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1) - 소를 흉보는 사람들
사릉에서 농사를 짓는다 하여 동대문 밖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를 산 것이 지나간 삼월이었다. 육만 원이라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큰 돈이다. 더구나 내 농토 전체의 값과 얼마 틀리지 않는 큰 돈이다.
소를 사리 말리 하기에 우리 내외는 두 달이나 의논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다. 십만 원어치도 못 되는 농토를 갈겠다고 육만 원짜리 소를 산다는 것이 아이보다 배꼽이 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군도 없는 우리 농사에 소까지 없고는 품을 얻을 수가 없는 것하고, 또 소를 안 먹이고는 받을 길이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소를 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를 가져본 일이 없는 우리는 소를 사는 것이 우선 큰 문제였다. 소란 네 발을 가지고 두 뿔을 가졌고 잡아먹으면 맛이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우리로서 어떻게 소를 고르기는 하며 값을 알기는 하랴. 없는 돈에 속아 사기가 싫을뿐더러 속았다 하면 두고두고 속이 상할 것이 걱정이 되었다.
소를 살 때에는 입을 벌려서 이를 보아서 나이를 알고, 걸음을 걸려보고 꼴을 먹여보고, 이 모양으로 한다는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얻어들었으나 지식이란 경험 없이 효과를 생하는 것은 아니다.
"속을 심 대고 사자. 아무리 속기로니 소 대신에 개야 오랴."
하는 배짱을 대고 장날을 기다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것도 호랑이 담배 먹을 때 말이요, 지금 세상은 눈깔 후벼내고 코 베어간다는 세상이다. 믿을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 도둑놈으로 알아라 하는 말을 날마다 듣는 이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천에 하나나 만에 하나 악한 사람이 있으면 세상이 온통 악해 보이는 것이다. 천 명에 악인이 하나라면 우리 삼천만 동포 중에 악인이 삼만 명 가량, 만 명에 하나라면 삼천 명. 아마 삼천 명쯤 속이고 훔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다지 겁낼 것도 없는 일이다.
소 장날이 왔다. 소를 사러 가는 일행은 모두 세 사람, 하나는 내 아내, 하나는 나와 같이 농사를 지을 박 군,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동서 되는 박 서방이다. 그 중에서 쇠고삐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것은 박 군뿐인데 이 이도 삼십이 넘도록 책만 보던 패요, 내 동서는 돌구멍 안에서 나서 남으로는 한강, 북으로는 모악재까지밖에 못 나가보고 환갑을 넘긴 노인이다.
내 아내는 뿔이 있고 없는 것으로 겨우 소와 마를 구별하는 위인이다. 소를 입도 벌려보고 걸음도 걸려보는 것은 박 군이 할 일이거니와 무론 자신은 없고 박 서방은 허우대와 소 묘리를 잘 아는 것처럼 뽐내어서 거간과 소장수를 위협하는 소임이었다. 이렇게 사온 것이 우리소다.
소는 다 떨어진 짚세기를 신고 동대문 밖 시장에서 사십 리 길을 걸어서 내 사릉 집에를 왔다.
지난해 만 원 이만 원 하는 바람에 웬 떡이냐 하고 소를 다 팔아먹고 이제 육만원 칠만 원, 크면 십만 원을 하게 되니 새로 소는 살수가 없어서 칠십 호 농촌 부락에 우차 소 다섯 마리밖에 없는 이 동네라 우리 집에서 소를 사왔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마치 새색시나 들어온 것 모양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소를 보러들 왔다. 와서 보고는 무른 소리나 한 마디씩 비평을 하였다. 본래 친분이 있는 점잖은 이들은 주인이 듣기 싫은 소리는 삼가지마는 나와 면식이 없는 젊은 축들은 대개는 우리 소의 흠담이었다.
"어, 자빠뿔이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빠뿔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뿔이 앞으로 뻗지 아니하고, 뒤로 자빠졌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야 나는 비로소 우리 소 뿔이 남과 다른 것을 알았다. 이 동네 어느 소도 뿔은 모두 앞으로 향하였다.
"우리 소는 인자한 소야, 뿔은 있어도 받지 아니하거든."
나는 어떤 사람을 보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런즉 그 사람은,
"흥, 자빠뿔이 소가 심술이 나면 무섭다는 게요, 자빠뿔이 호랑이 잡는다는 말도 못 들었소?"
하고 코웃음을 하였다.
"평소에는 순하다가 호랑이를 보면 기운을 내는 것이 잘난 것이어든."
하고 나는 그 사람의 코웃음을 반박하였다. 나는 정말 우리 소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허, 그 소 살 많이 쪘다."
이것은 우리 소가 마른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마르기는 과연 말랐다. 소장수 말이, 이 소가 칠백 리를 걸어온 길소라고 하였고 보름만 잘 먹이면 윤이 찌르르 흐른다고 하였다. 소는 삼남 소라야 쓴다는데, 칠백 리라면 적어도 대전 저쪽이니 삼남인 것이 분명하고 발에 신긴 짚세기를 보아도 먼 길을 온 것이 분명하였다. '길소'란 말도 나는 처음 배운 말이었다.
털빛이 윤이 없느니, 뒷다리가 어떠니, 무엇이 어떠니 하고 대체 사람마다 한 가지씩 보는 흉이 많기도 많았다. 하도 흉들을 보는 것을 들으니 일변 심사도 나고 낙심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