 어서 몸이 낫기를 빌어 주셨다.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리에 가만히 누워서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