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미 아는 얼굴이라는 걸 발견한 그녀와 나는 야트막한 블록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빤히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낯선 사람이 아니고 구면이란 사실이 신기한 듯 처음에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약 3분 쯤 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에 나는 그녀와의 예기치 못했던 재회의 즐거움을 혼자서 마음껏 즐겼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그러나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마치 기적처럼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어떤 불행의 징조일지 모른다는 막연함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기적 같은 행운에는 거기에 버금가는 불행이 따르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오랫동안 이쪽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우스웠던지 갑자기 입가에 픽 웃음을 홀렸다. 그리고 그 웃음을 계기삼아 이윽고 그녀의 변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한번 웃고 나서 금방 자기가 언제 웃었더냐는 듯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마치 내가 거기 서 있다는 게 자기를 몹시 화나게 만든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자연히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체 했다. 그녀는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곧 그녀는 창문을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닫아 버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창문 안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녀가 자취를 감춰 버리자, 내 시야는 다시 사막으로 돌변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마치 두 발이 그 자리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다시 창문에 나타나 화해의 웃음을 보여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지 않고는 결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그 계집애의 출현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비탈길에는 행인도 뜸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방은 불도 켜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군용 지프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비탈길을 올라왔다. 지프는 내가 서 있던 빈터를 지나 천천히 빨간 벽돌집 대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엔진을 끄고 멈춰 섰다. 지프에서 경적이 두 번 울렸고 군복을 입은 남자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벽돌집의 대문이 열리고 부인과 딸 그리고 꼬마 사내아이가 함께 뛰어나왔다.

 

이미 너무 어두워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자기 엄마와 함께 아빠를 마중 나온 아가씨는 틀림없이 그녀였다. 아빠와 무슨 얘기를 쾌활하게 주고받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군인 한 사람은 상관이고 한 사람은 그의 부관이거나 운전병인 것 같았다. 그들은 차를 밖에 세워두고 모두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소란하던 주변이 다시 정적에 잠겨들었다.

 

나는 결국 그날 그녀의 출현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빈터에서 떠났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내일이나 그 다음날 어김없이 이곳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와 나 사이에 이미 숨바꼭질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기묘한 숨바꼭질은 사실은 내게는 가장 익숙한 세계이고 또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대학에 들어가기 일 년 전까지 나는 염산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3년 동안 살았다. 아버지는 염산어업조합출장소에 근무하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음주벽이 심하셔서 가족들의 생활은 근근이 나날의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하는 일 없이 집 안에 숨어서 놀고 지냈다. 

 

집 안에 숨었다고 하지만 염산에 무슨 거리나 상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 자동차를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건 염전에서 소금을 싣고 밖으로 나가는 트럭이었다. 우리 집 마루에서 바라보면 소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멀리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를 먼지를 일으키며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