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부랴부랴 부두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항구와 아득히 먼 파란 수평선 저 너머까지 남편과 아이들이 탄 배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조안나 호의 깃대와 바람을 안은 돛이 멀리 보일 뿐이었다. 사람의 모습은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보냈어! 내가 저들을 보낸 거란 말이야!"
집으로 돌아와 분필로 쓰여진,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글씨를 보고 그녀는 다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큰길 쪽으로 난 방으로 들어가 길 건너편 에밀리의 집을 바라보자 그녀의 여윈 얼굴에는 승리를 자랑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 두고 보자, 곧 있으면 나도 이 비굴한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이야…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에밀리 레스터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며 거만을 떤다는 것도 조안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자 상인의 아내로서 에밀리의 생활이 조안나보다 사치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마주칠 때면 - 물론 두 사람이 만나는 일 자체가 좀처럼 없었다 - 에밀리는 될 수 있으렴 두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왔던 것이다.
그들이 떠난 후 첫해 여름이 그렇게 지나갔다. 조안나는 가게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근근히 살아갔다. 그러나 이제 가게에는 겨우 진열장과 카운터만 남아 있는 정도였고, 물건을 제대로 들여놓지 못했다. 사실 에밀리만이 거의 유일한 단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밀리는 물건이 좋건 나쁘건 그런 것은 따지지 않고 가리지 않고 사 주었다.
그러나 조안나에게는 에밀리의 그런 호의마저도 불쾌했다. 마치 보호자나 자선을 베푸는 것처럼 너그러운 태도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길고 쓸쓸한 겨울이 깊어 갔다. 그녀는 사무용 책상을 벽쪽으로 돌리고, 분필로 쓰여진 작별 인사가 지워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그 글씨들을 닦아버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안나는 몇 번이나 눈물이 글썽해져서 그 글씨들을 바라보았다.
훌륭하게 장성한 에밀리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에게는 이제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가 화제거리였다. 그러나 조안나는 마치 물속에 잠긴 사람처럼 가만히 숨을 죽이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여름이 지나가면 '무역 기간'이 끝나는 것이다…
이윽고 그 기간도 다 끝나갈 무렵 에밀리는 어렸을 적의 친구를 찾아갔다. 벌써 몇 달 째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어 조안나가 무척 근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안나는 말없이 에밀리를 맞았다. 에밀리가 좁은 카운터를 스쳐 지나면서 가게 안 응접실로 들어올 때 그녀의 비단 치맛자락이 사각사각 자랑스럽게 소리를 내는 것이 조안나의 귀에 들렸다.
"너는 모든 게 다 잘 됐는데, 나는 완전히 그 반대야!"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남편이랑 아이들이 한 재산 벌어서 돌아올 거라고 다들 그러던데…" 에밀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아, 정말 그들이 돌아올까? 이렇게 불안한 건 여자로서는 이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생각해 보렴, 세 사람이 모두 한 배에 타고 갔단 말이야. 그런데도 벌써 몇 달째 아무 소식도 없으니 말이야!"
"하지만 아직 돌아올 때가 된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미리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는 안돼!"
"이 세상 어떤 것도 그들이 없는 내 슬픔을 보상해줄 수는 없어!"
"그럼 왜 그들을 떠나보냈니? 가게도 훌륭하게 꾸려나가고 있었잖아?"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 조안나는 정색을 하고 에밀리쪽으로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그 이유를 설명해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들은 매일매일 안달복달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데, 너희들은 부자가 되어서 위세를 부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약이 올랐던 거야! 자 이제 난 모든 걸 다 얘기했어. 날 미워하든 말든 알아서 하렴!"
"내가 널 왜 미워하겠니, 조안나?"
조안나의 불안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윽고 밝혀졌다. 가을이 지나고, 배가 들어와야 할 때가 진작 지났는데도 모래톱 근처 수로에는 조안나 호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드디어 근심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된 것이다. 조안나 졸리프는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밖에 바람이 요란하게 불며 지나갈 때마다 몸을 떨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바다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바다는 거대한 생물과도 같았다. 여인의 슬픔을 기뻐하는, 매정하고도 요란스러운,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그런 생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돌아올 거야!'
조안나는 쉐이드랙이 출발하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생각했다. 다행히 이번 항해에서 성공을 거두고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새벽에 교회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던 얘기였다. 오래 전 그가 조난을 당했지만 무사히 이 항구로 들어왔던 바로 그 때처럼 말이다.
조안나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다. 그리고 거기 설교단에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옛날 쉐이드랙이 아직 젊은이였을 그 무렵 무릎 꿇었던 계단 앞에 언제나 못 박혀 있었다. 이십 년 전 바로 그날, 그가 무릎 꿇었던 바로 그 자리를 그녀는 한 치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를 위하여 - 8. 내가 그들을 억지로 보낸 거야!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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