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다른 좋은 방법도 없었으므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동료가 말해준 그 고관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고관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참고로 말해둘 것은 그가 그 지위에 오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며, 그 전까지는 그야말로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금의 지위라는 것도 다른 중요한 지위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대단치 않은 지위라도 스스로는 아주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더욱이 그 고위 관리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높여 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이를테면 자기가 출근할 때 부하 직원들이 모두 현관에까지 마중을 나오게 한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그는 어떤 사람도 자기 방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관련된 업무를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는 등 내부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십사등관은 십이등관에게, 십이등관은 구등관이나 그밖에 적당한 관등의 인물에게 보고하는 등 모든 일이 그렇게 엄격하게 순서를 밟아 모든 안건이 자신에게 올라오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의 신성한 나라 러시아는 모든 것이 주로 흉내내기에 의해 이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상관이 하는 일을 그대로 흉내내게끔 되어 있다.
심지어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즉 어떤 구등관이 조그만 독립 관청의 책임자로 임명되자 당장 사무실 한 쪽을 막아 자기 방으로 정하고 '집무실'이란 간판을 내건 다음 붉은 깃에 금테를 두른 수위를 문 앞에 세워놓고 사람이 올 때마다 일일이 문을 여닫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무실이란 것이 보통 책상 하나를 겨우 들여놓을 크기였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서 말한 이 고관의 태도나 습관 역시 어마어마하고 위엄이 가득찬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복잡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그가 일하는 체계의 기본은 한마디로 말해 엄격성이었다. '엄격하게, 더욱 엄격하게, 모든 것을 엄격하게!'라는 것이 그의 입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렇게 뇌까리면서 잔뜩 거드름을 피운 얼굴로 노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관청의 행정 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몇십 명의 관료들은 그렇잖아도 항상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멀리서 그 고위 관료가 나타나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부동 자세로 서서 그가 사무실을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서 있을 정도였다.
그와 부하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용하는 말은 단 세 마디로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었다. 즉 '자네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는가?'와 '자네는 지금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건가, 모르고 있는 건가?' 이 세 마디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본심은 무척 착한 인간이었다. 친구도 잘 사귀었고 남의 일도 잘 보살펴주는 편이었다. 오직 칙임관(勅任官)이라는 벼슬자리가 그의 머리를 그렇게 돌게 만들었던 것 뿐이다. 칙임관에 임명되자 그는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 그래서 자기가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헷갈렸던 것뿐이다.
그래도 그가 자기와 대등한 지위의 사람을 상대할 때는 지극히 의젓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다. 또 여러 가지 점에서 제법 총명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보다 단 한 계급이라도 낮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의 태도는 당장 어색해지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속으로 이 사람들과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현재 상태는 더욱 가엾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도 가끔 무엇이든 재미있는 대화나 놀이에 끼어들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곤, 그런 마음을 눈에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지금 내 입장에서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아랫사람에게 허물없이 구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자기의 위신이 깎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그는 결국 어디서나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이었다. 어쩌다가 가끔 입을 연다 해도 야릇한 외마디 소리를 외칠 뿐이어서 마침내는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따분하기 짝이 없는 괴상한 친구라는 딱지를 붙이고 말았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찾아간 고관은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하필 가장 좋지 않은 때 그 고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가장 좋지 않은 때였다는 의미일뿐, 그 고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관에게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마침 때맞춰 찾아와 준 셈이었다.
그 고관은 마침 자기 서재에 앉아 몇 년만에 서울에 올라온 어릴 적 친구를 맞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참이었다. 하필이면 바로 이런 때에 바쉬마치낀이라는 작자가 자기를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도대체 그 작자는 뭐하는 친구야?" 그는 퉁명스럽게 비서에게 물었다.
"어느 관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고 하더군요." 비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내가 지금 바쁘니 조금 기다리라고 그래." 고관은 말했다. 하지만 그 고관의 이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와 그의 어릴 적 친구는 이미 진작에 할 말은 거의 다 해버리고, 이제는 지루한 침묵 가운데서 이따금씩 서로의 무릎을 두드리면 "글세 말일세, 이반 아브라모비치!"라거나, "그게 그렇게 됐단 말인가, 스쩨빤 바를라모비치!" 하는 식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관이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찾아온 관리를 기다리게 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공직에서 물러나 시골집에 틀어박힌 자기 친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기를 찾아온 관리들이 대기실에서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야기 거리도 다 떨어지고 등받이가 달린 푹신한 소파에 푹 기대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에는 기나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 때 고위 관리는 문득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보고 서류를 들고 문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
"아 참, 무슨 관리라든가 하는 친구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그랬지? 이제 들어와도 좋다고 그래주게."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온순한 생김새와 낡아빠진 제복을 보고 고관은 갑자기 그에게로 몸을 돌리며 딱딱 끊어지는 것 같은 차가운 말투로 대뜸 물었다.
"용건이 뭐요?"
이것은 그 고위 관리가 칙임관이라는 관등을 수여받고, 현재의 자리에 부임하기 일 주일 전부터 혼자서 자기 방에 틀어박혀 거울 앞에서 일부러 연습한 그런 말투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방에 들어오기 진작 전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어서 이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억지로 움직여 말을 끄집어냈다.
"실은, 저 그게 그러니까..."
이런 말을 연신 끄집어내면서 그는 자기가 새로 맞춰입은 외투를 얼마 전에 야만적인 강도들에게 빼앗겼다는 것, 그래서 자기를 위해 경찰국장이나 기타 그밖의 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몇 자라도 적어 주시면 외투를 찾는 데 무척 힘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무척 어렵게 끄집어냈다. 그러나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 고관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말하는 것이 무척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외투 - 10. 고관에게 부탁을 해야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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