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유머(3) - 어디를 가면 대수냐
그가 천지에게 받은 물 것 막는 법은 꼬리와 목을 둘러서 몸에 붙은 파리 따위를 쫓는 것, 또는 피부를 푸르르 떨리는 것이 있고 가려울 때에는 파리의 떼를 이루 다 쫓으려면 소의 머리와 꼬리를 비행기의 프로펠러 모양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내어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 운명으로 돌리고 꾹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눈에 수십 마리, 몸에는 수백 마리 큰 놈, 작은 놈, 중간 놈, 파리가 붙어도,
'그래, 마음껏 뜯고 빨아라.'하고 한숨을 쉬이며 새김질을 하고 있다. 호랑이 사자라도 받아넘길 뿔과 기운이 있건마는 뿔에도 안 걸리는 파리 떼, 모기 떼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입정한 증 모양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서 멀리 지평선에 피어오르는 저녁 구름 봉우리를 바라본다.
그는 콧도리와 물 것이 없고 부드러운 풀 많은 개울가를 가진 극락세계를 염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원한의 빚을 받아내고야 말려고 찐득찐득하게도 덤비어들고 파고드는 작은 원혼들은 그에게 극락의 꿈을 허하려 아니하여 저녁때가 될수록 채무 지불기일의 최후의 일각을 다투고 그 아프고도 가렵게 하는 주둥이를 살에다가 박는다.
소는 참다 참다 못하여 벌떡 일어나서 네 굽으로 땅을 차서 흙바래를 구름과 같이 일으키며 영각을 하고 날뛴다. 고삐를 끊어지거나 콧도리가 튕겨지거나 땅아 부서져라, 하늘아 무너져라 하고 그는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몸을 들었다 놓는다. 거기는 무서운 분노와 저주가 있다. 그러나 천지는 그가 반항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서 땅에 돋은 풀을 뜯고 인과의 사슬이 한 마디 한 마디 넘어가기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는 전혀 부드러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아리가 그의 누은 등에서 걸어다닐 때에 그는 귀여움을 느껴서 꼬리로 쳐버리지는 않는다. 어린애가 제 고삐를 갈 때에 그는 버티고 서려 아니한다. 암소를 볼 때에 일어나는 애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굴레를 아니 쓴 송아지가 엄매엄매 부를 때에는 그는 귀를 솔깃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드러운 감정을 쏟을 데도 없고 때도 없다. 까만 옛날 엄마의 젖에서 떨어져서 소장수의 손에 들어가서부터는 평생이 고독의 생활이다. 외양간에 누웠거나 들에 나가서 풀을 뜯거나 언제나 혼자다. 만일 우레 번개 치고 폭풍우 날치는 날 그가 개울가에 고개를 번쩍 들고 혼자 누워 있는 양을 본다면 그것이 그의 평생을 상징하는 대표적 경계이다.
그는 수도자다. 그는 참는 바라밀을 닦고 있다. 어쩌다가 인자한 사람을 만날 때에 그는 자비의 설법을 듣는다. 그 설법은 말로가 아니요 행동으로다. 가려운 데를 긁어줄 때에, 풀 많은 데로 옮겨 메어줄 때에, 땀을 흘리며 꼴짐을 지고 들어오는 이를 볼 때에 그는 자비의 빛을 보고 몸과 마음이 누긋해진다. 이 빛에 비추어진 세계는 물 것 등살에 네 굽을 놓아 흙바래를 일으키거나 무지하게 때리고 사정없이 부려먹는 주인을 받아넘길 때의 세계와는 단 모양의 세계다.
암소에게는 새끼를 떼이는 슬픔이 있거니와 황소에게는 그것은 없다. 그 대신에 새끼에게 젖을 빨리고 그 배틀한 몸을 핥아주는 낙이 없다.
한여름 일도 끝나면 가난한 주인은 대개 소를 팔아버린다. 이래서 육칠 월이면 소 값이 뚝 떨어진다. 굴레며 장식 있는 판자끈이며, 풍경이며, 이런 것은 다 벗기고 짚으로 꼰 굴레에 허름한 고삐를 갈아매면 소는 제가 이 집을 떠나는 줄을 안다.
어른 주인은 주판만 생각하지마는 아낙네 주인과 아이들은 정들인 소를 떠나보내는 것을 섭섭히 여겨준다. 소는 또 한 번 인정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렇지마는 다시 돌아보도록 안 잊히는 주인집, 편안한 외양간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그는 주인이 이끄는 대로 끌리고 모는 대로 몰려서 장으로 간다. 어떤 집 어떤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고? 뚱뚱한 푸줏집 주인의 손으로 팔려간다면 앞날이 며칠 안 남은 것이요, 만일 어떤 농가로 간다면 김장밭 보리밭부터 갈기를 시작할 날이 또 며칠 안 남았을 것이다.
'어디를 가면 대수냐.'
하는 듯이 팔려가는 소는 앞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그는 이 동네에 들어오던 때와 다른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것뿐이다. 그는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마 다시 이 동네나 이 주인의 손에 돌아올 기약은 없을 것이다.
쌍둥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일터에 나갈 때에 테 없는 헌 맥고모를 쓴다. 그 만든 제로 보아서 전쟁 전 것이 분명하다. 비가 오나 볕이 나나 늘 테 없는 맥고모다. 멀리서 보아도 이것으로 그를 알아볼 수가 있다. 그는 수염이 노랗고 살은 까맣고 술을 좋아하나 주정하는 일이 없는 노랑이다. 그는 자수 성가하여 금년에도 논과 밭을 샀다. 이웃간에서는 인색하고 이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 생원은 일하러 다닐 때에는 테없는 중절모를 눌러쓴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그는 이것을 쓴다. 뙤약볕에 연장질을 할 때에도 그의 머리에는 이 테 없는 중절모가 있다. 그는 여름에 쓰려고 겨울 동안 이 겨울 모자를 싸두는 모양이다.
박 생원은 아들이 없는 늙은이다. 그는 술은 입에도 아니 대나 담배는 좋아하고 땔나무를 할 때에도 푸른 가지는 아니 건드린다. 이웃간에 착한 노인으로 이름이 났다. 그는 마치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의 모양으로 도무지 욕심이 없고 또 근심도 없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낯이다. 지금 세상에 이런 사람을 존경할 사람은 많지 않지마는 그를 시비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착한 이가 왜 못살까."
사람들은 이렇게 그를 애석하는 한편으로 착한 자에게 복이 온다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근거로 삼는 모양이다. '못산다'는 것은 '잘산다'의 반대로 가난하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