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와 나는 말없이 상대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편하고 침착했다. 그건 영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른 때라면 나는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영애를 그처럼 태연하게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것이 내가 그 창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애도 내가 앞으로는 그 골방에 숨어서 그녀를 훔쳐볼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은 염산에서 생활해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염산에 간 것은 아버지의 새 직장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굴건을 쓰고 나타난 내 모습을 오랫동안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영애는 이윽고, 돌아서서 마당 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이 어쩐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제 숨바꼭질은 끝났다. 그 작은 골방 속에서 내가 바라보던 세계, 조그만 창으로 제한된 그 은밀한 세계도 없어졌다. 장례를 치르고 바로 다음날 우리 가족은 염산을 떠났다. 이삿짐도 없었고 특별히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홀가분하게 염산을 떠날 수가 있었다.

 

비오는 날 그 언덕 위의 마을에 다녀왔던 나는 겨우 나흘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그 동안에 여름방학이 끝나 등교 준비를 하느라고 나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나흘씩이나 나는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그 꼬마아가씨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도 그 무렵에 나는 거의 맹렬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이웃 동네 먼 동네 할 것 없이 밤이 이슥해서 거의 눈앞이 안 보일 때까지 돌아다녔다. 그건 삼년 동안의 수인과 같은 생활 뒤에 오는 아주 자연스런 욕구라고 할 수 있었다. 요컨대 움직이는 자유를 실컷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욕구 속에는 자신의 시야를, 내면의 시야가 아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벽돌집과 기와집이 뒤섞여 모여 있는 마을 풍경, 넓은 도로와 비탈길, 구멍가게들이 총총히 늘어서 있는 변두리 마을의 골목 풍경, 이런 따위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이 그때 내 눈에는 마치 세상이라는 걸 처음 보는 미개인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처럼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렇지만 염산의 창을 완전히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내겐 아직 염산의 창에 매달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살아 있었다. 그건 육안의 시야를 넓히겠다는 욕구와 어느 모로 봐도 상극이었다. 한동안 나는 내가 그 창을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내게 남아 있는 건 그 창에 대한 희미한 기억뿐이라고 내심 치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 창의 기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닌, 생생한 욕망의 일부로 내면 깊은 곳에 살아 있었다. 다만 일시적으로 대상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잊었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그 비탈길 언덕의 마을에서 갑자기 유리창 저쪽에 나타난 계집아이를 보았을 때 염산의 창을 통한 구도는 훌륭하게 되살아났다. 그 계집애는 영애와 꼭 닮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용모가 꼭 닮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말씨나 목소리, 성격도 닮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용케도 그녀는 영애와 목소리나 말씨, 그리고 몸짓이 닮았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청결한 분위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건 영애가 처음에 내 시선을 붙잡아 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전체적인 구도는 물론 그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자유로운 입장이고 그녀 쪽이 갇힌 몸이었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구도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수인이고 자유로운 쪽은 그 계집아이였다.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수인이었다. 심리적으로도 나는 얽매인 몸이었다. 거기에 비해 그녀는 실내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인다.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고 다시 또 숨어 버리는 쪽도 그녀였다. 따라서 표면적인 구도 따위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