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휴가철이 왔다. 나는 집으로 가려고 페피 아저씨네 집을 나섰다. 그 때, 파니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네 어머니를 찾아 뵐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꼭 한 번 오라고 간곡히 초대하셨는데도, 여지껏 가지 못했지 뭐니.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어머니를 섭섭하게 해 드릴 순 없을 것 같구나."

아주머니는, 페피 아저씨는 일이 많아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아저씨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면 페피 아저씨도 아마 같이 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히려 여름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지금은 날씨도 춥고, 또 언제 눈이 내릴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우리가 이번에도 찾아 뵙지 못하면 아마 너희 어머님이 무척 화를 내실 거야. 우린 벌써 여러 번이나 찾아 뵙겠다고 약속을 드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굳이 우리 집에 오려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부활절이면 우리 집에서는 햄이며, 케이크, 과일 등을 푸짐하게 장만한다. 페피 아저씨는 먹성이 무척 좋아서 이렇게 푸짐한 음식을 맘껏 먹고 싶은 것이다.

페피 아저씨 집에서는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 생각은 하지도 않느냐고 파니 아주머니가 당장 바가지를 긁어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절약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들은 나를 우편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페피 아저씨는 나를 데려다 주면서 내내 살갑게 굴었다. 자기가 우리 집에 오면 나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내 성적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화가 난 것을 진정시켜 드릴 수가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내 성적이 형편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아저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저씨가 오면 나에게 손해가 되면 됐지, 유리할 것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기차로 갈아 탄 후 담배를 피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우편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는 것이 오히려 귀찮았다. 담배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리쯔는 벌써 버스 안에 들어가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사지 못했다고 그랬더니, 그는 자기가 넉넉히 가지고 있다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방앗간이 있는 마을 정거장에서 더 사면 된다는 것이다.

우편버스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법원의 수석 판사인 씨른기블 씨가 자기 아들 하인리히와 같이 차 안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교장 선생의 친구라는 것, 학생들의 잘못을 낱낱이 일러 바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즉시 자기 아버지에게 우리가 누구라고 일러 바쳤다. 녀석은 자기 아버지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지만, 나는 녀석이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쟤가 우리 반에서 꼴찌에요. 종교 과목도 겨우 낙제점을 면했구요."

수석 판사가 나를 쳐다 보았다. 마치 내가 동물원에서 기어 나온 구경거리인 것 같은 눈초리였다. 그는 우리를 그렇게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판사는 우리 옆으로 와서 프리쯔를 보고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 성적표 좀 보여 주련? 내가 우리 아들 하인리히 성적표하고 비교 좀 해 보고 싶구나."

나는 성적표가 가방 속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행 가방은 지금 버스 지붕 위에 올려놓아 성적표를 꺼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껄걸 웃었다. 그리곤 자기도 그걸 잘 안다, 하지만 좋은 성적표는 언제나 주머니에다 넣고 다니는 법이라고 말했다. 버스 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나와 프리쯔는 방앗간 마을 정거장에서 버스를 내릴 때까지 화가 나서 죽을 뻔했다.

프리쯔는 누구에게 자기 증명서를 내보여주는 사람은 전과자들 뿐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나 역시 형사 따위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무례한 요구는 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아닌가.

우리는 방앗간 마을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마셨다. 그랬더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기차에 올랐을 때는 맥주를 꽤 마신 뒤였다.

우리는 차장에게 흡연실이 어디 있는지 물어 거기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벌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몸이 어지간히 뚱뚱했다. 조끼에 늘어뜨린 시계줄에는 은으로 만든 커다란 말이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기침을 할 때마다 은으로 만든 말이 그의 배 위에서 춤을 추며 잘그랑거렸다. 다른 자리에는 안경을 낀 조그마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뚱보에게 꼭 군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뚱보는 그 조그마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 체구가 작은 사람이 선생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가 머리를 깎지 않은 것만 봐도 그런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기차가 출발하자 프리쯔는 여송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뚱보를 향해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나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내 옆에는 어떤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몸을 뒤로 멀찍이 젖히면서 나를 째려보았다. 다른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우리를 넘겨다 보았다. 사람들이 놀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기분이 무척 유쾌했다. 프리쯔는 여송연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고 말하면서, 몇 갑 더 사야겠다고 떠들었다. 뚱보 사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혀를 끌끌 찼다.

"잘 한다, 잘 해. 새파란 자식들이 꼴 좋구나. 싹수가 노란 녀석들이야."

이번엔 조그마한 선생이 뚱보의 말을 받았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을 보면 신문에 나는 기사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어요. 이런 녀석들은 앞으로 신문에 날 사건을 저질러 교도소로 직행하는 겁니다. 그밖에 다른 길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세했다. 옆자리의 부인은 내가 계속해서 연기를 내뿜자 자꾸만 뒤로 물러앉았다. 초등학교 선생 같은 그 작은 사내가 우리를 너무 험상궂게 째려봐서, 우리는 모르는 척하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프리쯔가 그들에게 한 마디 하기 시작했다.

"이봐 토마 군, 자네는 우리 라틴어 학교의 신입생 녀석들이 왜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글세, 도대체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뻔해요. 보나마나 요즘 초등학교 교사들의 질이 워낙 형편 없기 때문일세. 날이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게 바로 그들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