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극히 행복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서 외투를 벗어 조심스럽게 벽에 걸어 놓았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다시 한 번 외투의 나사와 안감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런 다음 일부러 전에 입던 그 낡은 '싸개'를 꺼내 새 옷과 비교해 보았다. 그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야! 그런 다음 식사를 하면서도 그는 그 싸개의 꼬락서니를 생각하면서 연신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유쾌하게 식사를 마치고 그는 평소의 버릇처럼 식후의 서류 정서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그대로 침대에 누워 딩굴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외투를 그 위에 걸친 다음 거리로 나갔다.

유감스럽지만 이날 저녁에 사람을 초대한 그 관리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억이 희미해져서 뻬쩨르부르그의 모든 거리와 집들이 한 데 뒤엉켜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속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분명한 모습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튼 그 관리가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무척 먼 거리에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처음에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야 했으나, 그 관리의 집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번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명도 한층 더 밝아졌다.

길거리를 지나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져서 그 가운데에는 화려하게 차린 귀부인들과 수달피 깃을 단 남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삥 둘러 도금한 못을 박은, 격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초라한 영업용 마차들은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 대신 새빨간 빌로드 모자를 쓴 멋진 옷차림의 마부들이 곰의 털가죽 무릎 덮개를 깐 고급 마차를 모는 모습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자가용 마차들이 눈 위를 요란스럽게 달려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이런 모습들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이런 밤 거리에 나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등불이 휘황찬란한 상점 진열대 앞에 멈춰서서 그는 신기한 듯이 안에 붙여진 포스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날씬한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낸 모습으로 구두를 벗고 있는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가씨의 등뒤에서는 삼각형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사나이가 문으로 빼꼼 목을 들이밀고 쳐다보는 모습이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어째서 그렇게 히죽 웃었을까? 이런 것들은 그가 그동안 전혀 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 내면에서 뭔가 감정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역시 다른 관리들처럼 "프랑스 자식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작자들이라니깐! 도대체 마음만 내키면 못할 짓거리가 없단 말씀이야!"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저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 그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들춰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마침내 그는 부과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부과장은 호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계단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침실은 이층이었다. 현관에 들어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마루바닥에 여러 켤레의 고무덧신이 죽 줄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너머 응접실에서는 싸모바르가 하얀 김을 내뿜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벽에는 외투와 레인코트 따위가 쭉 걸려 있고, 그 가운데에는 수달피와 빌로드 가죽을 댄 것도 섞여 있었다.

바로 벽 건너편 방에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마침 문이 열리며 하인이 빈 컵이며 크림 접시, 비스킷 등이 당긴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동료 관리들이 모인 지는 벌써 꽤 된 모양이다. 그래서 벌써 차 한 잔씩은 마신 모양이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자기 손으로 외투를 걸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눈에는 여러 개의 촛불과 관리들, 담배 파이프, 트럼프 놀이 탁자 등이 한꺼번에 휙 들어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얘기하는 소리와 의자를 잡아당기는 소리 등이 한꺼번에 귀를 때렸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곧 그를 발견하고 환성을 올리며 환영했다.

그들은 즉시 현관으로 몰려나가 그 외투를 다시 한 번 구경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약간 낯이 간지럽기는 했지만 원래 순진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자기 외투를 칭찬하는 얘기를 듣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모두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나 외투 따위는 내버려두고 다시 트럼프 놀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방안의 시끄러운 소리며 떠드는 얘기, 북적거리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는 무척 이상하고도 놀라운 것처럼 여겨졌다. 자기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손발이나 몸 전체를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그는 놀고 있는 사람들 옆에 가 앉아서 트럼프 패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로서는 침대에 들어갈 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주인한테 인사를 하고 곧 돌아가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새 외투가 생긴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꼭 샴페인을 마셔야 한다고 우기며 놓아주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밤참이 나왔다. 야채 샐러드와 차거운 쇠고기, 고기만두와 파이, 거기에 샴페인이 곁들여 나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사람들의 권을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유리컵으로 두 잔이나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니 방안이 더욱 흥겨워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벌써 열두 시가 넘었으니 집에 돌아갈 시간이 지났다 하는 생각을 털어버릴 수 없었다. 그는 주인이 말릴까봐 아무도 몰래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왔다.

현관에서 외투를 찾으니 그 외투는 마루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걸 보고 약간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외투를 흔들어 먼지를 잘 털어 내고는 어깨에 걸쳐 입고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길거리는 여전히 밝았다. 귀족의 하인들과 그 밖의 온갖 하층민들이 함께 모여드는 길거리 구멍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덧문을 닫아 건 상점들도 문틈으로 아직 불빛이 길다랗게 새어나오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안의 단골손님들은 아직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 안에는 근처의 하녀들과 하인들이 모여들어 집에서 자기를 찾고 있을 주인 생각 따위는 까맣게 잊고 온갖 잡담을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리라...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전에 없이 들뜬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귀부인의 뒤를 쫓아 달려가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 귀부인은 번개처럼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온몸에 율동에 넘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곧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왜 그녀를 쫓아 달려가려고 했는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그는 다시 인적이 드문 텅 빈 거리에 이르렀다. 이 근방은 낮에도 별로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저녁이면 한층 더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