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그는 조안나가 보내온 전갈을 받았다. 그녀가 오늘 밤 어떤 모임에 참석할텐데, 거기서 돌아올 때 그가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말한대로 했다. 마을 공회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조안나는 그와 팔짱을 끼고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완전히 그전처럼 된 거죠? 그렇죠? 쉐이드랙, 그 편지는 잘못 쓰신 거죠?"
"아, 그래요. 전과 똑같지요." 그는 대답했다. "당신이 그렇게 해달라고 말한다면 말입니다."
"전 당신이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래요." 그녀는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소근댔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에밀리를 생각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쉐이드랙은 종교적인데다가 고지식한 사나이였다. 자기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다. 그보다 앞서 졸리프는 에밀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조안나가 자신에게 냉담하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던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
결혼한 뒤 한 달만에 조안나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신혼 부부는 자질구레한 살림살이에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만 했다. 부모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조안나는 남편을 다시 바다로 내보낼 생각이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도무지 그가 집에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한 끝에 팔려고 내놓은 큰길가 식품 가게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 상점은 재고 상품과 단골 거래처까지 그대로 인수자에게 넘긴다는 얘기였다. 쉐이드랙은 장사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조안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럭저럭 일을 하면서 장사를 새로 배워볼 생각이었다.
그들은 이 식품점을 운영하는 데 모든 힘을 다 기울였다. 그들은 몇 년 동안이나 가게를 꾸준히 운영했지만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부부 사이에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워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는 실상 단 한 번도 진실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사는 도무지 번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자식들의 교육이나 장래를 위해 모처럼 뭔가 해보려고 해도 냉엄한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평범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집이 바닷가였던 때문인지, 아이들은 점점 항해술이나 모험 따위 그 나이 또래의 으레 흥미를 느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런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졸리프 부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 물론 자신들의 가정 문제를 제외하고 - 에밀리의 결혼 문제였다. 사람이란 눈에 잘 띄는 것은 오히려 잘 놓쳐버리고, 한편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게 찾게 되는 수가 있다. 온순한 에밀리 역시 이런 이상한 인연 때문인지 어떤 부자 상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 상인은 에밀리보다는 나이가 꽤 많지만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의 홀아비였다. 에밀리도 처음에는 이 세상 누구와도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상대인 레스터씨는 끈기 있게 에밀리의 마음이 변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전히 별로 마음내켜하지 않는 그녀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이 부부 사이에도 두 아이가 태어났다. 에밀리는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가 이렇게 행복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이 훌륭한 상인의 집은 고풍적인 분위기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벽돌로 만들어진, 커다랗고 육중한 분위기의 저택이었다. 그 저택은 하필이면 큰길을 사이에 두고 졸리프 부부의 가게를 마주보는 위치에 있었다. 아무리 운명이라곤 하지만, 조안나는 이런 처지가 마음 아팠다.
오직 질투심 때문에 자기는 경쟁자로부터 아내의 위치를 빼았았는데, 그 상대방은 지금 아주 유복한 처지가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먼지투성이 가게 안에서 싸구려 막대사탕이나 수북하게 쌓인 건포도 더미, 깡통에 든 차 따위가 든 진열장을 지키고 있는 볼썽사나운 처지다.
장사가 여의치 않아 살림이 점점 기울어졌기 때문에 조안나는 손수 가게에 나가 손님들을 접대해야 했다. 손님이 뭘 찾기라도 하면 그녀는 몇 푼 되지 않는 물건 때문에 가게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모습을 에밀 리가 길 하나 건너 저편 커다란 저택의 응접실에 앉아 지켜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녀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하찮은 손님일지라도 기분 좋게 맞아야 했고, 길에서라도 마주치면 또 그 때에도 꼬박꼬박 인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에밀리는 아이들이랑 가정교사까지 거느리고 마을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녔다. 게다가 만나는 상대방들도 이 마을이나 근처 다른 마을의 상류층 사람들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던 쉐이드랙 졸리프를 에밀리에게서 빼앗은 대가였다.
쉐이드랙은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모두 아내에게 성실했다. 에밀리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이제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날개가 잘리고, 자식들의 어머니인 아내에 대한 헌신 속에서 무뎌졌다. - 젊은 시절의 그 격렬했던 정렬도 완전히 잊혀졌다. 어느 틈엔가 에밀리는 그에게 한 사람의 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에 대한 에밀리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에밀리의 태도에 조금이라도 질투 비슷한 것이 엿보였다면 조안나는 오히려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꾸민 그 계획의 결과에 대해 에밀리나 졸리프 모두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오히려 그녀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아내를 위하여 - 4. 이런 결과가 될 줄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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