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유머

- 일명 소가 웃는다


(1) - 어딜 비 맞고 갔다오슈?
보는 마음, 보는 각도를 따라서 같은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극치에 달하면 같은 세계를 하나는 지옥으로 보고, 다른 이는 극락으로 보고 또 다른 이는 텅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농촌의 여름도 그러하다. 이것을 즐겁게 보는 이도 있고 괴롭게 보는 이도 있고 또 고락이 상반으로 보는 이도 있다. 어느 것이 참이요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와 그가 보는 각도에 다라서 변하는 것이다. 여름의 농촌을 유머의 마음으로 유머의 각도에서 보는 것도 한 보는 법일 것이다.

초복을 앞둔 어떤 날, 선선한 아침이었다. 나는 소를 개울가에 내다 매고 방에 앉아서 뒤꼍 옥수수에 붉은 솔이 늘어진 것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애와 같다고 보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그것이 어린애 같았다. 옥수수 대는 어린 것이 잠이 깰세라 하고 고이고이 업고 있었다.

달리아 자줏빛, 보랏빛, 원추리꽃의 노란빛, 호박꽃, 오이꽃도 노랗고, 인제는 벌써 옛날이거니와 복숭아꽃, 살구꽃도 붉거나 분홍이었다. 꽃들의 이런 빛과 처녀나 새 아기들의 분홍 치마 노란 저고리나 다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고 빙그레 웃고 있을 때에 삼각산과 불암산이 차례로 스러지고 문재 봉우리에 뽀얗게 비가 묻어 들어왔다.

"저 건너 갈뫼봉에

비가 묻어 들어온다.

우장을 허리에 두르고

기심매러 갈까나."

는 언제나 들어도 우리의 농촌 정조다.

비는 소리를 내고 왔다.

'소!'

나는 개울가에 맨 소를 생각하였다. 이 비를 맞혀도 좋을까. 이렇게 선선한데. 소를 금년 처음 맨 나는 소의 습성을 잘 알지 못하였다. 여름비를 좀 맞는 것이 좋을 것도 같고 찬비를 맞는 것이 고통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의 코 안에 꿰인 조상들이야 비도 맞고 한뎃 잠도 잤겠지만 수백 대를 외양간에서 살아온 그는 조상 적 기운을 많이 잃어서 찬비에 못 견딜지 모른다.

나는 마침내 소를 끌어들이기로 결심하고 대단히 큰일이나 하러 가는 사람 모양으로 빗발을 뚫고 긴 방죽을 걸어서 개울가로 갔다. 소는 시름없이 풀을 뜯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못하나 반가운 것이었다.

나는 말뚝을 뽑고 바를 사려들었다.

"이랴!"

하고 소를 끌려다가 보니 비는 그치고 말았다. 어느 틈에 동쪽 하늘은 훤하게 열렸다. 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하늘을 휘둘러보고는 싱거운 듯이 웃었다. 그러고 도로 말뚝을 박아놓고 집으로 향하였다. 소는 한 번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 벗이 내 꾀죄죄 흐르게 젖은 꼴을 보고 빙글빙글 웃으며,

"어딜 비 맞고 갔다오슈?"

하고 물을 때에 나는 말없이 웃었다.

강아지와 소와는 의좋은 사이는 아니다. 강아지라고 다 그런지는 모르지마는 우리 집 놈은 소를 못 견디게 구는 것으로 큰 재미를 삼는다. 소가 외양간에 들어오면 우리 강아지 오요는 소 곁으로 달려가서 한바탕 앙앙거리고 짖는데 소는 우선 그것부텀이 싫어서 머리를 내어두르고 발을 구른다.

그러면 강아지는 더욱 신이 나서 앞으로 뒤로 배 밑으로 뱅뱅 돌며 짖기도 하고 무는 시늉도 한다. 그래도 소는 커단 체지(體肢)에 한참은 눈을 껌벅거리고 참고 있다. 그러나 소가 가만히 참고 있어서는 강아지에게는 아무 재미도 없었다. 강아지는 모든 수단을 다해서 소를 성을 내어놓고야 말 작정이다.

그는 더욱 짖고 더욱 빨리 뛰어 돌아가다가 마침내는 고삐를 물어 나꿔채고 꼬랑지를 물고 늘어진다. 이에 소는 잔뜩 골이 나고 약이 올라서 꼬리를 두르고 발을 구르고 받는 동작을 한다. 그러나 강아지는 좁은 외양간에서 그 체대한 소가 자유로 용맹을 쓸 수 없는 것과, 아무리 받는댔자 제 편이 더욱 민첩해서 얼른 피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소를 못 견디게 굴고 놀려먹는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런 일이 반복되노라면 강아지 발이나 꼬랑지를 소 발에 밟히는 일도 있고 고삐에 매달렸다가 소 이마에 얻어받히는 수도 있다. 그때에 강아지는 깡이깡이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그 우는 소리를 들으면 소는 갑자기 가여운 생각이 나는 모양이어서 얼른 발을 들어주고 또 킁킁 강아지를 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