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금은 더욱 호젓하고, 더욱 음산하고, 불이 켜 있는 가로등도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가로등의 기름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목조건물과 울타리가 앞으로 쭉 이어지지만 어디를 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길 위에 깔린 눈만이 하얗게 반짝일 뿐, 지붕이 납작한 거리의 집들은 모두 덧문까지 걸어 잠그고 거무튀튀하게 서글픈 빛을 띠고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는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여기서 끝나고 건너편 집들은 보일 듯 말 듯 아득하게 멀다. 광장은 마치 무서운 사막처럼 보였다.
경찰 초소의 등불이 멀리서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득하게 먼 곳, 마치 지평선 저 끝에쯤 서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 오니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흥겨웠던 기분도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그는 뭔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뒤를 돌아보고, 다시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아니, 차라리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것이 낳겠어...' 그는 속으로 생각하고 눈을 감은 채 걸었다. 이제 거의 광장을 다 지났겠지 하고 눈을 뜬 순간, 그는 눈앞에, 그것도 바로 코앞에, 수염을 기른 사내들이 버티고 선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인지 분간할 틈조차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속이 방망이 치듯 두근거렸다.
"야, 이건 내 외투잖아!" 그 가운데 한 놈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마치 장독 깨지는 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가 "사람 살려!" 하고 소리치려 하자 다른 한 놈이 마치 관리의 머리통만큼이나 큰 주먹을 그의 입에 들이대며 "소리치면 알지?" 하며 으르렁댔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외투를 벗기우고 무릎을 차인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 뒤에는 눈 위에 나동그라진 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몇 분이 지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사람의 그림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이 몹시 춥다는 것, 자기의 외투가 사라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그는 뒤늦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광장 저 끝까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광장을 가로질러 경찰 초소로 달려갔다.
초소 앞에는 경찰관 한 명이 장총에 몸을 기대고 서서, 도대체 어떤 자식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나 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경찰관 앞으로 달려가서 숨을 헐떡이며 경찰이 감시는 하지 않고 졸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강도들이 날뛰고 있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경찰은 광장 한가운데서 사내 둘이서 그를 불러세우는 것은 보았지만 그의 친구들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대꾸했다. 경찰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한테 공연히 욕만 퍼부을 것이 아니라, 내일 파출소장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면 아마 외투를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관자놀이와 뒤통수에 조금 남아 있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옆구리와 가슴팍, 바지에 온통 눈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숙집 주인 할망구는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한 짝만 걸치고 문을 열어주러 나왔다. 한 손으로 잠옷 앞섶을 누른 모습이었다.
할망구는 문을 열고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그런 꼬락서니를 보고 기겁을 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그녀는 몹시 놀라면서 그렇다면 직접 본서의 서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파출소장 따위는 말로만 약속을 할뿐이지, 뒤에서는 딴 짓을 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니 직접 본서의 서장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다행히 자기는 본서의 서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해도 좋은 처지다. 왜냐하면 전에 자기 집 하녀로 있던 핀란드 여자 안나가 현재 서장 댁의 유모로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도 서장이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본 일이 있다. 또 서장은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교회에 나오는데, 거기서도 누구에게나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런 여러 가지로 봤을 때 틀림없이 마음씨가 좋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슬픔에 잠겨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을 그가 어떻게 지새웠는가 하는 얘기는, 다소나마 다른 사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이튿날 아침 일찍 그는 서장을 찾아갔다. 서장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는 열 시쯤 다시 가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무십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열 한 시에 다시 갔더니 이번에는 "서장님은 출타하셨습니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점심 시간에 다시 찾아가 보니, 이번에는 서장 부속실에 있는 비서가 그를 얼른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무슨 필요가 있어서 왔느냐는 둥, 도대체 무슨 사건이냐는 둥 귀찮게 캐묻는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도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서장을 직접 만나야 할 필요가 있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서서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관청에서 공무 때문에 찾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를 못 들어가게 한다면 그때는 상부에 보고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아서 해라고 한바탕 을러댔던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가 뭔가 만만찮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오자 비서들도 아무 소리 못하고 그 중 하나가 서장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다. 서장은 외투를 강도 당했다는 얘기를 아주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건의 요점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늦게야 집으로 돌아갔느냐는 둥, 어디 점잖지 못한 곳에 가서 자빠져 있었던 게 아니냐는 둥 엉뚱한 질문만 해댔던 것이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그만 헷갈려서 자기의 방문이 외투를 되찾는 데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또는 효과가 전혀 없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물러 나오고 말았다.
그는 그날 하루종일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이런 일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단 한번밖에 없었다). 이튿날 그는 전보다 훨씬 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그 헌 '싸개'를 걸치고 핼쓱한 얼굴로 출근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조롱하려 드는 친구들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외투를 강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동료들은 그 자리에서 그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모인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관리들은 여기저기 뜯기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장의 초상화를 사 주는가 하면, 과장의 친구라는 사람이 쓴 책을 신청하라는 과장의 권유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동정하고 그를 돕고 싶어서 그에게 친절하게 돕는 말을 해주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 서장 따위를 찾아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가령 서장이 상부에 잘 보이려고 어떤 방법을 쓰던지 해서 외투를 다시 찾아낸다 하더라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외투가 자기 것이라는 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결국 외투는 경찰서에 보관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즉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위 관리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그 고위 관리가 경찰서의 사건 담당자에게 편지를 보내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외투 - 9. 내 외투를 돌려다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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