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는 억지로 웃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그가 말하는대로 가게 안으로 나와 그의 옆에 섰다.

"이제야 착한 아가씨가 된 것 같군요." 그는 말했다.

"선장님, 그런 말씀은 마세요. 그런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해주실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요."

"그래요, 잘 알겠소. 하지만 에밀리,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당신에게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알지 못했소.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않소. 그야 나도 조안나에게는 호의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그 아가씨는 처음부터 나를 친구 이상으로 여기지는 않았어요. 겨우 이제야 나도 누구에게 내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해야 할 것인지 알게 된 거예요.

이봐요, 에밀리. 바다에서 오랫동안 항해를 하고 돌아오면 남자들은 누구나 박쥐처럼 눈이 멀고 말지요. 여자들을 보고서 전혀 분간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어느 여자나 다 똑같이 그저 여자로 보일 뿐이에요.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예뻐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좀더 훌륭한 아가씨를 만날 수 있는지 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하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손에 잡히는 사람에게 달려가는 겁니다.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좋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너무 수줍어하는데다 뒤로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귀찮게 따라 다니는 것이 싫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안나에게 갔던 거지요."

"그만, 제발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하세요. 졸리프씨, 제발 부탁이에요!" 에밀리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그렇게 말했다. "다음달이면 조안나와 결혼할 예정인데,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돼요. 그런... 그런..."

"에밀리, 사랑스러운 에밀리!" 졸리프는 이렇게 외치면서 에밀리의 자그마한 몸을 두 팔로 억세게 껴안았다. 그녀가 미처 그의 행동을 눈치챌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커튼 뒤에 서 있던 조안나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눈을 돌리려 했으나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오… 진짜 사랑해서 결혼까지 할 그런 사람 말이오. 게다가 조안나가 하는 얘길 들어보면 언제든지 흔쾌히 나와 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조안나는 나보다 훨씬 지체도 높고 훌륭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만, 그냥 친절한 마음에서 나에게 결혼을 승낙한다는 말을 해버린 거에요. 그런 멋진 아가씨야 사실 나처럼 하찮은 선원의 아내가 되기엔 적당치 않죠… 당신이야 그런 역할도 잘 하겠지만 말입니다."


쉐이드랙은 그러면서 몇 번이나 그녀에게 키스했다. 에밀리의 나긋나긋한 몸은 그의 격렬한 포옹에 안겨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조안나가 당신과 헤어질까요? 네? 괜찮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녀도 우리를 일부러 불행하게 만들 생각은 아마 없을 거요. 틀림없이 흔쾌하게 양보해줄 겁니다."

"정말,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하지만 이젠 정말 돌아가셔야 해요, 선장님!"

그래도 쉐이드랙은 자리를 뜨지 않고 얼쩡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어떤 손님이 가게로 들어와 일 페니짜리 봉랍(封蠟)을 사는 바람에 그는 가까스로 그 자리를 떠났다.

조안나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가슴속에 질투의 불길이 파랗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몰래 그 집을 빠져나갈 셈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에밀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녀는 거실에서 복도로 살며시 빠져나가 거기서 앞문 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이며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애무하는 장면을 지켜본 조안나는 애당초 에밀리를 찾아왔을 때 마음속으로 했던 결심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쉐이드랙을 놓칠 수 없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기가 썼던 편지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나서 졸리프 선장이 자기를 찾아오더라도 몸이 불편해서 만날 수 없노라고 이르도록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쉐이드랙은 조안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밝힌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언젠가 그녀가 졸리프 선장에게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우정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솔직히 밝힌 적이 있는데, 그 말처럼 이젠 두 사람 사이의 약혼을 취소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하는 편지였다.

쉐이드랙은 편지를 쓰고 나서 하숙집에 죽치고 앉아 멀리 부두와 그 너머 섬들을 바라보면서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 그는 하숙집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다. 조안나를 찾아가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조안나의 어머니가 나와서 지금 딸의 기분이 좋지 않아 그를 만날 수 없노라고 전했다. 그러나 얘기를 듣고 보니 결국 그의 편지가 그녀의 그 슬픔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부인, 그 편지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대강 아실 테죠?" 그는 물었다.

휘퍼드 부인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지금 자기 모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노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자 쉐이드랙은 자기가 뭔가 큰 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만약 자기가 보낸 그 편지 때문에 조안나가 그렇게 고민한다면, 그것은 뭔가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로서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한 일이라고 변명했다.

만약 그 편지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엉뚱한 결과를 빚어냈다면, 자신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약속은 약속대로 이행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 그 편지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