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 고관은 친구네 집 계단을 내려와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에게 곧장 말했다.
"까롤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가자!"
그는 마차 안에서 따뜻한 외투에 몸을 감싸고, 러시아 사람 특유의 지극히 즐거운 기분에 빠져들었다. 즉 일부러 무얼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끊임없이 달콤한 상념이 떠올라, 그저 기분좋고 편안한 그런 상태 말이다. 그는 더없이 기분이 흡족했고, 방금 떠나온 파티에서의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는 자기가 익살을 부려 친구들이 배를 붙잡고 웃게 만들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익살을 혼자 입 속으로 되풀이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역시 그 익살은 재치 있고, 사람을 웃길 수밖에 없었어... 그는 자기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큰 소리로 웃어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따금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찬바람이 그의 달콤한 기분을 방해했다. 무엇 때문인지 바람은 갑자기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없게 불어닥쳐 차디찬 눈가루를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외투 깃을 마치 돛처럼 펄럭이게 만들고,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문득 고관은 누군가 뒤에서 자기의 외투 깃을 무서운 힘으로 움켜잡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다 떨어진 낡은 제복을 입은 작달막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고관은 그 사나이가 바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관리의 얼굴은 눈처럼 창백해서 겉으로 당장 보기에도 죽은 사람, 즉 유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령은 입을 일그러뜨리며 송장 냄새를 내뿜으며 말했다.
"음, 이제야 네놈을 만났구나! 이제야 네놈의 목덜미를 잡았어! 난 네놈의 외투가 필요하다!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나에게 호통을 쳤었지! 자, 이젠 네놈이 외투를 내놓을 차례야!"
고관은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딱하게도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는 평소 관청의 부하들 앞에서는 언제나 늠름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애를 썼다. 또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거 참, 위풍당당한 사람이로군!" 하고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 호걸다운 풍모를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지만 -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당장 발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허겁지겁 자기 손으로 외투를 벗어 던지고 마부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자! 전속력으로 달려!"
마부는 주인의 이 목소리를 듣자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러 쏜살같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마부는 만일의 경우에 두 어깨 사이에 목을 잔뜩 움츠린 자세를 갖췄다. 왜냐 하면 주인의 이런 목소리는 뭔가 어떤 긴급한 순간에 나오기 일쑤인데다, 대개의 경우 목소리보다 훨씬 효과가 높은 어떤 행동이 뒤따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기껏 6분 정도 지났을까, 고관은 벌서 자기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외투를 잃고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까롤리나 이바노브나를 찾아가는 대신 자기 집으로 곧장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그 날 하룻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에 잠겨 꼬박 샜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차를 마실 때 딸로부터 "아빠, 오늘은 아주 안색이 좋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 저녁에 어디를 갔었는지,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그리고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는 것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제 부하 관리들에게 "자네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자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나?" 하는 말을 전보다 훨씬 덜 사용하게 되었다. 설사 그런 말을 하는 경우라 해도 우선 상대방의 사정부터 들어보고 나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날 밤 이후로 그 관리 옷차림을 한 유령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그 고관의 외투가 유령에게 딱 맞았던 모양이다. 하여튼 이제 어디서 누군가가 외투를 빼앗겼다는 소문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하긴 소심하고 지나치게 성격이 꼼꼼한 친구들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아직도 시의 변두리에서는 그 관리 옷차림의 유령이 등장한다고 수군대고 있었다. 사실 꼴로멘스꼬에의 어떤 경찰관 한 사람은 어느 집 모퉁이에서 그 유령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일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찰관은 원래가 형편없는 약골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절반 정도 자란 돼지새끼 한 마리가 민가에서 달려나오며 그의 다리를 들이받는 바람에 그 자리에 벌렁 나자빠져 근처에 있던 영업마차 마부들이 배를 움켜쥐고 웃어댄 일조차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마부들이 자기를 모욕했다며 한 사람당 1 코페이카씩 강제로 거둬들인 일까지 있었다.
이렇게 약골인 친구여서 그는 유령을 보고도 차마 직접 불러 세울 용기가 없어 그대로 어둠 속을 뒤따라갔다. 그러나 유령은 얼마쯤 걷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보고 그 경찰관에게 "넌 도대체 뭐야?" 하고 물었다. 유령은 그러면서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주먹을 경찰관에게 불쑥 내밀었다.
그 바람에 경찰관은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얼른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유령은 키도 훨씬 더 크고, 콧수염까지 큼직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 유령은 오브호프 다리 쪽으로 걸어가는 것 같더니, 이윽고 밤의 어두움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끝>
외투 - 13. 유령과 고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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