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바다와 염전에서 내지로 깊숙이 들어온 곳에 낮은 야산을 둥지고 있었는데 불과 삼십여 호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는 제법 넓은 간척농지가 있고 그 농지가 바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염산에 처음 왔을 때는 바다의 소금 냄새와 맑은 공기에 이끌려 나도 부지런히 제방과 들길을 돌아다녔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 잠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집안에 숨어 버렸다. 진학을 못한 것이 점점 큰 수치심으로 변했고 더욱 심해진 아버지의 주벽으로 사춘기의 자존심을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지탱할 수가 없었다. 노골적으로 우리 가족과 나를 비웃는 녀석도 있었다. 아마 우리가 외지인이기 때문에 일종의 적대감에서 필요 이상으로 아이들이 우리 가족의 동정에 민감했는지 모른다.
일단 집 안에 숨어 있게 되자, 나는 바깥 출입이 점점 더 무서워졌다. 사람들의 눈길과 말소리와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까지 까닭 없이 두려웠다. 나는 내 방으로 쓰고 있던 한쪽 골방에서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 골방에는 시골 가옥에는 흔치 않은 제법 큰 창이 있었다. 그 방에 창이라곤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창은 내게는 구원의 창이었다.
그 창에서 바라보면 건너편에 염전 사장이 사는 규모가 크고 깨끗한 초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집의 마당도 일반 농가의 그것에 견주면 무척 넓었는데 언제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사장 네 집은 우리 집에서 약 50미터 쯤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배추밭과 고추밭이 있었다. 그 집의 깨끗하게 정돈된 마당을 지나 저쪽 염전으로 나가는 들길의 한 모퉁이가 내 방에서 보였다. 그 밖에 그 창에서 보이는 풍경은 달리 없었다.
그러니까 염전 사장 네 집과 그 집의 넓고 깨끗한 마당과 그리고 그 마당 저쪽으로 염전으로 나가는 길의 한 모퉁이가 그때 내가 그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풍경의 전부였다. 아니, 그 밖에 또 있었다.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장 네 가족들과 그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일하는 인부들과 그 집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손님들을 어쩔 수 없이 자주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영애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창을 통해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건 내겐 축복이었고 내가 그 창문에 감사를 바쳐야 할 가장 큰 이유였다.
영애는 사장의 외동딸로 그때 국민학교 6학년에 다니는 어린 계집애였다. 그 아이는 시골아이답지 않게 제 나이보다 훨씬 숙성했고 깜찍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녀는 제 또래들 중에서 늘 대장 노릇을 했다. 마을의 계집애들은 언제나 영애의 꽁무니를 따라다녔으며 그녀가 하자는 놀이를 고분고분 따라서 했다. 영애는 옷차림도 깨끗했고 머리는 자상하고 똑똑한 제 엄마가 늘 단정하게 빗겨 주었다.
처음에는 다만 그녀를 귀여운 어린아이로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영애는 내가 지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성으로 변해갔다. 그 창을 통해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여자가 영애였다. 나는 눈만 뜨면 영애를 보기 위해 창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