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는 입맛을 다시더니 모자를 집어들고 촌장 네 집으로 걸어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안티프 세데리니코프는 뻬치카 옆에서 뭔가를 땜질하고 있었다. 방안은 석탄 가스가 가득 들어차 역겨운 냄새가 났다. 치키리제프 네 아이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야위고 지저분한 아이들이 마루바닥 위에 뒹굴고 있었다.

촌장의 옆에서는 촌장의 주근깨 투성이 마누라가 누에고치 실을 감고 있었다. 마누라의 배는 보기 싫게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이 집도 별 수 없이 가난하고, 불행한 집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티프 혼자만 몸을 단장하고 스스로 잘났다고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평상 위에는 싸모바르가 다섯 개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할배는 바텐베르히의 초상화에 잠깐 기도를 드린 다음 입을 열었다.

"안티프, 제발 부탁이니, 우리 싸모바르 좀 돌려주우. 이렇게 부탁이오!"

"3 루블을 갖고 오슈. 그럼 당장 돌려줄 테니."

"내게 어디 그럴 여유가 있남? 그러지 말구 좀 봐 달라니깬..."

안티프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뻬치카 불꽃이 나란히 놓인 싸모바르에 비쳐 눈에 들어왔다. 할배는 모자만 만지작거리며 어물거리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애원했다...

"그러지 말구, 제발 도루 돌려줘!"

그렇잖아도 검푸른 촌장의 얼굴이 역정 때문에 더더욱 귀신처럼 시꺼매졌다. 그는 오시프 할아범을 돌아다 보면서 꽉 잠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만사가 다 자치회장의 권한이란 말이여. 오는 26일에 행정회의가 있으니깬, 불평 불만이 있거들랑 그때 와서 서면이나 구두로 제대로 제출하란 말이여!"

오시프 할아범은 촌장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그 말대로 하기로 하고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열흘쯤 지나서 지서주임이 또 다시 마을로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시간 정도밖에 마을에 머물지 않았다. 이 무렵엔 이미 찬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강은 벌써 얼어붙었다. 길이 별로 좋지 않아 사람들은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에 이웃 농사꾼들이 오시프 네 집으로 놀러왔다. 그들은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절주절 지껄여댔다. 주일에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불을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몇 가지 사건들이 화제에 올랐다.

마을의 몇몇 집에서는 체납금의 담보랍시고 닭들을 압수해갔다. 하지만 읍내 사무실로 보낸 이 닭들은 아무도 모이를 주지 않고 버려두는 바람에 모조리 굶어 죽어버렸다. 양들도 압수해갔는데 여러 마리를 한 데 묶어서 마차에 태워 보냈다. 하지만 들르는 마을마다 마차를 바꾸는 바람에 양들 가운데 몇 마리가 지쳐 뻗어서 죽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지금 오시프 네 집에 모인 사람들은 도대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보는 중이었다.

"그야 모두 지방 자치회 탓이지 뭐겄어?" 오시프가 말했다. "그 사람들 아님 누구 탓이란 말여?"

"맞어, 맞어. 결국 자치회가 잘못한 거지 뭐여."

모든 잘못은 자치회 탓으로 돌려졌다. 체납금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들의 횡포나 심지어 농사가 흉년이 든 것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지방 자치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저 부유한 농가 사람들이 자치회 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고 떠드는 것을 들은 탓이었다. 그 부자들은 공장이나 상점, 여관 따위를 소유한 사람들로, 지방자치회의 의원으로 나선 적도 있는 치들이었다. 그들이 자기네 공장이나 술집에서 자치회에서 욕을 퍼붓는 것을 농민들은 주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밖에 눈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하나님이 눈을 내려주시지 않는다... 땔나무를 운반해야 하는데, 길마다 구멍이 패어 있어서 마차가 다닐 수 없고, 걸어 다니기도 곤란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10년이나 20년 전에는 이 주코버 마을의 화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나씩 비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게 있었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훨씬 더 자신에 차 있었다. 노인들은 금 글씨로 인쇄된 칙령에 대한 이야기나 토지 분배, 누군가 새로 사들인 토지, 어딘가에 감춰진 보물 등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뭔가 요긴한 것을 가진 사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주코버 마을 사람들에겐 비밀이란 것이 없어져 버렸다. 그들의 생활이란 것은 누구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화제로 올리는 것이란 기껏 가난한 서로의 형편이나, 양식이 부족하다는 얘기, 눈이 오지 않아서 큰일이라는 따위가 되고 만 것이다...

농사꾼들이 주고받던 얘기가 잠깐 끊겼다. 그러다가 금방 누군가 또 체납금 담보조로 뺏긴 닭과 양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다시 그게 누구의 잘못 탓인가가 입에 올랐다.

"자치회 탓이지 뭐여?" 오시프 할아범이 슬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잖으면 도대체 누구 탓이란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