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시간에 시리비오 집에 가 보니 연대의 거의 모든 장교들이 거기 와 있었다. 벌써 짐을 다 꾸려 놓아 실내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벽에 총알 자국만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우리들은 모두 식탁에 앉았다. 주인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즐거운 기분이 모두에게 전파되어 곧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계속해서 술병 마개가 펑펑 뽑히고 술잔에서는 부글부글 거품이 소용돌이쳤다. 우리는 진심으로 길 떠나는 사람의 장도에 행운과 안녕이 깃들이기를 기원했다.
밤이 깊어서야 다들 식탁에서 일어나 자리를 떴다. 나 역시 모자를 찾아 쓰고 막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 때 다른 장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던 시리비오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나를 만류하며 자리에 주저앉히는 것이었다.
"당신에게만 잠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손님들이 다 가고 두 사람만 남자, 우리는 마주앉아 묵묵히 파이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시리비오는 조금 전까지 마냥 즐거워하던 그 모습은 간 데가 없었다. 우울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고 눈만 번쩍거리고 있었다. 입에서 담배 연기를 연달아 뿜어대는 모습이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시리비오가 침묵을 깼다.
"우리는 아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겁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작별하기 전에 당신에게 뭔가 변명을 하고 싶었소. 당신도 잘 알겠지만 나는 남의 평판 따위에 신경을 쓰는 위인은 아니오. 하지만 당신을 좋아하고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에게만은 나쁜 인상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지. 그게 정말 괴로웠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 타버린 파이프에 다시 담배를 채웠다. 나는 눈을 내리깐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당신은 내가 그 정신 나간 술주정뱅이 R***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은 게 무척이나 이상했겠지."
그는 말을 이었다.
"무기를 선택할 권리는 내게 있었고, 따라서 그 녀석의 목숨은 내 수중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소. 결투를 하더라도 내 목숨이 위협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 거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때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그냥 그 작자를 놔둔 것은 오로지 내가 관대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도 당신은 별로 반박할 수 없을 거요. 그러나 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소. 만일 내 생명이 위협 받지 않고 저 R***을 혼내 줄 수 있었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녀석을 용서해 주지 않았을 거요."
나는 놀라서 시리비오를 바라보았다. 시리비오의 이런 고백은 정말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시리비오는 말을 계속했다.
"그렇소. 나는 내 생명을 위험에 내놓을 수 없었소. 그러니까 벌써 6년 전 일이군. 난 어떤 사람한테서 따귀를 얻어맞았고, 그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소."
나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당신은 그 사람과 결투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마 어떤 사정이 생겨서 결투를 하지 못하고 헤어졌나 보군요?"
"난 그와 결투를 했소."
시리비오는 대답했다.
"보시오. 이게 바로 그 때 우리가 한 결투의 흔적이오."
그 한 발 - 4.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겁니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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