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내가 어디서 무슨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요즘 들어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일을 저지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얼굴을 대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프리다 고모 때문이었다.


"얘들아, 큰일났구나. 프리다 고모님이 내일 모레 우리 집에 오신다고 연락을 해 오셨다."

안나도 그 소식을 듣고 얼굴빛이 싹 변했다.

"그 고모가 이리 오시게 되면, 이제 우리 집안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야. 판사님도 그 고모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우리 집에 발을 끊고 말 거야. 도대체 엄마는 왜 그 고모를 오라고 하셨어요?"

"내가 오시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오겠다고 하고서는 자기 발로 오는 거지. 지금까지 다른 친척들은 초대한 적이 있지만 그 고모는 단 한 번도 오시라고 한 적이 없었어.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오시곤 한 것이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내가 고모를 쫓아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루드비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버릇없이 굴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그 분은 돌아가신 너희 아버지의 동생 아니냐? 그리고 너는 아직 그런 집안 일에 나설 나이가 아니란다."

"그렇지만 상대가 프리다 고모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아요? 세상에서 그 고모 좋다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거에요."

내가 말했다. 안나도 이번에는 나의 말에 찬성했다. 안나는 프리다 고모가 싫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더욱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나가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오게 하려고 이 문제를 지적했다.

"프리다 고모는 아마 얼씨구나 하고 그 총각 판사를 모욕하려고 들 거야. 그래서 총각 판사가 누나하고 결혼할 마음이 싹 가시게 하려는 거지. 그렇게 되면 아마 고모는 너무 좋아서 신바람이 날걸. 그것만으로도 우리 집에 왔던 보람을 느낄 거야. 고모는 판사를 보면 대뜸 눈이 왜 그러느냐는 둥, 사팔뜨기라는 둥 그런 말을 꺼낼 거야.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할 말부터 꺼내놓을 거라는 얘기야."

그러자 안나가 나에게 소리쳤다.

"그 사람은 전혀 사팔뜨기가 아니야. 이 뻔뻔스러운 망나니 녀석아! 저 녀석은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뭐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그 얘기를 놓고 수근거리고 있어. 난 몰라.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을 나가서 어디 취직이라도 하고 말 테야."

그러고서는 안나는 엉엉 울었다.

"얘, 안나야, 울지 말아.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게 다 잘 될 거다. 고모는 그저 잠깐 다녀가시는 건지도 몰라."

고모 이야기를 주고받은 건 월요일이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드디어 고모가 왔다. 우리 집 세 식구는 역까지 고모를 마중 나갔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누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나야, 제발 겉으로라도 좀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어라. 그런 얼굴로 있다간 필경 오늘 중으로 무슨 싸움이 대판 벌어질 것 같구나."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기차가 멈춰 서자 프리다 고모가 맨 먼저 내리면서 소리쳤다.

"어머나 이것 좀 봐. 온 식구가 다 마중을 나와 주었군. 참 반가워요. 나 좀 거들어 주겠니? 내 짐을 좀 내려야겠구나."

고모는 기차 안을 들여다보면서, 거기 서 있는 어떤 사람에게 그 상자가 자기 것이라고 손짓을 했다. 또 좌석 밑에 있는 트렁크와 그 위의 손가방, 그 뒤에 있는 앵무새 새장도 자기 것이라면서, 그걸 좀 꺼내달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물건들을 아무 소리 없이 모두 밖으로 내주었다. 고모는 그것을 받아서 모두 내게 떠안겼다. 나는 트렁크가 너무 무거워서 들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안나가 너를 거들어 주면 되지 않니? 젊고 튼튼한 것들이 그런 것도 들지 못한다면 말이 안돼. 앵무새 로르는 내가 꼭 들고 가겠다."

그러고 나서 프리다 고모는 우리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건강한 걸 보니 반가워요. 형님 심장병 때문에 나는 늘 걱정이었다우.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보니까 내가 공연히 걱정을 한 셈이네. 아주 씨름꾼처럼 튼튼해 보이는데요. 형님, 안 그래요? 아이구, 죽겠다... 얘들아, 제발 이 새장 가까이에는 오지 마라. 우리 로르란 놈이 워낙 낯을 가려서 말이야, 낯선 사람이 오는 건 아주 딱 질색이란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받아서 내려놓은 커다란 트렁크를 보더니, 역의 일꾼을 시켜서 운반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다 고모는 금방 반대했다.

"아니에요. 형님이 괜한 비용을 쓰시게 할 수는 없어요. 아이들이 잘 나를 텐데 왜 아깝게 돈을 버려요."

안나가 들어보려고 했지만, 그 트렁크는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운반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역의 일꾼 알로이스가 와서 트렁크를 짊어졌다. 그러자 프리다 고모는 우리가 돈을 너무나 헤프게 쓴다고 나무랐다. 그리고 안나가 그렇게 약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소리를 질렀다. 겉보기에만 멀쩡하지 어렸을 때부터 골골하더니 커서도 이렇게 약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어머니로부터 심장병을 물려받은 게 아니냐고 떠들었다.

"난 사실 형님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형님도 허우대만 좋았지, 속은 다 망가진 거나 마찬가지지 뭐에요."

그러자 어머니가 대꾸했다.

"고모도 그런 걱정일랑 마세요. 나는 아주 건강해요. 의사가 진찰해도 나는 아무런 병도 없다고 그런답니다."

"어머나, 그 따위 의사들 말은 하지도 말아요. 의사들은 우리 영감이 죽을 때까지도 아무 탈도 없다고 그랬다구요. 형님도 이제 다 사신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유령이 걸어 다니는 셈이라고 해야 할 거에요."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안나는 내 귀에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얘, 아직은 좀 더 내버려 두자. 아무래도 고모가 방학 동안 내내 우리 집에 머물러 있을 모양이다. 두고 봐."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곧 떠나시겠지."

"애개개, 배짱 편한 소리 마, 얘."

"곧 떠나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지 뭐."

"어떻게?"

"어떻게든지."

누나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믿음직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여느 때는 내 얼굴만 보면 얼굴을 찌푸리던 누나였는데...

"루드비히야, 난 너만 믿고 있을게."

"좋아."

"그래, 어떻게 할 거니?"

"지금은 나도 알 수 없어. 앵무새한테 침이나 자꾸 뱉어줄까? 아니면 그 자식의 털을 다 뽑아서 아주 벌거숭이를 만들어 주던지. 하지만 정작 일을 벌이기 전에는 꼭 집어서 뭘 할 것인지 나도 알 수 없어. 여하튼 고모님이 최고로 약이 오르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지."

"고모님이 빨리만 떠나가게 무슨 수든 써 다오. 만약 성공한다면 내가 너한테 2마르크 줄게."

누나는 여전히 귓속말로 말했다.

"그거 좋지. 하지만 우선 1마르크 정도 선금으로 주면 좋겠어. 아무래도 비용이 좀 들 것 같으니 말이야."

누나는 집에 도착하는 대로 선금으로 1마르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빨리 걷지 못하는 어머니는 프리다 고모와 함께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프리다 고모는 현관에 척 들어서자마자 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구, 결국 내가 여길 또 왔구나! 지난번에 떠날 땐 이 집에 두 번 다시 발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너무 마음도 약해서 탈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웬일로 집안이 이렇게 호사스럽지? 아이구머니나, 세상에 형님, 마루에다 양탄자를 새로 깔았구려!"

어머니는 겨울에 바닥이 너무 차서, 식구들 건강을 위해 양탄자를 깔았다고 했다.

"저걸 깔려면 적어도 1미터에 4마르크는 들지. 1마르크 50페니히만 주어도 좋은 것을 살 수 있는데, 아무튼 형님은 도무지 돈 아까운 줄을 몰라요. 저 비싼 걸 마루에다 온통 깔다니...! 난 가슴이 다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요. 형님이 무슨 돈이 그렇게 많다고 저렇게까지...!"

프리다 고모의 듣기 싫은 소리는 끝이 없었다. 어머니는 안나나 내가 뭐라고 말대꾸를 해서 싸움이라도 벌어질까 봐, 고모를 얼른 손님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고모의 짐을 그리로 들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