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손님이 왔다고 싸모바르를 준비한 모양이다. 차는 비릿하고 퀴퀴한 맛이 났다. 설탕은 누가 씹다가 뱉어놓은 것처럼 거무스레하고 빵을 담은 접시에는 벌레가 기어 다닌다. 먹는 것도 가슴이 메슥거릴 지경이고 듣는 이야기도 괴로운 것들 뿐이다. 언제나 가난과 병 얘기밖에는 없기에 그렇다... 그런데 식구들이 차 한 잔을 채 다 마시기 전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리를 길게 끄는,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마리아아 - !"
"흥, 키리야크가 온 모양이야." 노인이 중얼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식구들은 숨을 죽였다. 조금 있다가 또다시 거칠고 길게 꼬리를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마리이아아아 - !"
맏며느리 마리아는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뻬치카에 찰싹 달라붙었다. 마리아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미련스럽게 몸집이 큰 여인이었다. 이 못생긴 여인이 얼굴에 공포의 표정을 짓는 모습은 아무래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 뻬치카 위에 아까부터 멍청하게 앉아 있던 그녀의 딸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어댔다.
"정신차려, 이 고릴라 같은 것아..." 역시 어깨가 우람하게 떡 벌어졌지만 비교적 얼굴이 반반한 표쿠라가 마리아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설마,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야?"
니콜라이는 아버지로부터 마리아가 산 속에서 키리야크와 함께 지내는 것을 무척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키리야크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녀를 찾아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그녀를 아주 늘씬하게 두들겨 팬다는 것이었다.
"마리이이야아아 - !" 소리는 이제 바로 문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다들, 제발... 나 좀 제발 살려주... 다들 제발..." 마리아는 마치 찬 물속에라도 던져진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혀 짧은 소리로 애원했다. - "나, 나 좀 살려주우... 제발 다들 날 좀..."
오두막집 안의 애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라 사샤까지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주정뱅이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키가 크고 턱수염이 시커먼 농사꾼이 겨울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램프 불빛이 흐릿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더욱 무섭게 보였다. 바로 키리야크였다.
키리야크는 제 아내 쪽으로 걸어 가더니 느닷없이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정통으로 후려갈겼다. 그녀는 얻어맞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원, 이런 창피한 일이 있나, 원 세상에 이렇게 창피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노인은 뻬치카 위로 기어 오르면서 중얼거렸다. "원 세상에 손님들 앞에서... 저런 천벌을 맞을 놈이 있나!..."
그러나 할멈은 등을 구부리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표쿠라 역시 그저 그물 침대 속의 어린애를 흔들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키리야크는 모두가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리아의 손을 움켜쥐고 문간으로 끌고 갔다. 거기서 한층 더 무섭게 보이려는 듯 짐승처럼 으르렁대다가 그는 언뜻 손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어, 왔구나..." 그는 아내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내 친동생이 처자식을 데리고 이렇게... "
그는 취해서 시뻘겋게 핏줄이 선 눈을 부릅뜨고 비틀거리며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흠, 아우가 처자식을 데리고 부모네 집으로 왔다 그 말이지... 그러니까 그 모스크바에서 말이여, 거 임금님이 계시는 서울 모스크바 말이여... 저 모든 거리의 어머니 되시는 모스크바에서 말이여... 이거 참말 미안허구먼..."
그는 싸모바르 옆의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요란하게 후루룩거리며 차를 들이마셨다... 거의 열 컵 가량이나 차를 앉은 자리에서 더 마시더니 그는 평상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모두들 잠자리로 기어 들어갔다. 니콜라이는 병든 사람이라는 이유로 노인과 함께 뻬치카 위에서 자게 되었다. 사샤는 마룻바닥에서 잤다. 오리가는 다른 아낙네들과 함께 헛간으로 갔다.
"형님,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그녀는 마리아와 함께 나란히 마른 풀 더미 위에 누우며 말했다. "운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저 매사에 참는 것이 제일이에요. 성경에도 써 있잖아요...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치게 하라구요... 그러니 형님이 참으세요."
그녀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이 모스크바 얘기와 거기서 자기네들과 사귀던 집안들 얘기, 식모로 생활하던 때의 얘기 따위를 들려주었다.
"모스크바엔 말이에요, 돌로 만든 굉장히 큰 집이 있어요..." 그녀는 이야기했다.
"교회도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셀 수도 없구요... 큰 집에는 나리님들이 살고 있지요. 훌륭하고 정말 신기한 그런 나리님네들 말이에요."
마리아는 모스크바는커녕 제가 사는 마을의 읍내 동네에조차 가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무식 그 자체였다. 성경 구절 하나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렇게 말할 줄조차 몰랐다. 그들과 조금 떨어져 앉아서 얘기를 듣고 있는 표쿠라 역시 무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 다 오리가가 하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두 사람 다 자기 남편을 끔찍이 싫어했다. 마리아는 키리야크가 무서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고, 그가 집에 와 있으면 치를 떨며 무서워했다. 몸에 찌든 보드카와 담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옆에만 있어도 골치가 지끈지끈 쑤셨다. 남편이 없어서 쓸쓸하지 않느냐고 표쿠라에게 묻자 그녀는 씹어 뱉듯이 대답했다.
"흥, 그까짓 자식!"
아낙네들은 얼마 동안 더 지껄여대다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공기가 으스스해진데다 헛간 부근에서 이따금 닭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은 잠을 깨곤 했다. 밖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면서 새벽빛이 벌써 문 틈으로 비쳐 들고 있었다. 표쿠라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그녀가 맨발인 채로 어딘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사꾼 - 2. 주정뱅이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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