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가 지났다. 나는 가정 형편으로 부득이 N**군의 어떤 가난한 농촌으로 이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사일을 돌보면서도 나는 과거의 소란하고 걱정 없던 생활이 그리워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가을과 겨울의 기나긴 밤을 외롭게 혼자서 지내는 것이었다. 낮에는 관리인과 이야기를 하거나, 일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새 시설물을 두루 살피거나 하는 일도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해가 저물기가 바쁘게 나는 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장롱 밑이나 벽장 등에서 발견한 몇 권 안되는 책을 나는 깡그리 외울 정도였다. 가정부 끼릴로브나가 기억하는 옛날 이야기도 재촉해서 죄다 들었다. 시골 아낙네들이 부르는 노래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직 다 익지 않은 과실주를 입에 대보았지만 머리만 아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홧김에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닌가 더 두려웠다. 그런 경우를 나는 주변 우리 군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았다. 내 주위에는 친한 이웃이라곤 전혀 없었다. 두서너 명 고주망태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란 대부분 딸꾹질 아니면 한숨 뿐이었다.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더 견디기 쉬웠다.
내 집에서 한 4베르스따 가량 떨어진 곳에 C*** 백작 부인의 기름진 영지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관리인만 살고 있을 뿐, 백작 부인은 결혼한 첫 해에 단 한번 자기의 영지에 왔을 뿐이었다. 그때도 기껏 한 달 정도 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은둔 생활에 들어간 지 두 번 째 봄이 돌아왔을 때, 백작 부인이 남편과 함께 이 영지에서 여름을 보내려고 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과연 그들 부부는 6월 초에 영지에 왔다.
부유한 이웃이 왔다는 것은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뉴스거리다. 근방의 지주들과 하인들은 그들이 오기 두 달 전부터 그리고 왔다간 지 3년 후까지 그 이야기를 하곤 했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젊고 아름다운 여자 이웃이 왔다는 소식에 마음은 강하게 끌렸다. 나는 그녀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도착한 후 첫째 주일에 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또 가장 충성스러운 시종의 자격으로 그들 백작 부부와 사귀기 위해 점심 식사 후에 *** 마을로 떠났다.
하인은 나를 백작의 서재로 안내하고, 내가 왔다는 것을 주인에게 알리러 갔다. 널따란 서재의 장식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방의 벽에 책장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청동 흉상들이 놓여 있었다. 대리석 벽난로 위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방바닥에는 녹색 나사를 깔았고, 그 위에 양탄자를 덮었다. 오랫동안 초라한 시골집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잊고, 다른 사람의 호사스러운 살림살이도 보지 못했던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마치 장관에게 뭔가 청원을 드리러 온 시골뜨기가 초조하게 면담 시간을 기다리듯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백작을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32세쯤 되어 보이는 이목이 수려한 사나이가 방에 들어왔다. 백작은 거리낌이 없는, 친근한 태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애써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소개를 하려 했으나 백작이 한 발 먼저 선수를 쳤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소탈하고 다정한 말투에 곧 나는 서먹서먹하고 위축된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내가 차츰 평상시의 태도를 회복하는 순간 느닷없이 백작 부인이 들어왔다. 나는 전보다 더 당황했다. 그녀는 정말 미인이었다. 백작은 나를 소개했다. 나는 태도가 굳어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그러나 태연해지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거북스러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백작 부부는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교제에 익숙해질 여유를 주려고 했다. 내가 마치 오래된 친한 이웃인양 허물없이, 까다로운 격식을 따지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면서 책이나 그림을 구경했다. 나는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그 중 한 폭의 그림이 내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스위스의 어떤 풍경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림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그림에는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잇달아 쏜 두 발의 탄알이 하나의 구멍을 꿰뚫은 흔적이었다.
그 한 발 - 7. 아름다운 백작 부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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