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1) - 못자리가 마른다
못자리에 물이 말랐다. 오래 가물어서 봇물이 준 데다가 하지가 가까워 저마다 다투어서 모를 내느라고 물이 마른다.
"에 고이한 사람들 같으니, 아무러기로 남의 못자리까지 말린담."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꼭꼭 막아놓은 내 물꼬를 들여다보고 섰다.
'물꼬를 터 놓을까.'
나는 혼자 생각한다. 내 윗논에서 물을 대느라고 봇물은 조금밖에 없다. 이것을 내 논에 대면 저 아래 모내는 논에는 물이 한 방울도 아니 갈 것이다.
'저 논에 모내기가 끝날 때가지 참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못자리는 바싹 말라서 높은 곳에 틈까지 텄다.
'설마 몇 시간 더 마르기로 어찌 될라고.'
나는 참기로 작정한다.
윗논은 벌써 모를 내었건마는 뱃심 좋은 사람들은 절절 물을 대고 있다.
"못자리가 말랐소 그려."
삽을 메고 오던 꺼먼 늙은이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이 동네에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또 꼭 집에만 있는 나는 그 꺼먼 늙은이가 누구인지 모르나 공손히 답례를 한다.
"물꼬를 좀 터 놓으시우. 못자리가 말라서야 쓰겠소?"
하고 그는 제 손으로 내 물꼬를 터 준다. 그리고 아래서 내려가는 물을 막아서 내 논으로만 들어가게 하고 나서,
"어디 물이 얼마 되나, 그까진 거 내려보내기로 저 모내는 데까지는 기별도 안 가겠소. 댁 못자리에나 대우."
하고 위로 올라간다.
나는 모내는 집에 미안하다 하면서 졸졸졸 내 논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본다. 이 따위로 들어가 가지고는 열 시간을 대어도 찰 것 같지 아니하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은 여기저기 떠 있건마는 비가 될 듯한 구름은 안 보였다.
"산은 가까이 보이는구먼."
하던 어떤 노인의 말을 생각하고는 나는 서쪽을 바라본다. 삼각산과 도봉이 한결 가깝게 파르스름한 기운을 띠고 보인다.
'뻐꾸기가 쌍으로 운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금년에는 외뻐꾸기만 울어서 흉년이라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쌍으로 울었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나비가 쌍쌍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도 비가 가까운 징조라고 한다. 비만 왔으며 물 걱정은 없다. 오늘도 낼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내 물줄기를 바라보고 섰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물이 소리를 하며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아까 그 꺼먼 늙은이 올라간 데로 돌렸다. 그도 나를 향하여 싱그레 웃고 있다. 그는 자기 논에 대던 물을 나를 위하여 터놓아 준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그는 유쾌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날 밤이었다. 상노가 그저께 모낸 자리가 바싹 말랐으니 오늘밤에 한 번 축여주지 못하면 다 말라 죽는다고들 남들이 걱정해주었다.
"밤중에 가서 좀 내시우. 염치 보다가는 물 한 방울 못 얻어봅니다."
어떤 이웃의 훈수를 듣기로 하고 밤 열한 시가 지나서 박 군이 삽을 메고 나갔다. 그는 두 시간이나 있다가 돌아왔다. 그를 혼자 보내고 나만 누워 잘 수가 없어서 나도 그때가지 책을 보고 앉아 있었다.
"한 절반 닿는 것을 보고 왔어요."
박 군은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도 우리 모가 이틀은 살았다고 마음놓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