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유머(2) - 포로 된 영웅일지언정

 


'내가 너를 죽이려는 생각은 아니다.'하는 것과 같은 눈이 된다.

이렇게 한번 되게 혼이 나면 강아지는 외양간에서 뛰어나와서 궁이를 새에 두고 소와 마주보는 위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밟히거나 받혀서 아픈 것이 나을 만하면 강아지는 또 버릇없는 장난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소를 끌고 나가면 강아지도 따라온다. 소에게 풀을 뜯기면 강아지는 또 고삐에 매어달리기, 꼬랑지를 물고 늘어지기를 시작하거니와 그 중에도 가장 소가 화를 내는 것은 강아지가 방금 풀을 뜯고 있는 소 주등이를 슬쩍슬쩍 스치고 연해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소는 이것도 몇 번은 참고 여전히 풀을 뜯지마는 하도 강아지가 성가시게 굴면 그만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어서 흥 소리를 치며 강아지를 받는다.

'흥, 네 따위헌테 받힐 낸 줄 알고.'

하는 듯이 강아지는 재빨리 몸을 피해서 얼른 뒤로 돌아 소 꼬리를 물고 네 발을 버틴다. 소는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또 풀을 뜯는다. 좁은 외양간에서나 한번 만나자 하고 벼르는 모양이었다. 우리 소와 강아지는 이 모양으로 벌써 석 달째나 살았다. 그리 의좋은 친구는 아니나 역시 피차에 정이 든 모양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강아지는 유머를 알건마는 소는 그것을 모르는 일이었다.

세퍼드와 포인트의 트기인가 싶은 우리 강아지가 황소를 어리석은 놀림감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오요는 젖 떨어진 지 며칠 아니하여 우리 집에 온 즉시부터도 오줌똥을 잘 가리어서 꼭 울타리 밖에 나갔다.

그런데 우리 소는 여섯 살이나 나이를 먹어서 벌써 어른이건마는 선 자리에서 오줌을 누고 똥을 싸서 자리를 어질러놓고는 그 위에 펄썩 드러누웠다. 그래서 그 커다란 볼기짝과 배때기가 밤낮 온통 똥 투성이였다.

코를 꿰어서 고삐에 얽매우고 외양간에 갇힌 몸이니 뒤를 보러 울타리 밖에까지는 못 나가더라도 한편 구석으로 꽁무니를 돌려댈 수는 있지 아니한가. 그것을 보고 우리 다섯 달 된 강아지가 못난이라고 업신여기는 것은 허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마는 소의 편에서 보면 강아지란 하잘 것 없는 미물이다. 고것이 감히 소의 앞에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귀엽게 본다면 몰라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기운으로 보든지 용기로 보든지 소는 능히 호랑이와 싸워서 이기는 맹수다.

불행히 땅 껍데기의 변동으로 독립한 생활을 못하고 사람의 집에 붙어서 사는 신세가 되었거니와 포로 된 영웅일지언정 항복한 노예가 아니란 것은 대대로 콧도리를 꿰인 사실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

천하의 소치고는 어느 소 한 마리도 코를 꿰이지 아니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비루한 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의 기개로 주인을 보고 꼬리를 치고 멀쩡한 어금니를 두고도 사람의 손발을 곱게 핥는 강아지를 볼 때에는 새김질할 때가 아니고도 아니꼬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소는 죽도록 일하여서 사람을 벌어 먹이고도 마침내 떡메로 골사대기를 맞아서 죽어 피와 살을 사람에게 먹히운다. 그러나 사람에게 항복하여 그 귀염을 받는다는 개도 필경은 올가미를 쓰고 혀를 빼어 물지 않는가.

소를 순하다고 하고 어리석다고 하고 말 안 듣는다고 한다. 순한 듯한 것은 단념하고 참는 까닭이다. 어리석은 것은 지혜를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려', '어디어' 같은 말을 알아듣는 것만 해도 소로서는 수치다. 훼절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도의 양보라고 할까.

강아지와 주인의 집지기가 되고 노리개가 되는 그런 영리함은 소의 겨레가 취하지 않는 바다. 개는 미친 뒤에야 비로소 조상적 위신과 용기를 발휘하지마는 소는 미래 영겁에 포로의 생활을 달게 받을 것이다. 오줌을 어디서 싸거나 똥 위에 주저앉거나 그런 것을 염두에 둘 소는 아니다. 대장부 소절에 구애 않는다는 것이다.

"개는 제 주인을 알아도 소는 몰라본다고?, 흥."

소는 이렇게 코웃음할 것이다. 소는 일찍 어느 사람에게고 충성을 맹세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호의를 보일 때에도 굽실거릴 것도 없는 동시에 비록 심 년 묵은 주인이라도 잘못하면 받아넘길 자유를 보류한 것이다.

소는 불평가다. 더욱이 여름에 그러하다. 일은 고되어 목은 멍에 터지고 등은 채찍에 부었다. 적이 한가하게 되어 개울가 풀판에 누워 쉴 만하면 물 것이 덤빈다. 생물 치고 물 것이 없는 것이 없지마는 아마 물 것 단련을 가장 많이 하는 이는 소일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낮에는 등에와 여러 종류 되는 파리에 뜯기고 밤이면 모기에게 뜯긴다. 시험조로 여름날의 그의 몸을 보라. 온통 두드러기 천지니 이것은 다 물 것에 피를 빨린 자국이다. 또 사람으로 이르면 이나 벼룩이 같은 물 것이 털 하나에 하나씩이라 할 만하게 들어박혀서 그를 가렵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