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스스로 불행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나 표쿠라는 반대로 지금 하는 이런 생활이 성격에 딱 들어맞는 모양이었다. 지독한 가난, 지저분한 것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귀다툼마저도...
그녀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먹고 아무 데서나 졸리면 쓰러져 잤다. 집 앞 층계에 구정물을 좍좍 뿌리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맨발로 그 위로 걸어다니곤 했다. 그녀는 니콜라이와 오리가가 이 집에 온 첫날부터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표쿠라가 그들 부부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이 집의 이런 생활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임자들은 과연 무얼 잡숫고 사시는지 한 번 두고 봐야겠네. 어이구, 저 알량하신 모스크바 나리님네들 말이여..." 그녀는 독을 잔뜩 품은 목소리로 이렇게 빈정거리곤 했다. "흥, 어디 한 번 두고 보잔 말이여!"
이미 9월로 접어든 어느 날 아침이었다. 표쿠라가 저 아래에서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서 두 손으로 받쳐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표쿠라는 새벽 찬 바람에 씻겨서 얼굴이 장미빛으로 건강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대 마침 마리아와 오리가는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얼씨구, 차와 사탕을 잡수신다 그거지?" 표쿠라는 비웃으며 지껄였다. "워낙 고귀하신 귀부인네들은 뭔가 다르다니깐..." 그러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흥, 날마다 차를 홀짝거려? 너 주제에 그게 당키나 한 말이여? 지랄맞을! 너무 처먹어서 배지가 터져 나올라... " 그러면서 표쿠라는 오리가를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며 악을 썼다. "이년아, 모스크바에서 늘상 놀구 처먹어서 그렇게 살이 쪘구나! 이 돼지 같은 계집년아!"
그녀는 작대기를 집어들더니 오리가의 어깨를 후려갈겼다. 두 아낙네는 하도 기가 막혀서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그저 하나님 아버지만 부를 뿐이었다. 표쿠라는 그러고 나서 속옷을 빨려고 냇물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가면서도 계속 집안이 쩡쩡 울리도록 새된 목소리로 계속 오리가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해가 저물었다. 기나긴 가을 밤이 다가왔다. 오두막집에서는 모두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있었다. 표쿠라만 그 자리에서 빠졌다. 표쿠라는 강 건너편에 가 있었다. 누에는 근처의 공장에서 받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 집안 식구가 다 달라붙어도 몇 푼 되지 않아 벌이는 시원찮았다. 한 주일 내내 일해봤자 기껏 20 코페이카 정도 버는 것이다...
"나리님 밑에서 머슴살이 할 때가 훨씬 지내기가 좋았지." 실을 감으면서 할배가 중얼거렸다.
"일을 하고 나서는 먹고 자기만 하면 됐단 말이여. 그런 상팔자가 어디 있겠남, 그래.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스튜와 카샤를 먹고, 저녁에도 스튜하고 카샤가 나온단 말이여! 아, 오이 절임이나 배추 그 따위 것은 배가 불러서 먹지를 못했지. 암, 그렇구 말구! 그래도 그때는 사람들이 법도를 딱딱 지켰단 말이지. 다들 제 분수들을 잘 알고 있었단 말이여!"
하나뿐인 램프에 불이 켜져서 희미하고 무딘 빛을 집안에 비치고 있었다. 누가 램프 앞을 가로막기라도 하면 커다란 그림자가 창문을 가려 오히려 밖의 달빛이 훨씬 더 밝게 느껴졌다. 오시프 할아범은 느릿느릿 쳐지는 말투로 지나간 시절의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주로 농노 해방 이전에는 얼마나 즐겁게 살았던가 하는 얘기들이었다.
이제는 이 고장의 생활이 이렇게 비참하고 지루해졌지만, 옛날에는 곤치이와 보르조이, 보스코프 등 멋있는 개들을 풀어서 얼마나 커다랗게 사냥을 하곤 했던가... 사냥이 한창 고비에 이를 때쯤이면 농사꾼들에게도 보드카를 얼마나 흥청망청 뿌렸던가 하는 얘기였다. 사냥한 새는 마차에 실어 모스크바 젊은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 때에는 나쁜 짓을 한 놈들은 매를 때린 뒤에 토베리의 영지로 보내곤 했다. 그리고 반대로 정직하게 행동한 사람들은 상을 받았다... 할아범은 이런 얘기들을 느릿느릿 늘어놓았다. 할매도 덩달아서 여러 가지 얘기를 꺼냈다. 할매는 온갖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로 옛날 여주인의 얘기를 했다. 그 여주인은 마음씨가 곱고 신앙심이 돈독한 부인이었다.
그러나 그 남편이란 사람은 오입장이 난봉군이었다. 그리고 딸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그렇게 형편없는 사내들과 결혼을 했는지... 하나는 주정뱅이를 남편으로 얻었고, 다른 하나는 보잘 것 없는 장돌뱅이 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다른 하나는 어떤 사내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 달아났다(실은 그 때 처녀였던 할매도 그 사내의 꼬임수를 도왔던 것이다). 그 세 딸은 모두 자기 어머니처럼 비참해져서 신세 한탄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가 할매는 옛날 생각에 젖어 찔끔찔끔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식구들은 모두 두려워서 부르르 떨었다.
"오시프 영감, 하룻밤만 재워 주시구려!"
키가 작은 대머리 노인이 들어왔다. 쥬코버 장군 댁의 그 요리인, 모자를 태워 버렸다는 그 노인네였다. 그는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더니 나머지 식구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기도 옛날 겪었던 일들을 여러 가지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니콜라이는 난로 옆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옛날 나으리들 집에서는 주로 무슨 요리를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비프스테이크와 돼지고기 튀김, 그리고 그런 음식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소스와 수프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나이 많은 이 요리사는 무엇이든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없어진, 오래 전 요리 이름을 늘어놓았다. 가령 소의 눈알로 만드는, '새벽 눈뜨기'라는 요리 따위였다.
"그럼 그 무렵엔 마레샬 돼지고기 튀김 같은 요리는 만들지 않았나요?" 니콜라이가 물었다.
"그런 건 만들지 않았어."
니콜라이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어르신도 별로 대단한 요리사는 못되는 거예요."
계집아이들은 앉거나 눕거나 한 채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어른들이 하는 수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 가득히 우글거리는 아이들은 마치 구름 속에 천사들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야기라면 무조건 다 좋아한다. 때로는 기뻐서, 때로는 무서워서 한숨을 내쉬거나 몸을 떨거나 파랗게 질리곤 한다. 특히 누구보다도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준 할매가 이야기를 할 때면 숨을 죽이고 꼼짝도 않고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두들 묵묵히 잠자리에 들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했던 늙은이들은 젊었을 때가 얼마나 더 좋았던가 하는 생각을 되새기고 있었다. 젊었을 때의 즐거운 기억...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건 간에 그 기억은 사람의 머리에 싱싱하고 감동적으로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은 바로 산 너머에 있다. 그 죽음은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것이란 말인가. 아아, 그따위 것은 차라리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램프의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창이 달빛에 비쳐 환하게 드러났다. 정적 가운데서 그물 침대가 흔들거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것이 어쩐지, 우리의 삶은 이제 다 지나갔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렇게 어렴풋이 잠이 든다... 비몽사몽... 이럴 때 대개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거나 뺨에 입김을 불어대곤 한다. 그러면 벌써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몸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다. 머리 속에는 다시 죽음의 생각이 스며든다.
몸을 한 번 더 뒤척이면 그따위 죽음에 관한 상념 따위는 금방 사라지지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파고든다. 가난과 먹을 양식, 보리 가루 값이 더 올랐더군...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해왔던 그런 생각들이다. 귀찮고 괴롭기만 한 이런 상념들이 온통 머리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 조금 더 있으면 또 다시 우리의 삶은 이제 다 지나갔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이 머리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아, 하나님!" 늙은 요리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농사꾼 - 8. 옛날이 더 좋았지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9 / 전체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