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고관은 예의 그 딱딱 부러지는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일의 순서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나? 지금 어딜 찾아온 거야? 관청의 사무라는 게 어떤 순서를 밟아서 진행되는 것인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문제라면 우선 관련 창구를 찾아 탄원서를 제출하는 게 우선이지! 그렇게 하면 서류가 계장, 과장을 거쳐 비서한테 넘겨지겠지. 그 다음에 비로소 비서관이 내게 그 문제를 가져오게 되어 있단 말이야!"

"하지만, 각하!"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온몸에 진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마지막 남은 기력을 있는대로 다 쥐어짜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렇게, 감히 외람되게... 각하께 직접 부탁을 드리는 것은... 저 다름이 아니옵고, 실은 저 비서관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어서..."

"뭐, 뭐라고?" 그 고관은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서 그따위 생각을 머리 속에 집어넣은 거야? 어디서 그따위 사상을 배워왔느냐 말이야?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어른과 상관에 대해 지극히 불손하게 대하는 그런 사상이 만연되어 있어 정말 큰일이라니까!"

아마 그 고관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이미 쉰 고개를 넘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설혹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해도 그건 70 먹은 노인에게나 통하는 얘기일 텐데도 말이다.

"자네는 지금 누구를 상대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나 알고 있나?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나 알고 있느냐 말이야, 응? 알고 있어, 모르고 있어?" 그는 이제 아주 발까지 구르며, 설혹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목소리를 높여 고함을 쳤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거의 넋을 잃고 비틀비틀 두어 걸음 물러섰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 더 이상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수위가 재빨리 방에 달려 들어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거의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밖으로 끌려나갔다. 고관은 자기의 태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둔 데 만족했다.

그는 자기의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을 기절까지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친구가 이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곁눈으로 힐끔힐끔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친구 역시 얼이 빠진 듯 그 어떤 공포감마저 느끼는 눈치였다. 고관은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어떻게 계단을 내려와 어떻게 한길로 나왔는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팔이나 다리에도 전혀 감각이 없었다. 여태까지 자기 윗사람한테, 그것도 다른 부처의 높은 사람한테 그렇게 호되게 꾸중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자꾸만 인도 밖으로 발걸음이 빗나가면서 길거리의 소용돌이치는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뻬쩨르부르그의 날씨는 원래 그렇지만 이날도 바람은 사방팔방에서, 골목길이란 골목길로부터 빠짐없이 그에게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는 대번에 편도선이 부어 올라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을 때쯤에는 말 한 마디 할 힘조차 없었다. 그는 곧장 잠자리로 기어 들어갔다. 상관의 별 것 아닌 꾸지람 한 마디가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튿날 그가 엄청나게 높은 열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뻬쩨르부르그의 날씨가 아낌없이 도와준 덕분에 그의 병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됐다. 의사가 진맥을 하러 왔을 때에는 맥을 한 번 짚어보았을 뿐, 이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저 병자가 아무 의술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라도 듣지 않도록, 찜질이라도 해주라는 말뿐이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기껏 하루나 하루 반나절 밖에 더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더니, 하숙집 주인 할망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뭐 더 기다려보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지금 곧 소나무 관이라도 하나 주문하세요. 이런 사람한테는 참나무 관은 과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자기에게 치명적인 내용의 이런 말들이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귀에도 들렸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설사 들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그에게 충격을 주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그가 자기의 비참한 일생을 과연 슬퍼했는지 어쩐지 하는 것도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 동안에도 줄곧 혼수 상태에 빠져 헛소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는 끊임없이 괴이한 환상이 나타났다. 재봉사 뻬뜨로비치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침대 밑에 도둑놈이 숨어 있는 것 같으니, 그 놈을 체포하기 위해 올가미가 달린 외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이불 속에서 도둑놈을 끌어내 달라고 하숙집 할망구를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 외투가 있는데 왜 저 낡아빠진 '싸개'가 저기 걸려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이번에는 자기가 칙임관 앞에서 꾸지람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죄송합니다, 각하!" 하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무서운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다. 아직까지 그렇게 무서운 욕을 들어보지 못한 주인 할망구는 그 바람에 십자를 긋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런 욕설이 '각하'라는 말 뒤에 잇달아 튀어나왔으니 할망구로서는 겁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

나중에 가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전혀 의미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두서없는 말이며 생각이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외투라는 하나의 물건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가엾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방이나 소지품을 봉인하지는 않았다. 우선 첫째 유산 상속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는 유산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위 깃으로 만든 펜이 한 묶음, 관청에서 쓰는 백지 한 권, 양말 세 켤레, 바지에서 떨어져 나온 단추 세 개, 그리고 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그 '싸개' 뿐이었다. 이런 물건들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솔직히 말해 필자 자신도 그런 데에는 흥미가 없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시체는 묘지로 실려나가 매장됐다. 그리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없어져도 뻬쩨르부르그는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했던 - 흔해빠진 파리조차도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 - 관청에서 온갖 비웃음을 순순히 참아내면서 이렇다 할 업적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그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역시 비록 생애가 끝나기 직전이기는 했지만 외투라는 기쁜 손님이 환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초라한 인생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 이 세상의 힘센 존재들에게도 예외 없이 닥쳐오는, 피할 수 없는 불행이 그에게 닥쳐오고야 만 것이다.

그가 죽은 지 3,4일 뒤에 관청의 수위가 즉각 출두하라는 국장의 명령을 전하러 그의 하숙집을 찾아왔다. 그러나 수위는 그대로 돌아가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라는 질문에 수위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째서구 뭐구 없습죠. 그 작자는 죽어버렸습니다. 벌써 사흘 전에 장사를 치렀더군요." 이렇게 해서 관청에서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튿날에는 벌써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후임이 새 관리가 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키도 훨씬 더 크고, 그다지 반듯한 필체가 아닌,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진 그런 필체로 글씨를 쓰는 사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