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3) - 얌전하고 작은 몸
집이 보송보송하게 마르기를 기다려서 그들은 보드라운 털을 물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이제야말로 알을 낳아놓을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놈은 연해 암놈을 건드렸다. 암놈은 집이 다 되기까지는 몸을 허하지 아니하였으나 인제는 보금자리도 다 되었으니 마음놓고 남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었다. 내가 암놈을 새침하다고 보고 야멸치다고 보고 남편에게 이심을 품었다고 본 것은 전연히 내 무식에서 나온 오해였다. 암놈이 새침한 것은 남편의 철없음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아이, 알 자리도 되기 전에!"
하고 뿌리치는 것이었었다.
그들은 인제는 새로 간 새끼들이게 벌레를 물어다가 먹이기에 바쁘다. 제비 새끼 모양은 아직 아니 보이나 그 집 밑에 가까이 가면 짹짹 하는 가련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 털도 안 나고 노란 주둥이만 커다란 보기 흉한 괴물일 것이다. 그렇지마는 제 어미 아비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여운 아들과 딸들이다. 제 자식 못난 줄을 아는 총명은 사람도 가진 이가 없다.
그들은 내외가 같이 집 자리를 찾고, 같이 역사를 하여서 집을 짓고 알을 낳는 것은 암놈이지마는, 안기도 내외가 번갈아 하고 새끼가 까면 벌레를 잡아다가 먹이는 것도 둘이 다 하고 있다.
암놈이 알을 안고 앉았을 적에 수놈은 줄에 앉아서 망을 보며 소리를 하지마는 그러는 동안에도 연해 집 있는 쪽을 돌아보고 가끔 집에 날아가서는 암놈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야 또 줄에 나와 앉는다. 옆에서 보기가 애처로워서 차마 못 할 만큼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조상 네가 제비에게 집자리를 빌려주고 그들에게 무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가 한다.
새끼를 둔 제비가 가장 무서워할 것이 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고양이도 그의 원수다. 뱀으로 보면 갓 깐 제비 새끼는 참새 새끼와 아울러 가장 탐나는 밥일 것이지마는 고양이도 어지간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동넷집 어떤 할머니가 와서 고양이가 제비를 잡아먹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
밤에 방문을 열 때에 불빛에 놀라서 처마 밑에서 자던 어미 제비가 떨어진 것을 마침 옆에 있던 고양이가 덥석 집어먹었다. 그 이튿날부터는 아비 제비 혼자서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들을 먹이고 있었다.
둘이서 물어와도 넉넉지 못한 것을 혼자서 대자니 저도 힘들고 새끼들도 배고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삼사 일 후에 아비 제비는 어디서 후처를 얻어왔다. 후처도 남편과 함께 전실 자식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새끼 한 마리가 집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튿날 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은 새끼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가시 돋고 단단히 엉겅퀴 열매가 하나씩 뱃속에 들어 있었다. 제비 계모가 전실 자식을 죽이는 약이 아마 이것인가 보다고 할머니는 웃지도 않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날마다 찾아와서 헤살을 놓는 그 제비가 년인지 놈인지 미상하나 필시 무슨 악의를 품은 놈인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어미 아비가 다 나가고 없는 틈에 들어와서 새끼를 어떻게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여 나는 가끔 제비집을 바라본다.
아직도 대가리를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새끼들은 무척 어린 모양인데, 이것들이 어버인지 남인지도 몰라보고 철없이 원수가 주는 독약이나 받아먹지 아니할까. 아마 이러한 걱정은 나보다도 제 어미 아버지가 더 할 것이다. 대체 그놈은 제 집도 배우도 없는 놈이란 말인가. 벌써 남들은 새끼를 다 깠는데도 혼자 돌아다니며 헤살꾼 노릇만 하고 있으니 그놈의 소갈머리는 어찌된 것인가.
제비들 속에는 언제부터 어찌하여서 악이 생겼는고, 그렇게도 얌전하고 작은 몸을 가지고도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는 것이 사람과도 같아라.
그러나 누가 무에라 하더라도 우리 제비는 선량한 제비다. 그들은 정식 부부요, 또 자녀를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다. 나는 그들은 몇 대조 조상 적부터 선량한 혈통을 가지고 오는 제비라고 믿는다.
도적 제비도 아니요, 남의 집에 헤살을 놓으러 다니는 난봉 제비도 아니요, 수놈은 군자요 암놈은 숙녀인 제비라고 믿는다. 나는 이 제비의 자손이 더욱더욱 번창하고 더욱더욱 착하게 되어서 작게는 제비 종족을 건지고 크게는 일체 중생을 건지는 가문이 되기를 바란다.
-정해 유월 십칠 일 사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