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그의 창백한 얼굴과 낯설고 음울한 불빛이 생생하게 떠올랐던 그의 눈을 기억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자리에 앉아서 아주 분명하게 그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 그의 말투가 머리에 떠오른다. 소파에 놓인 어제 날자 석간 신문 <웨스트민스터 가제트>에는 그의 사망 기사가 실려 있다. 오늘 점심 때는 클럽이 온통 그의 사망에 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 밖의 다른 화제는 전혀 없었다.

어제 새벽 이스트켄싱턴 역 근처 깊은 웅덩이에서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곳은 지하철을 남쪽으로 확장하기 위해 파놓은 두 개의 갱도 가운데 하나였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큰길에다 판자로 울타리를 쳐 놓았지만 근처에 사는 노동자들이 다니기 편하도록 판자에 조그만 문을 뚫어 놓았다. 그런데 양쪽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부주의로 그만 그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문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의문과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때문에 내 마음은 무척 어둡다.

그날 밤 그는 하원을 나와 집으로 계속 걸어왔던 모양이다. 지난 회기 동안에도 그는 걸어서 집으로 간 일이 자주 있었다. 밤늦게 텅 빈 거리를 외투를 걸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어둠 속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정거장 근처의 창백한 전등불이 거친 판자를 하얗게 비추었을 것이다. 그는 그 모습을 하얀 담장으로 착각했던 것 아닐까? 그리하여 그 숙명적인 어떤 기억을 되살린 것 아닐까?

도대체 그 초록색 문이 달린 하얀 담장이 과연 있기는 있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그가 내게 말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 뿐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환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월리스는 그런 환상, 그리고 부주의 때문에 함정에 빠져서 희생된 것일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내 본심으로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여러분은 내가 미신적이거나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리스는 분명 비상한 재능과 어떤 천부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바로 그런 재능이 그에게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다른 세상으로 가는 출구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하얀 담장과 초록색 문은 그에게 바로 그 출구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배신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여러분은 몽상가들, 환상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깊은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세계를 아름답고 일상적인 것으로, 판자로 둘러싸여 있고 웅덩이가 있는 곳으로 본다. 우리의 환한 대낮을 기준으로 본다면 월리스는 분명히 안전한 세계에서 어둠과 위험과 죽음을 향해서 걸어간 것이리라…

그러나 과연 월리스 본인도 그렇게 보았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