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네. 거기에 대해선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는 않네. 다만 언젠가 어떤 여인을 찾아가는 길이었지. 그 여인은 과연 내가 자기에게 접근할만한 용기가 있는지 의심스러워하고 있었어. 나는 얼즈 코오트 근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조그만 지름길을 걷고 있었네.

그런데 거기서 난 뜻밖에도 그 하얀 담장과 낯익은 초록색 문을 만났어. '거 참 신기한 일이로군! 이 담장은 캠프던힐에 있지 않았던가? 스토운헨지의 그 헤아리기 어여려운 신비한 돌처럼, 이곳 역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장소였는데… 내가 기묘한 백일몽을 꾸었던 바로 그 장소 아닌가…' 난 이렇게 중얼거렸지. 하지만 나는 눈앞의 목적에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그냥 지나쳐 버렸네. 사실 그날 오후엔 그 장소가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었지."

"물론 일순간 어떤 충동을 느낀 건 사실이야. 겨우 서너 걸음만 걸어가면 그 문을 열 수 있었거든. 게다가 나는 마음속으로 분명 그 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네.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하면 그 약속을 어기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네. 난 그 약속에 내 명예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나중에 나는 시간을 너무 철저하게 지킨 것을 오히려 후회했다네. 잠깐 들여다보기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 거지. 표범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나도 그때쯤에는 이미 세상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어. 열심히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물건을 뒤늦게 다시 찾으려 하지는 않았네. 그래서 그 때 그 순간이 무척 아쉽다네…"

"그후 몇 년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네. 그 문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 그 문이 다시 내게 나타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야.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뭔가 회의를 갖기 시작했어. 뭐랄까… 이 세계에 옅은 앙금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기분이랄까 그러면서 그 문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슬프게 느껴지더군.

아마 과로로 몸이 좀 약해진 때문인지도 모르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십대 중년 남자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인지도 몰라. 잘 모르겠어… 그러나 생생하게 빛나는 어떤 것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야. 사실 그것 때문에 나는 그 동안 힘들게 일을 해도 힘이 드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단 말이야. 세상이 어쩐지 시들해진 셈이랄까?

그런데 지금은 하필이면 정치판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서 내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그런 시기란 말일세. 참 묘한 일 아닌가? 그런 판에 나는 인생이란 것이 몹시 고달픈 것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 거야. 고생한 보답을 받을 시기가 됐는데 정작 그 보상이라는 것이 아주 보잘 것 없다는 걸 느끼게 됐단 말일세.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난 그 정원이 간절하게 생각나더군. 그래, 그리고 나는 그걸 세 번이나 봤다네!"

"그 정원 말이야?"

"아니, 그 문 말이야! 그런데 난 거기로 들어가지 않았어!"

그의 목소리에는 형언하기 힘든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었다. "세 번이나 기회가 있었단 말일세. 무려 '세 번'이나 말이야! 사실 그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맹세를 했었네. 만일 그 문이 다시 나타난다면, 무조건 거기로 들어가겠다고 말이야.

이 지저분한 세상, 공허한 공명심 싸움, 빛을 잃은 화려함, 힘들기만 하고 실속이 없는 이 세상을 벗어나 거기로 들어가려고 했어… 그리고 거기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거기 머물러 있겠다고 이렇게 속으로 맹세했지. 하지만 막상 기회가 오면 나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어.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그 문을 지나치면서도 나는 거기 들어가지 않은 거야. 작년 한 해 동안 세 번씩이나 말이야."

"첫 번째는 소작인 구제법안을 놓고 여론이 분열되었던 그날 밤이었어. 정부는 그 법안 표결에서 세 표 차로 간신히 이겼지. 자네도 아마 기억하겠지? 우리편이나 반대편 모두 그날 밤 토론이 결말이 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네. 그런데 뜻밖에도 토의는 금방 마무리됐어. 나는 호츠키스, 그리고 그 친구 사촌과 함께 브렌트퍼드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네.

그때 우리 둘에게 전화 연락이 왔다네. 우리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아서 현재 찬반 동수라는 얘기였지. 우리는 즉시 호치키스 사촌의 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달려갔네. 우리는 간신히 시간 안에 도착했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난 그 담장의 문을 지나쳤던 거야. 그 문은 받아서 하얗다기보다 납빛으로 보이더군. 그리고 자동차 불빛을 받은 곳이 노랗게 얼룩이 졌어.

하지만, 분명히 그 담장의 문이었어. '이런!' 나는 이렇게 소리쳤지. 그러자 호츠키스가 무슨 일이냐고 묻더군. 나는 '아냐, 아무 것도 아닐세!'' 이렇게 대답했지. 그 순간은 그렇게 삽시간에 지나가고 말았어."

"난 의사당에 들어가면서 원내총무에게 '난 지금 엄청나게 큰 희생을 치르고 온 거야!' 이렇게 말했지. 그랬더니 그 친구도 그러더군. '그건 다들 마찬가지라네'라고 말이야. 그 친구는 그러면서 급히 가 버리더군."

"그때는 사실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 그 다음 번은 바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가던 때였어. 엄격했던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드셔서 병상에 누워 계셨고, 생명이 경각에 달린 긴급한 상황이었어.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거야.

그러나 세 번째는 경우가 달랐다네. 실은 바로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후회가 되는구먼. 그때 나는 거커, 그리고 랠프스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네. 자네도 아마 잘 알겠지? 내가 거커하고 뭔가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니까 말일세.

우리는 프로비셔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네. 사실 그건 둘 사이에만 주고받은 비밀스러운 안건이었다네. 새 내각에서 내가 맡을 역할은 계속 관심의 대상이었지. 그렇다네, 그렇지. 이제 다 결정이 된 셈이지. 아직 말을 꺼낼 필요는 없지만 자네한테야 뭐 감출 필요도 없지… 응, 그래 고마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좀더 들어주지 않겠나?"

"그런데 그날 밤에는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했고, 아직 일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지. 그래서 내 지위는 무척 미묘한 상태였어. 나는 거커로부터 확실한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랠프스가 합석하고 있어서 그게 쉽지 않았다네. 나는 가볍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네. 경솔하게 내 문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한 거야.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