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예상했던 대로 뻬뜨로비치는 토요일 저녁에 한 잔 걸치고 나서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눈이 게슴츠레하고 목을 길게 늘여 빼고 금방이라도 바닥에 드러누울 것 같은 자세였다. 그러나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이렇게 일찍 자기를 찾아온 용건을 듣자마자 금세 태도가 돌변했다. 마치 악마란 놈이 느닷없이 그를 흔들어 깨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글세 안 된다니까요."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새로 한 벌 맞추시라굽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미리 생각했던 대로 10 코페이카짜리 동전 한 닢을 슬쩍 뻬뜨로비치 손에 쥐어주었다.

"나리, 감사합니다요! 이걸로는 나리님의 건강을 위해 한 잔 들기로 합죠."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하지만 외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마세요. 그 외투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요. 제가 아예 새 것으로 한 벌 잘 지어드릴 테니까요... 그럼 이제 외투 얘긴 이걸로 끝난 걸로 하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그래도 여전히 외투를 수선해달라고 고집을 부려보았다. 그러나 뻬뜨로비치는 전혀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새 것으로 기가 막히게 지어드릴 테니까, 절 믿으십쇼. 제가 가진 기술을 맘껏 발휘하겠습니다요. 모양도 요즘 유행하는 것으로 그럴싸하게 꾸미고, 옷깃도 은으로 도금한 단추를 그럴싸하게 달 테니까요."

이제야 비로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외투를 새로 맞추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됐다. 그는 완전히 기가 꺾이고 말았다. 사실 말이지 돈이 어디 있어서 외투를 새로 맞춘단 말인가? 물론 명절 때가 되면 상여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 돈에 기대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돈은 쓸 데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바지도 새로 사야 하고, 전에 구둣방에서 장화에 가죽 밑창을 댔던 외상값도 갚아야 한다. 그밖에 셔츠 세 벌과, 활자로 인쇄하기에는 쑥스러운 이름의 속옷 따위도 몇 벌 삯바느질하는 여자에게 맡겨야 할 형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상여금은 받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설혹 국장이 자비를 베풀어 40 루블의 상여금을 45 루블이나 50 루블로 올려준다 해도 어차피 그 차이란 보잘 것 없다. 외투를 새로 맞추는 비용으로 쓰기에는 바다에서 물 몇 방울 덜어내기에 불과한 셈이다.

하긴 뻬뜨로비치는 느닷없이 변덕을 부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부르는 버릇이 있기는 하다. 심지어 그 마누라까지 가끔 나서서 "여보, 당신 미쳤수? 멍청이 같으니라구! 지난번에는 공짜나 마찬가지로 헐값에 일을 해주더니 이번엔 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도 안되는 비싼 값을 부르는 거야? 당신 몸뚱이를 내다 팔아도 그만 돈은 못 받을걸?" 이렇게 고함을 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 잘만 얘기하면 뻬뜨로비치는 80 루블 정도로 일을 맡아줄 것이다. 이것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도대체 어디서 80 루블이라는 거액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 절반 정도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반액 정도, 아니 그보다 약간 더 많아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또 어디에서 구한담?

그러나 우선 독자들은 최초의 그 절반의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1 루블을 쓸 때마다 2 코페이카씩 저금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뚜껑에 구멍이 뚫리고 열쇠로 잠그게 되어 있는 조그만 상자에 동전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반 년마다 한 번씩 그 동안 모은 동전을 지폐로 바꾸곤 했다.

이런 일을 몇 년 동안이나 꾸준히 계속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이 얼추 40 루블을 넘어섰던 것이다. 수중에 가지고 있는 그 절반의 돈이란 바로 이걸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반액, 다시 말해서 부족한 40 루블은 어디에서 끌어댄단 말인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앞으로 적어도 1년 동안은 보통 생활비를 바짝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저녁마다 마시던 홍차도 없애버리고, 밤에는 촛불도 켜지 않기로 했다. 부득이하게 뭔가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하숙집 주인 노파의 방에 가서 거기 있는 촛불 빛 아래서 일을 하기로 했다. 한길을 걸을 때도 돌로 포장한 길에서 구두바닥이 빨리 닳을까봐 되도록 조심스럽게, 뒤꿈치를 드는 자세로 살금살금 걷기로 했다.

속옷 따위를 세탁소에 보내는 횟수도 가급적 줄이고, 집에 돌아오면 잽싸게 옷을 죄다 벗어버렸다. 옷이 빨리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두꺼운 무명 잠옷 하나만 입고 있기로 했다. 이 잠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 노후 연금을 받아도 좋을 만큼 오래된 물건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처음엔 이런 허리띠 졸라매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시간이 좀 지나자 이것도 그럭저럭 습관이 되어서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아가 저녁 끼니를 거르고도 지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대신 앞으로 외투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충분히 정신적인 양식이 되어 준 셈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때부터 자기의 존재가 충실해지고, 마치 결혼이라도 해서 어떤 다른 사람이 줄곧 옆에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인생의 즐거운 동반자가 생겨서 자기와 마음을 합쳐 인생 항로를 함께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동반자는 다름이 아닌 새 외투였다. 두껍게 솜을 대고, 절대로 닳아 해지지 않는 질긴 감으로 안을 받친 그런 외투 말이다. 그는 전보다 태도가 훨씬 활발해졌고 인생의 확실한 목적을 가진 사람처럼 성격마저 굳건해진 것 같았다. 망설임과 우유부단 - 다시 말해서 흐리멍텅한 회의적인 태도가 그의 얼굴이나 태도에서 저절로 사라졌다.

때로는 자못 두 눈을 반짝이면서 이왕이면 외투 깃에 담비 가죽을 다는 것이 어떨까 하는, 그로서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그를 일종의 멍한 방심 상태로 이끌어가곤 했다. 한번은 서류를 정서하는 도중에 하마터면 글씨를 틀리게 쓸 뻔해서 "억!"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은 일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부랴부랴 십자를 긋기조차 했다.

한 달에 한 번씩이긴 했지만, 달이 바뀔 때마다 그는 뻬뜨로비치를 찾아가 어디에서 옷감을 살 것인지, 나사의 색깔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감을 얼마나 끊으면 될 것인지 등 외투와 관련된 것을 상의했다. 아직도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머지 않아 곧 옷감을 사다가 진짜로 외투를 지어 입게 될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 그는 언제나 흐뭇한 마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