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 쏘았다(*) -바라틴스키

[*에프게니 아브라모비치 바라틴스키, Yevgeny Abramovich Baratynskii, 1800-1844.]

푸시킨과 같은 시대의 시인. 장시와 애가, 서사시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결투의 권리에 따라 그를 사살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겐 그를 쏠 한 발이 아직 남아 있었다. - <숙영의 저녁>(**)

[**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14일에 반란을 일으켰다)의 반란에 가담한 유명한 작가인 A.A. 스투제프(필명은 말린스키)의 중편소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푸시킨이 여기 인용한 구절은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푸시킨의 창작이다.]


우리는 **라는 제법 번화한 촌락에 주둔하고 있었다. 보병 장교의 생활이란 뻔하다. 아침에는 훈련이나 승마 연습이 있고, 점심은 연대장 집이나 유대인의 식당에서 먹는다. 저녁에는 펀치를 마시며 카드 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촌에는 무도회를 열 만한 집도 없고, 나이 든 처녀도 없었다. 그래서 장교들은 서로서로 숙소에 돌아가며 모이곤 했다. 당연히 거기에는 군복 외에 다른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군인도 아닌데 우리 모임에 끼어있는 사내가 있었다. 나이는 35세 가량 됐을까, 우리는 그를 노인 취급했다. 그는 우리보다 세상 물정에 밝았으며 평소의 침울한 태도와 거친 성격, 신랄한 말투 등으로 젊은 청년 장교들의 마음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뭔가 분명치는 않지만, 일종의 신비한 분위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러시아인 같은데 이름은 외국식이었다.

전에 경기병 연대에 근무할 때는 제법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왜 퇴역하여 이런 한적한 촌구석에 묻혀 사는지 아무도 까닭을 몰랐다. 그는 가난하면서도 돈 씀씀이가 헤펐다. 즉 항상 다 해진 검은 프록코트를 입고 걸어 다니는 주제에 우리 연대의 장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대접이라야 제대병이 만든 두세 가지 음식에 불과했지만 샴페인은 강물처럼 나왔다. 그의 재산이나 수입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또 감히 누구 하나 그에게 그 따위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꽤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군사 서적과 소설 나부랑이였다. 그는 책을 남에게 빌려 주고 절대 돌려 달라고 독촉하지 않는 대신, 자기가 빌려온 책도 임자에게 돌려주는 법이 없었다.

그의 주요한 일과는 사격 연습이었다. 그의 방의 벽이란 벽은 마치 벌집처럼 총알 구멍 투성이였다. 여러 종류의 권총들을 수집해 걸어놓은 것이 그가 살고 있는 초라한 오두막의 유일한 사치품이었다. 그의 총 솜씨는 문자 그대로 귀신 같았다. 그가 모자 위에 놓인 배를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말할 경우, 자기 머리를 내미는 걸 주저할 사람은 연대 내에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장교들은 종종 결투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시리비오(그를 일단 이렇게 부르자)는 결코 그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결투해 본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저 퉁명스럽게 있다고 대답할 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가 자기와 대결했던 어떤 불행한 희생자가 마음에 걸려 그러는가 보다고 우리는 짐작했다. 그의 뛰어난 솜씨로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겁쟁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겉모습만 보아도 그런 의심은 품기 어렵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겨 우리 모두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