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랠프스의 행동을 보더라도 당시 그렇게 조심한 것은 아주 잘한 조치였다네… 나는 랠프스가 켄싱턴 대로를 지난 다음에 우리와 헤어질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지. 그러면 거커에게 바로 노골적으로 문제를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살다보면 때로는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야 할 때가 있다네…

그런데 바로 그때 내 시야에 다시 한번 그 하얀 담장과 초록색 문이 들어오는 거야. 거리 저쪽으로 말이지.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그 앞을 지나갔네. 그냥 지나친 거야. 우리가 천천히 거기를 지나갈 때 나와 랠프스의 그림자, 그리고 거커의 옆 모습이 뚜렷하게 그 담장에 비치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거커의 오뚝한 코 위로 오페라 모자를 눌러쓴 것이랑, 그의 목도리의 주름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

"나는 그 문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을 걸어갔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물었지. '지금 이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사실 거커에게 그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었어."

"하지만 온갖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난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어. 나는 생각했네. '이 친구들은 아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지금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전도 유망한 정치가가 갑자기 실종된 센세이션한 사건일 거야! 내 마음은 온통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 그 중요한 순간에 수천가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던 걸세."

그는 슬픈 미소를 띄우며 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난 지금 여기 있는 거라네!"

"그래서 난 지금 여기 있는 거야!" 그는 되풀이했다. "그리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어.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그 문이 내게 나타났는데 말이야… 평화와 기쁨에 이르는 문,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이 세상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그 친절함에 이르는 그 문 말일세. 그런데도 레드먼드, 나는 그 문을 거부했다네. 그리하여 그 문은 내게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어."

"어떻게 그럴 아나?"

"난 알 수 있네. 암, 알고 말고. 나는 내게 기회가 올 때마다 그동안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던 그 일들에 얽매여 그것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 자네는 내가 성공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이 성공이란 놈은 천하고 겂싼, 겉만 번지르르하고 역겨운 존재야. 그리고 사람들의 시기심만 불러일으키지. 그래, 나는 성공했어."

그는 큰 손에 호두를 하나 쥐고 있었다. "만일 이것이 나의 성공이라면 말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호두를 움켜쥐어 깨뜨렸다. 그는 그걸 나에게 내밀었다.

"이봐, 레드먼드 조금만 더 말하지…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네.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십 주 동안이나 나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어. 아주 시급한, 필수불가결한 일조차도 미뤄놓고 말일세. 내 마음은 어떻게도 달랠 수 없는 후회 뿐이야. 사람들이 날 알아보지 못하는 밤에 나는 밖으로 나가 홀로 헤맨다네.

그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정부 부처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처를 책임진 각료가 이렇게 방황하는 모습을 본다면 말이야. 그 장관이 그 문, 그 정원 때문에 슬퍼하며, 때로는 거의 소리내어 흐느끼며 홀로 방황하는 것을 본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