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2) - 누른 털 검은 입술
그러나 이 사람들의 말이 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을 한 가지 발견하였다. 그것은 어떤 사람은 우리 소가 너무 어리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비평가의 대부분은 세상의 다른 비평가들 모양으로 별로 근거도 없이 아는 체하는 자들인 것이 분명하였다.
나와 박 군은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소가 남의 흉을 안 듣는 소가 되도록 잘 먹이자고 결심하고 콩, 콩깍지, 등겨며 짚도 썩 좋은 것을 구하여서 비싼 장작을 아낌없이 때어가며 죽을 끓여 먹였다.
"흥, 주제에 먹새는 잘 하는데."
사람들은 우리 소가 궁이 밑에 한 방울 국물도 아니 남기고 다 먹는 것도 코웃음으로 비평하였다. 아무려나 우리 소는 이 동네에 들어와서는 몇 사람이 손꼽아 셀 만하게,
"소, 순하다."
"먹기는 잘 먹는데."
"한참 잘 먹이면 논은 갈 것 같소."
하는 칭찬을 하였을 뿐이고는 열이면 아홉은 우리 소를 할 수 없이 못난 소로 돌려버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도 다들 흉을 보니까 나도 우리 소가 과연 못난이나 아닌가 하고 마음이 찜찜하였다.
"박 군. 우리 소가 자네나 내게 꼭 맞는 솔세. 세 못난이가 모였네 그려."
하고 웃었다.
그런데 하루는 C라는 글 잘하는 노인이 우리 집에를 왔다가 가는 길에 대문 밖에 매어놓은 우리 소를 보고,
"허, 그 소 좋다!"
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였다. 나는 이 노인은 조롱하는 말을 할 이가 아닌 점잖은 이라고 알기 때문에 대단히 마음이 기뻐서 그 어른께 물었다.
"다들 우리 소를 못난이라고 흉을 보는데 선생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우리 소를 칭찬하시오?"
그 노인은 지팡이 머리에 두 손을 포개서 얹고 대단히 유쾌한 듯이,
"사전에 황우 흑순(黃牛黑脣)이로소니 하는 말이 있지 않소. 이 소가 황우 흑순이야. 털은 누르고 입설이 검거든. 털이 누른 소는 흔하거니와 입설 검은 것은 드문 것이오. 이 소는 순하고 일 잘할 것이오"
하고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황우 흑순이라는 시전 문자가 얼마나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인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삼천 년 전 문헌인 것과 그것을 내게 말한 이가 팔십을 바라보는 늙은 선비인 것만 하여도 우리 소를 위하여서는 큰 영광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부터는 황우 흑순이라는 문자 하나로 우리 소에 대하여 자신을 얻었다.
그러나 걱정은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가깝도록 계숙이 어머니는 동넷집 뜨물까지 얻어오고 박 군은 정성을 다하여서 쇠죽을 끓여 먹이건마는 영 살이 찌지 아니하고 다른 소들은 다 털을 벗고 암내를 내어서 영각들을 하는데 우리 흑순은 길마 자리에는 밍숭밍숭하게 닳아져서 털 한 대 아니 나오고 털이 있는 부분도 꺼칠하고 누덕누덕한 대로 있었다.
"이거 어디 소 구실 하겠어. 내다가 팔고 돈 만 원이나 더 쳐서 다른 소를 사와야지, 어디 금년 농사짓겠나."
소 애비로 정한 T서방까지도 거진 날마다 이런 소리를 하였다.
"흉보지 말아요!"
하고 나는 우리 소를 위하여서 변명하였다. 내 변명의 요지는,
"이 소가 삼남 어느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팔려가서 잘 얻어먹지 못하고 짐실이를 하였다. 등에 털 한 대 없는 것을 보면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다가 칠백 리 길을 소장수에게 끌려서 걸어올 때에 오장에 있던 기름까지도 다 마른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한 가마나 먹은 콩이 이제 겨우 내장에 잃은 기름을 채웠을 것이니 앞으로는 멀지 아니하여 털을 벗고 살이 찌리라"
하는 것이었다.
내 말은 맞았다. 청명 때 채마를 갈 때쯤부터 벌써 우리 소를 흉보던 입들이 쑥 들어갔다.
"곧잘 끄는데."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장작 가뜩 실은 마차까지도 끌게 되었다.
나도 나도 하고 우리 소를 빌리러 왔다. 우리 소는 이제는 논갈이, 씨레질, 무엇이나 하는 소가 되었다. 역시 황우 흑순이다!
이거 못쓰겠으니 팔아서 바꾸자는 소 애비 T씨를 씨레질하다가 한 번 보기 좋게 둘러메친 것은 거짓말 같은 정말이다. 설마 '네가 내 흉을 보았겠다.' 하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마는 사람이 흉보는 말이 소에게 아니 통할 리가 없다. 하물며 우리 황우 흑순이랴.
우리 소는 쉬일 새가 없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논을 갈았다. 오늘도 비가 오는데 멍에에 터진 목을 가지고 동넷집 논을 갈러 갔다. 벌써 박 군이 쑤는 쇠죽 가마에서 구수한 풀 향기가 무럭무럭 나건마는 우리 흑순은 아직도 아픈 목을 참고 연장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소가 시장한 배를 안고 허겁지겁 대문으로 들어와 외양간에 들어와 그 순하고 큰 눈을 뒤룩뒤룩하면서 쇠죽 가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일 것도 아마 반시간 이내일 것이다.
밤이면 내 베개까지 그의 곤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고단하지나 아니한가, 요새는 또 살이 쭉 빠졌다.
하지만 앞으로 일 주일밖에 없으니 모내기도 그 안에는 끝날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 흑순은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 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흑순의 터진 목덜미가 아물고 투실투실 살이 오를 날도 멀지는 아니할 것이다. 수고한 자는 쉴 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