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일 하는 일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창 앞으로 다가가서 영애가 내 시야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일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영애는 나에 비하면 무척 바쁜 아이였다. 그 애는 학교에도 가야하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염전에도 다녀와야 했다.
일요일에는 영애는 더욱 바빠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에서 가장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영애도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을의 공소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마을의 공소는 영애네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산비탈 중턱에 있었다.
영애가 그만큼 바빴기 때문에 자연히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나는 기다리는 일에는 곧 아주 익숙해졌다. 어떤 때는 다섯 시간을 줄곧 창가에 서서 시야에 영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일도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도 그녀를 못 볼 때도 많았다.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씩 다리가 휘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마당 한쪽 모퉁이에서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나타나면 나는 전신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고 마음속에 드리워 있던 그늘이 금방 걷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타날 때는 그녀는 능청스럽게도 일부러 쌀쌀맞은 표정으로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당가를 왔다 갔다 하거나 공연히 빗자루를 들고 나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마당을 쓰는 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능청은 고작 반 시간도 버티지를 못했다. 어느새 영애는 다시 쾌활하게 떠들고 애교를 떠는 본래의 영애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 마음의 조바심을 아주 세밀하게 읽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즐거움과 낙망의 파문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그녀는 읽고 있었다. 나도 영애의 마음속을 얼마간 읽고 있었지만 이 싸움에서는 나는 영애의 적수가 아니었다. 나는 갇혀 있고 그녀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야는 그녀가 전부이고 그녀에게는 나 같은 존재는 다만 형체가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 창에서 영애를 마지막으로 본 건 늦은 가을 저녁때였다. 그나마 그날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일부러 영애를 보기 위해 창 앞에서 그녀의 출현을 기다릴 만큼 내가 한가하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그날 운명하셨던 것이다.
나는 졸지에 상주가 되어 문상을 하려고 물려오는 마을사람들을 맞느라고 종일 마당에서 서서 지냈다. 누군가가 나더러 너무 피곤할 테니 손님이 뜸한 틈에 잠깐 방으로 들어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그 집은 방들이 너무 좁아서 빈소는 마당에 마련했었다.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의 골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도 마을의 여인들이 몰려들어와 상복을 만들고 손님에게 내놓을 음식을 만드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창 앞으로 다가가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창 가까운 곳에 영애가 다가와 서서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처럼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창문을 그렇게 혼자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내가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애는 뜻 밖에 내가 나타나자, 흠칫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달아나지는 않고 물러선 그 자리에서 아주 조용한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때라면 그런 경우 그녀는 멀리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나는 그때 머리에 굴건을 쓰고 있었다. 상복은 아직 마련이 되지 않아 그냥 늘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