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노스웨스트 항로'란 놀이 있었잖아? 그걸 나하고 해본 적이 있었나…? 아 참, 학교 가는 길이 나하고 달랐을 거야."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 매일 하는 그런 놀이였어. 이를테면 학교로 가는 '노스웨스트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지. 물론 학교 가는 길이야 뻔하지. 그런데 이 놀이는 색다른 길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지. 보통 때보다 십 분 일찍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출발해서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로 해서 학교까지 가는 그런 놀이였어.
그런데 어느 날 난 캠프던힐 맞은편 빈민가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렸어. 그래서 이번에는 놀이에도 지고, 학교에도 늦을 거라고 걱정했지. 그런데 막다른 골목길처럼 보이는 곳에서 에라 모르겠다며 끝까지 갔더니 다른 길이 새로 나오는 거야. 나는 다시 희망을 갖고 그 길을 서둘러 걸어갔지. '아직 늦은 건 아니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일세.
그런데 그렇게 걷다보니 골목길 사이로 묘하게 낯이 익은 지저분한 가게들이 나타나더군. 그리고 놀랍게도 거기에 하얀 벽과 초록색 문이 나타났단 말이야! 환상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초록색 문 말이야!"
"난 정신이 번쩍 들었어. 역시 그 정원, 그 행복의 정원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 초록색 문을 두 번째로 보았을 때는 나는 그 문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라져 있었어. 이미 학생으로 바쁜 생활을 보내는 상황이었다는 거야. 과거 어렸을 때처럼 얼마든지 놀 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 어쨌든 난 이때 문으로 금방 들어갈 생각은 없었어. 우선 말이야, 우선 학교 시간에 늦지 않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지. 개근 기록을 깨고싶지 않았거든.
물론 그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조금은 있었겠지. 그래, 그건 분명해… 하지만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그 문은 그저 어떤 방해물이나 유혹처럼 느껴졌던 것 같네. 물론 다시 한 번 초록색 문을 발견했기 때문에 무척 호기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나는 학교로 가면서도 계속 그 생각만 했지. 마음이 벅차더군.
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학교로 계속 걸었어. 그 생각 때문에 걸음을 멈추거나 쉬지는 않았단 말이야. 나는 뛰어가면서 시계를 꺼냈지. 아직도 십 분 가량 여유가 있더군. 언덕을 내려가니까 눈에 익은 길이 나오더군. 나는 숨을 헐떡이며 학교에 도착했어.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각은 하지 않았지. 그리고 코트와 모자를 걸었던 것도 기억이 나네… 그렇게 난 그 문 바로 앞을 그냥 지나쳐 버렸던 거야. 이상하지 않은가?"
그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늘 거기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없었지. 소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문이 거기 있고, 또 그리로 가는 길을 알았다는 것만은 아주 기뻤던 것 같아. 하지만 학교 수업이 날 붙잡고 있었지.
난 그날 오전에 몹시 산만하고 정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아.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람들을 금방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을 이것저것 더듬고 있었던 거야. 참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만나면 무척 기뻐하리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어… 그래, 맞아. 그날 아침 나는 그 정원을 가끔씩 찾아가 쉴 수 있는 장소로 생각했어. 힘들게 학교 생활 중간중간에 이용할 수 있는 장소 말이야."
"하지만 그날은 거기 가지 않았어. 이튿날이 토요일이어서 그것도 내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네. 아니면 그날 수업에 산만했던 탓에 벌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거기 들를 시간이 없었는지도 몰라.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날 마법의 정원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거야. 그래서 도저히 나 혼자만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야."
"그래서 난 그 이야기를 입밖에 내고 말았지. 지금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거 얼굴이 족제비처럼 생겨서 우리들이 스퀴프라고 부르던 녀석 있었잖아?"
"홉킨스 2세를 말하는 모양이군." 내가 말했다.
"맞아, 홉킨스였지. 사실 그 녀석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네. 그 녀석에게 그 얘길 하는 건 뭔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도 난 그 얘기를 하고 말았어. 마침 집으로 가는 길이 그 녀석과 같은 방향이었단 말일세. 그래서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지. 그 녀석은 말이 좀 많은 편이어서 그 마법의 정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마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하기는 했을 거네만…"
"게다가 그때 나는 그때 도저히 다른 얘기를 할 수는 없는 심정이었지. 그래서 난 그 이야기를 녀석에게 하고 말았어. 그랬더니 그 녀석이 내 비밀을 다른 애들에게 떠벌리고 돌아다닌 거야. 다음 날 쉬는 시간이 되자 나보다 큰 놈들 대여섯 명이 날 둘러싸더군. 녀석들은 나를 놀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척 호기심을 느끼는 눈치였어.
나더러 자꾸 그 마법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라고 그러더군. 거 덩치 큰 포세트란 녀석도 끼어 있었지. 자네, 그 녀석 기억하겠나? 또 커너비, 모얼리 레이널즈란 녀석도 있었지. 자넨 거기 없었어… 하긴 자네가 거기 있었다면 내가 잊을 리가 없지…"
"애들의 감정이란 참 묘한 걸세. 난 속으로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덩치 큰 녀석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다소 우쭐한 기분도 든 것이 사실이야. 특히 크로쇼란 녀석이 칭찬할 때는 특히 기분이 좋았어.
왜 자네도 기억하겠지? 작곡가 크로쇼의 아들 말이야. 그 녀석은 '이거 내가 들어본 거짓말 중에서 아주 최고야!' 이러지 않겠나? 그러나 동시에 나는 신성한 비밀을 얘기한 것에 대해 정말 뼈저린 수치심을 느껴야 했네. 그 짐승 같은 포세트란 놈이 그 초록색 문 안에 있던 처녀에 대해 더러운 농담을 했거든."
담장의 문 - 5. 바쁜 학교 생활 때문에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6 / 전체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