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주위에서는 농사꾼들이 모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술이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제멋대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입에 담지 못할 쌍소리를 뱉으며 서로 싸우기도 한다. 오리가는 그 다투는 소리를 듣고 치를 떨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말했다.
“아이구머니나, 하나님이시여…!” 특히 그녀가 놀란 것은 할아범 때문이었다. 욕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내일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처럼 보이는 할아범이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계속해서 욕을 퍼부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장의 아이들이나 처녀들은 누구 하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런 것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그런 소리를 들어와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한밤중이 지나자 냇물의 이편과 저편의 모닥불들은 모두 꺼졌다. 그러나 냇가 풀밭과 술집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떠들고 있었다. 할아범과 키리야크는 곤드레가 되어 팔짱을 끼고 어깨를 맞대고 헛간쪽으로 걸어왔다. 헛간에는 오리가와 마리아가 함께 자고 있었다.
“그러지 마라.” 늙은이가 말렸다.
“그러지 마란 말이여… 그 앤 순한 여자여… 벌 받을 짓이란 말이여…”
“마리이아아…” 키리야크가 소리쳤다.
“그만 두라니께… 벌 받으려고 그러냐… 그 앤 착한 애란 말이여…”
두 사람은 잠시 헛간 옆에 서 있다가 걸어갔다.
“우리네는 들에 핀 꽃이 더 좋다나…”
갑자기 할아범이 높고 잘 울리는 테너로 노래를 불렀다.
“풀밭에서 따는 꽃이 우린 제일 좋다나…”
그리고 가래침을 탁 하고 뱉더니 지저분한 쌍소리를 늘어놓으며 오두막집 안으로 사라졌다.
할매가 사샤를 부르더니 채마 밭 옆에 지켜 서서 거위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시켰다.
무더운 8월 어느날이었다. 술집의 거위들이 뒷길로 해서 채마 밭으로 숨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용히 꺽꺽대면서 술집 옆에서 술 찌끼를 주워 먹느라 바빴다. 다만 숫놈 한 마리만이 할매가 작대기라도 들고 쫓아오지나 않을까 망을 보듯이 목을 길게 뽑고 있었다.
다른 거위들은 멀리 냇물 건너 풀밭에 마치 꽃다발 모양으로 모여서 모이를 쪼아먹고 있었다. 사샤는 채마 밭 옆에 조금 서 있다가 거위들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심심해져서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다.
사샤는 거기서 마리아의 맏딸 모티카를 만났다. 모티카는 큰 돌 위에 서서 교회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아는 아이들을 열 셋이나 낳았으나 죽지 않고 자란 것은 여섯 뿐이었다. 그나마 모두 계집애들 뿐이고 아들은 하나도 없었다. 큰 애는 이제 여덟 살이었다.
모티카는 기다란 셔츠를 걸치고 맨발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 쪼이는데도 모티카는 그런 건 알 바 없다는 듯 화석처럼 서 있었다. 사샤는 그 애와 나란히 서서 교회쪽을 바라보다 말을 붙였다.
“교회에는 말이야, 하나님이 계셔. 우리들 집에선 남포나 초에 불을 켜지만, 하나님 집에선 빨갛고 파랗고 쪽빛 등불을 켠단 말이야. 하나님은 밤중에 교회 안을 걸어 다니신다는 거야. 성모님과 성자님과 함께 말이야. 쓰윽-쓱, 이렇게 걸음 소리를 내면서… 그래서 교회지기가 무척 무서워한대! 그리고 말이야, 얘…” 사샤는 엄마 말투를 흉내내서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오면 교회는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린대.”
“그럼 저 조, 종도 함께 가는 거야?” 모티카는 한 음절씩 길게 뽑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종도 올라가지. 그리구, 마지막 날에는 좋은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고, 나쁜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타게 된대. 그래서 우리 엄마나 마리아 아줌마에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 너희들은 아무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오른쪽 천당에 가거라. 그러나 키리야크 아저씨나 할머니에겐 말이지, 이렇게 말씀하실 거야 - 너희들은 왼쪽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해. 고기를 먹은 사람도 불 속으로 가야 한단다."
사샤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말했다.
"하늘을 쳐다보렴. 눈을 깜박이지 말고 말이야. 천사가 보이지 않니?"
모티카도 함께 하늘을 쳐다보았다. 일 분쯤 침묵이 흘렀다.
"보이지?" 사샤가 물었다.
"안 보이는데?" 모티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보여. 아주 작은 천사들이 많이 하늘을 날고 있어. 날개를 움직이면서... 너무 작아서 모기처럼 보여."
모티카는 잠시 땅바닥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를 불에 태우게 되니?"
"그럼, 얘는... 불에 태우고 말고..."
그들이 서 있는 돌에서부터 저 아래 밑까지는 푸른 풀에 덮인 밋밋한 비탈이 이어지고 있었다. 손으로 쓸어주고 싶은, 그 위에 뒹굴고 싶어질 만큼 푹신하게 느껴지는 비탈이었다. 사샤는 누운 채 그 아래까지 미끄럼 쳐 내려갔다. 모티카도 뭔가 무척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함께 누워 미끄럼 쳐 내려갔다. 그 바람에 모티카의 낡은 셔츠가 어깨까지 찢어졌다.
"아이, 우스워!" 사샤는 재미가 있는지 소리를 쳤다.
둘이는 한 번 더 미끄럼을 타려고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때였다. 귀에 익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몸서리를 치며 꼼짝도 못하고 바로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이가 모조리 빠지고 뼈에 가죽만 남은 할매가 짧은 백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긴 장대를 들고 채마밭에서 거위들을 쫓으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
"망할 놈의 거위 새끼들... 저것들이 캐비지를 몽땅 먹어버렸어! 이 때려잡을 짐승들, 이 쌍놈의 것들아! 벼락이나 맞아 뒈져버려!"
할매는 계집애들을 보자 장대를 팽개치고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대나무 가지처럼 비쩍 마르고 왁살스러운 손으로 사샤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사샤는 무섭고 아파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숫거위 한 마리가 목을 앞으로 내밀고 걸음마다 궁둥이를 뒤뚱거리며 할머니 옆을 지나갔다. 거위는 마치 할매를 나무라는 듯 소리를 치며 울어댔다.
그 놈이 제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암거위들이 일제히 그 놈을 환영하듯 울어댔다. - 꿰엑- 꿰에꿱- 꿱꿱! 그러자 할매는 또 모티카를 붙잡고 때렸다. 그러자 모티카의 셔츠가 더 찢어졌다. 사샤는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울어대면서 엄마에게 이르려고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모티카도 따라갔다. 그 애도 울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베이스에 가까웠다.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아 얼굴이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온통 젖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 둘이서 오두막집으로 들어가지 오리가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머니나, 성모님이시여!"
사샤가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도중에 할매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면서 오두막집으로 들어왔다. 표쿠라도 덩달아서 대단치 않은 일을 가지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둘의 고함소리로 오두막집이 떠나가라고 시끄러워졌다.
"그만둬라. 괜찮아." 오리가는 새파할게 질린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분은 할머니야. 할머니가 하시는 일로 화를 내면 못써. 별것도 아닌 일인데 뭘 그러니. 이제 됐어. 괜찮다, 괜찮아..."
니콜라이는 - 벌써부터 이 끊임없이 아귀다툼과 석탄 냄새, 그리고 퀴퀴한 악취가 지긋지긋했다. 가난을 경멸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아내와 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창피했다. 그는 두 다리를 난로 위에서 힘없이 늘어뜨린 채 신경질적인 울음 소리를 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애를 때리지 마세요. 어머니는 저 애를 때릴 권리가 전혀 없단 말이에요!"
"흥, 네깟 것은 방구석에나 뒹굴고 자빠져 있어! 병신 같은 새끼야!" 표쿠라가 독을 품고 그에게 악을 썼다. "도대체 뭘 빌어먹으려고 너 따위가 여기까지 기어온 거야? 이 밥 벌레 같은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