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천을 어떻게 붙입니까? 바닥 천이 워낙 형편없어서 바늘을 꽂을래야 꽂을 수가 없어요. 거 듣기 좋은 말로 나사지, 이게 어디 천입니까? 바람만 좀 세게 불어도 갈기갈기 찢어져버릴 것 같은뎁쇼."
"그러지 말고, 어쨌든 이걸 손을 좀 봐주게나. 이건 그래도... 거 뭐랄까...!"
"도저히 안 됩니다!"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바닥 천이 워낙 낡아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구요. 그러느니 차라리 이걸 잘라서 각반이라도 만드시는 편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요. 이제 겨울이 되고 날씨가 점점 추워질 것 아닙니까. 양말 갖고는 아무래도 발이 시릴 테니까요.
하긴 그 각반이라는 물건이 독일놈들이 돈을 긁어모으려고 재주를 부린 것이긴 합니다만...(뻬뜨로비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독일 사람들을 욕하고 비웃기를 즐겼다) 그 대신 어쨌든 외투는 아무래도 새로 하나 장만하셔야 할 겁니다요..."
'새 외투'라는 말을 듣자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방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뒤엉켜 범벅이 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담배통 뚜껑에 그려진, 얼굴에 종이조각이 붙은 장군의 모습만이 뚜렷하게 보였다.
"새로 하나 장만하다니, 도대체 무슨 수로?"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으로 그는 말했다. "내게 그만한 돈이 도대체 어디 있다고?"
"어쨌든 새 것을 하나 장만하셔야 합니다." 뻬뜨로비치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태연한 말투였다.
"그렇지만, 가령 말일세... 새로 하나 맞춘다고 하면, 도대체 그게 말일세, 그러니까 그게, 뭐랄까..."
"돈 말씀이세요?"
"그렇지."
"글쎄요... 아무래도 150루블은 있어야 할 거고, 거기에 가욋돈도 좀 들어가겠습죠..." 뻬뜨로비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의미심장하게 입술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는 극적인 효과를 무척 좋아했던 것이다. 갑자기 느닷없는 말을 내뱉어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고 나서 곁눈으로 상대방이 자기의 말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힐끔힐끔 살피기를 즐기는 것이다.
"뭐, 외투 한 벌에 150루블이라고?" 갸엾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아마 그가 태어난 이후로 가장 큰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그의 특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습죠."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그보다 더 비싼 외투도 얼마든지 있지요. 깃에다가 담비 가죽을 대고, 모자 안쪽을 비단으로 대면 적어도 200루블은 먹힐 걸요."
"뻬뜨로비치, 제발 나 좀 봐주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뻬뜨로비치가 말하는 새 외투의 효과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굳이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좀 이걸 손을 좀 봐주게나. 얼마 동안만이라도 더 입고 다닐 수 있게 말이야..."
"아니, 소용없는 일이에요. 공연히 헛수고만 하고, 돈만 날릴 뿐이라굽쇼." 뻬뜨로비치는 말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풀이 죽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뻬뜨로비치는 손님이 돌아간 뒤에도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단호하게 다문 채 일거리에도 손을 대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재봉사의 기술을 값싸게 팔아넘기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은 것이 그의 마음에 무척 흐뭇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한길에 나와서도 뭔가 나쁜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큰일났군...'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결국 결과가 이렇게 되고야 말았어... 하지만 이건 정말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일이란 말이야!'
한동안 다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는 다시 뇌까렸다. '음, 그래? 사실이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이걸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가 있담? 정말이야... 정말 이런 변을 당하게 될 줄이야...'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집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걷는 도중에 지나가던 굴뚝 청소부가 그를 들이받아 그는 어깨가 온통 새까매지고 말았다. 한창 짓고 있는 건물 지붕에서는 석회 가루가 쏟아져내려 그의 머리는 마치 하얀 색 모자를 쓴 꼬락서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를 더 걸어서 어느 경찰관과 부딪혔을 때에야 그는 어느 정도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경찰관은 옆에 총을 세워놓고 우락부락한 주먹으로 쇠뿔 파이프에서 담뱃재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경찰관은 "어쩌자고 사람 코앞에 불쑥 나타나는 거야, 엉? 도대체 눈은 어디다 뒀길래 인도로 다니지 않은 거야?" 하고 호통을 쳐서 그의 정신을 되돌려놓았다. 순경의 이 말에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밑도 끝도 없이 조각조각 끊기는 그런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모든 일을 털어놓고 상의할 수 있는 친구와 얘기하듯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기 처지에 대해 훨씬 더 조리 있고 분명한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냐..."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은 뻬뜨로비치에게 사정해봐야 소용이 없을 거야. 그 친구는 오늘, 거 뭐랄까... 틀림없이 마누라하고 한바탕 한 모양이니까 말이지. 차라리 일요일 아침에 다시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토요일 저녁에 한 잔 걸치고 나면 눈이 게슴츠레해지고, 해장술 생각이 간절할 그런 때에 말이야. 해장술을 하고 싶어도 마누라는 돈을 줄 리가 만무하고, 그럴 때 10 코페이카쯤 쥐여 주면 그 친구도 훨씬 고분고분해지겠지, 그렇게 되면 내 외투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며 일요일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 아침이 되자 뻬뜨로비치의 마누라가 집을 나와 어디론가 가는 걸 멀리서 확인한 다음 곧장 뻬뜨로비치를 찾아갔다.
외투 - 5. 새로 만드는 데 150루블?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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