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그를 가까이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소설적 상상력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 사나이, 수수께끼 같은 생활 태도로 신비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나이에게 강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 신랄한 말투도 드러내지 않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허심탄회하고 아주 기분 좋게 이야기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불행한 사건 이후,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더구나 그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그런 오점이 씻겨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어서 도저히 예전처럼 태연하게 그를 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보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눈치가 빠르고 세상 물정에 밝은 시리비오는 곧 나의 그런 태도를 눈치 챘다.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도 금방 알았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사실이 괴로운 것 같았다. 두어 번 정도 그가 나에게 거기 대해 해명하려는 눈치를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의식적으로 그런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시리비오도 그런 시도를 단념한 것 같았다. 그 뒤로 나와 시리비오는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나 만났을 뿐 전처럼 마음을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루하루 시간이 잘 지나가는 대도시 사람들은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서 지루하게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목이 빠지게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 연대의 행정실은 장교들로 꽉 차곤 했다. 어떤 장교는 송금을, 어떤 장교는 편지를, 또 어떤 장교는 신문을 기다리고 있다. 편지 봉투는 대개 그 자리에서 뜯어지기 때문에 거기 담긴 뉴스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행정실은 온통 북적거리게 된다. 시리비오 역시 우리 연대의 주소로 편지를 받고 있었으므로 대개 그 자리에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초조하게 봉투를 열었다. 편지를 꺼내서 읽는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장교들은 모두 자기 편지에만 정신을 빼앗겨 이런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
시리비오가 큰 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저는 중요한 사정이 생겨서 곧 이곳을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밤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분들과 작별의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습니다. 다들 꼭 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나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도 기다리고 있겠소. 꼭 와 주시오."
그는 이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행정실을 나가 버렸다. 우리들은 모두 시리비오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 한 발 - 3. 추락한 영웅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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