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유머(4) - 평화는 내가 지는 데서

 


'재봉이'는 서양 여자의 겨울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는 아직 삼십 전 청년이다. 떡 벌어진 어깨에 제 손으로 걸었다는 지게를 지고 한 편 팔꿈치에 작대기를 비스듬히 끼고 벙글벙글 웃는 그의 모양은 청춘의 힘의 화신이다. 머리에 얹은 서양 부인의 모자도 용사의 투구와 같아서 퍽 어울린다.

그는 무슨 일이나 다 잘하고, 해도 남의 세 갑절은 한다. 자갈을 채판에 퍼담는 일을 할 때에는 장정꾼이라야 삼백 원을 번다는 데 그는 능히 오백 원 어치를 하고도 석양에 길게 목청 좋은 소리를 뽑는다. 어디서 목청 좋은 소리가 들리거든 보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가 안재봉으로 알라.

그는 아내와 딸이 있다. 옹솥 하나, 사발 둘, 숟가락 둘로 세간을 난 그는 삼 년 만인 금년에는 오백 평을 샀다.

"작년에 병으로 수술만 안 했으면 밭 천 평이나 샀을 게야요."

하고 웃었다.

임 생원은 무르팍 나간 양복바지를 입고 쇠고삐를 끌었다. 그는 검은 테 있는 말짱한 파나마를 쓰고 비를 맞으며 소에게 풀을 뜯겼다. 마치 발만 벗고 비만 맞으면 농부가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도시에서 쫓겨나서 할 줄 모르는 농사를 해보려는 망계를 내인 늙은이다. 그는 아직 소에게 하는 말을 못 배워서,

"아앗! 아, 안돼!"

이 모양으로 사람의 말을 하면서 쇠고삐에 매달렸다. 소는 한 입 물어뜯은 콩잎을 문 채로 모가지를 길게 빼고 턱을 쳐들었다. 소가 웃는다는 것이다. 소는 파나마를 쓴 그에게,

'네나 내나 딱한 신세다.'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덕관이 할아버지라는 노인이 흙 묻은 잠방이를 무르팍까지 걷어올리고 찾아왔다. 그는 모자를 쓰는 대신에 깍은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서 마치 아이녀석 같다. 초면 인사를 하고 보니 그가 그였다. 우리 논에 대는 차례가 된 봇물을 대고 돌아만 서면 따돌리던 그 늙은이다. 그의 논에는 어젯밤 밤새도록 대고 난 뒤였다. 그는 도리어,

"내 논에 먼저 대고 당신 논에 대면 피차에 좋을 것 아니오?"

하고 그가 물을 따돌리는 것을 내가 가만두지 않았다고 승강이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이 노인이 왼장을 치고 마루 끝에 올라앉아서 따지는 폼이 대단히 불온하였다.

"아따, 지난 일이야 할 수 있소? 내년부터는 댁 논에 실컷 대신 뒤에 내 논에 떼어 돌려주시구려."

이렇게 나는 말해버렸다. 이 노인과 시비곡직을 따져야 쓸데없다고 나는 생각한 때문이었다. 내 말에 덕관이 할아버지는 입을 딱 벌리고 한참이나 멍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하도 의외여서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또 한 번 같은 뜻의 말을 하였다. 그제야 알아들은 듯이 벌떡 일어나며,

"우리 가십시다. 내가 영감을 꼭 술을 한잔 대접해야 하겠소. 만나보니 좋은 양반이구먼그래. 자 갑시다."

하고 나를 끌다시피 하였다.

나는 이 동네에 온 후로 처음 술집에를 가서 잔뜩 이 늙은이에게 막걸리 대접을 받았다. 그는 거나해서 신세타령까지 하였다. 한 아들은 서울 어느 회사에 고원으로 다니고 손자는 좌익의 한 투사였다. 작은 손자는 금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자기는 사무 한신으로 술이나 먹고 다니면 고만일 팔자였다. 입으론 이렇게 말하건마는 이 늙은이 노는 때는 없었다. 가래질도 나가고, 특별히 가물 때 물싸움에는 맹장이었다.

"논 이웃도 이웃이라는 거요. 우리 사이좋게 지냅시다."하고 말끝을 번쩍번쩍 드는 말투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말하였다.

'평화는 내가 지는 데서 온다.'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자 웃었다.

"지고 살자."

하는 것이 썩 훌륭한 인생관인 것 같았다. 아내가 들으면,

"또 못난 소리 하오."

하고 펄쩍 뛸 소리다.

-정해 칠월 십칠 일 사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