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프는 방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고, 선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을 여러 가지로 지껄이면서 거기 주저앉았다. 이웃 사람들도 몇 사람 찾아와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러는 동안 에밀리 해닝은 그 일요일 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선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 두 주일이 더 지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암암리에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 다음 달, 어느 달 밝은 밤이었다. 쉐이드랙 졸리프는 마을 동쪽 밖으로 길게 곧장 뻗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신식 주택들이 늘어선 둔덕진 교외로 접어들었다. 물론 신식 주택이라곤 하지만 진짜로 신식이라고 할만한 집들이 오래 된 항구 도시 근처에 있을 리는 없다. 다만 비교적 그렇다는 얘기다.

그때 그는 문득 자기 앞을 걷고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흘깃 뒤돌아다보는 그 모습이 어딘지 에밀리같기도 했다. 그러나 뒤를 쫓아가 보니 그것은 조안나 휘파드였다. 그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함께 나란히 걸었다. 조안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냥 먼저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에밀리가 나중에 질투할 거예요!"

그러나 그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그대로 조안나와 함께 계속 나란히 걸어갔다.

이날 이 산책 도중에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또 어떤 일을 했는지 쉐이드랙 자신도 나중에는 기억이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조안나는 이날 이후로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훨씬 더 온순한 라이벌로부터 감쪽같이 그 사나이를 떼어놓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졸리프는 오직 조안나 휘퍼드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에밀리에게는 거의 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부두 주위에서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졸리프 노인의 아들이 조안나와 결혼할 계획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에밀리가 몹시 낙담하고 있다는 얘기도 함께 들려왔다.

이런 소문이 퍼지고 난 뒤 어느 날 아침 조안나는 외출 준비를 하고 좁은 골목에 있는 에밀리의 집으로 찾아갔다. 에밀리가 쉐이드백이란 사나이를 잃고 매우 상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에밀리의 애인을 가로챈 것에 대해 양심을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조안나는 사실 자신의 소유가 된 이 선원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사나이에게서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은 싫지 않았다. 또한 결혼이라는 화려한 예식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진심으로 졸리프를 사랑했던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야심가였다.

사회적 지위로 보더라도 그녀의 상대방은 자기보다 결코 지위가 높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처럼 용모가 뛰어난 여인이라면 결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만약 에밀리가 소문처럼 그렇게 낙심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를 돌려보내는 게 좋겠다… 조안나는 전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쉐이드랙에게 쓴, 파혼을 알리는 편지를 들고 있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진정 에밀리가 그렇게 슬퍼하고 있다면 그 편지를 쉐이드랙에게 직접 부칠 계획이었다.

조안나는 스루프 레인의 옆골목으로 들어서서 길보다 조금 위치가 낮은 문방구점으로 내려갔다. 이 시간에는 에밀리의 아버지가 집에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에밀리도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원래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 분 정도 가게를 비워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조안나는 그 조그만 가게 앞에 서서 에밀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도 아주 보잘 것 없었으나 에밀리는 여성다운 솜씨를 발휘해 별로 값도 나가지 않는 물건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놓고 있었다. 잠시 후 진열장 밖에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육 펜스짜리 문고본, 종이 다발, 실로 매달아놓은 판화 따위를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쉐이드랙 졸리프 선장이었다.

그는 집안에 에밀리가 혼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서 안을 들여다 봤던 것이다. 조안나는 에밀리의 체취가 남아 있는 그곳에서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게 안쪽 거실로 통하는 문으로 살그머니 몸을 숨겼다. 그녀는 에밀리와 친했기 때문에 집안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종종 그렇게 드나든 일이 있었다.

졸리프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간막이 유리에 드리워진 커튼 너머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에밀리가 보이지 않아 실망하는 것 같았다. 졸리프 선장이 막 단념하고 가게를 나가려 하는 순간 에밀리의 모습이 문간에 나타났다. 그녀는 일을 보러 나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녀는 졸리프를 보자 깜짝 놀라 다시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에밀리, 그렇게 달아나지 말아요! 달아나면 안돼! 어째서 그렇게 날 무서워하는 거요?"

"무서워할 리가 있나요, 선장님? 다만 너무 갑작스럽게 오셔서… 그저 깜짝 놀랐을 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가 깜짝 놀랐다는 것,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지나가다 잠깐 들렀소." 졸리프는 말했다.

"혹시 종이라도 필요하신가요?" 에밀리는 얼른 카운터 뒤로 돌아갔다.

"아니오, 에밀리. 어째서 그런 곳으로 숨는 거요? 내 옆에 있어주면 안되오? 나를 무척 원망하는 것 같군요."

"원망하다니, 그럴 리가 있나요. 제가 어떻게…"

"그렇다면 이리로 나오세요. 서로 점잖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