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도 모티카도 다른 계집애들도 모두 집안 한쪽 구석에 모여 니콜라이의 등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숨소리를 죽이고 표쿠라가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작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집안에 오래 살 희망이 없는 환자가 있으면 누구나 내색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한 번쯤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만은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한 집안 식구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지금도 계집애들은 숨을 죽이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니콜라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머지 않아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 가엾어서 동정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니콜라이는 오리가에게 몸을 바짝 기대고 마치 그녀의 보호라도 바라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여보, 오오리야.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집에서 버티지를 못하겠어. 이제는 더 이상 그럴 기력이 없어. 제발 부탁이니 당신이 크라우데야 아브라모브나 처제에게 편지 좀 하구려. 있는 것을 몽땅 팔든지 저당 잡히든지 해서 돈을 좀 보내달라고 해 주오. 우리들이 이 집을 나갑시다. 어이구!"
그는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모스크바를 보고 싶어! 꿈에라도 모스크바를 한 번 보고 싶어!"
해가 저물어 오두막집 안이 어두워지자 입을 뻥긋하기도 귀찮을 만큼 분위기가 우울해졌다. 역정을 내던 할매는 딱딱한 밀기울 빵 조각을 오랫동안 찻물에 적셔가며 우물우물 한 시간 이상 씹어먹고 있다. 마리아는 우유를 짜서 통에 담아왔다. 할매는 그것을 느릿느릿 항아리로 옮겼다.
지금은 성모 승천제의 근신 기간이다. 그래서 아무도 우유를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우유가 고스란히 오붓하게 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할매는 혼자 흐뭇해 한다. 다만 아주 조금만 표쿠라의 아기를 위해 접시에 우유를 따라 놓았다. 할매와 마리아가 항아리를 밖으로 내가자 모티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접시에 담긴 우유를 할매의 빵 부스러기가 담긴 나무 사발에다 쏟아 부어버렸다.
할매는 다시 돌아와 계속 빵 부스러기를 씹기 시작했다. 사샤와 모티카는 할매를 바라보았다. 할매는 근신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이제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둘은 이런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 두 아이는 이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누워 자리에 들었다. 사샤는 졸면서 최후의 심판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질그릇 굽는 아궁이 같은 커다란 아궁이들이 불을 내뿜는다. 그 옆에는 소처럼 머리에 뿔이 솟고 온 몸이 시꺼먼 마귀들이 기다란 몽둥이로 할매를 불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마치 할매 자신이 아까 거위를 쫓던 것처럼...
성모 승천제의 밤 열 시가 넘어, 풀밭에서 놀고 있던 처녀와 청년들이 갑자기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마을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위 언덕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무엇 때문에 그런 소동을 벌이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불이야! 불!" 아래쪽에서 누군가 절망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불이야!"
언덕 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 앞에 무서운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끝에 있는 오두막집 하나가 불에 타고 있었다. 짚을 씌운 지붕에서 불기둥이 2미터 가량이나 솟아오르며 타고 있었다. 불기둥이 회오리 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분수처럼 사방으로 불꽃을 뿌려댄다. 지붕은 순식간에 완전히 다 불길에 싸여 부지직 부지직 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마을 전체가 이글거리는 붉은 불빛에 휩싸여 달빛조차 어두워진 것 같았다. 땅 위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웅성거리고 뭔가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래에서 뛰어올라온 사람들은 모두 숨이 턱에 차고 몸을 떨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고 뒹굴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강한 불빛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더욱 무서운 일은 불길 위로 솟아오르는 연기 가운데를 비둘기들이 날아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술집에서는 불이 난 것조차 모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손풍금을 켜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세묜 할아범 집에 불이 났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거칠게 소리쳤다.
마리아 네 오두막집은 불이 난 곳과 멀리 떨어진, 마을 끝에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쩔줄 모르고 손을 비비고 턱을 까불고 울어대면서 자기네 오두막집 주위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펠트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왔고 아이들은 셔츠 하나만 달랑 걸치고 불난 곳으로 뛰어갔다.
지서에서도 철판을 두드려댔다. 쟁, 쟁, 쟁...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하늘을 달리고 그 소란스러운 음향은 심장을 조이고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나이 먹은 아낙네들은 성상을 끌어 안고 나와 섰다. 양, 송아지, 암소 따위가 길거리로 몰려나왔다. 사람들이 상자나 양가죽, 나무통을 들어 날랐다.
다른 말들을 물거나 걷어차는 버릇이 있어 말 떼 속에 섞이지 못했던 검은색 숫말이 고삐가 풀려 자유롭게 되자 큰 소리로 울어대면서 마을을 뛰어다녔다. 검정 말은 두 번쯤 마을을 뛰어 돌다가 갑자기 짐마차 앞에 서더니 뒷발로 마차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강 건너 교회에서도 종을 치기 시작했다.
불에 타는 집 주위는 뜨거웠다. 그리고 땅 위의 풀 한 포기까지 샅샅이 보일 정도로 밝았다. 간신히 끄집어낸 상자 가운데 하나에 세묜이 걸터앉아 있었다. 코가 빨갛고 털도 붉은 농사꾼 세묜은 신사복을 걸치고 테 없는 모자를 귀를 가릴 만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세묜의 마누라가 기절해 엎드려 있었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여든 살이나 먹은 노인이 모자도 쓰지 않고 하얀 보따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마 틀림없이 이 불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벗겨진 대머리를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집시처럼 얼굴과 머리카락이 검은, 마을의 촌장 안티프 세데리니코프가 도끼를 들고 나섰다. 촌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불타고 있는 집에 달려들어 도끼로 창문을 돌아가며 깡그리 부쉈다. 그는 문 앞의 층계까지 때려부쉈다.
"이봐, 마누라쟁이들... 물을 가져 와!" 그는 소리쳤다. "펌프를 가져 오라구! 빨랑 빨랑!"
방금 전까지 술집에서 떠들어대던 농사꾼들이 펌프를 끌어 내왔다. 다들 취해 있어서 비틀거리며 넘어지곤 했다. 누구나 미덥지 못한 얼굴에 눈물에 고여 있었다.
"이년들아! 물을 가져오란 말이야!"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촌장이 다시 소리쳤다. "빨리 가져오란 말이야, 이년들아!"
아낙네들돠 처녀들이 아래에 있는 샘물쪽으로 달려가서 바께쓰와 물통에 물을 그득 그득 채워서 위로 날라 왔다. 그 물을 펌프에 쏟아붓고는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오리가, 마리아, 사샤, 모티카까지도 나서서 물을 퍼 왔다. 아낙네들과 장난꾸러기 사내 아이들이 펌프를 누르자 호스에서 쉭- 쉭- 하는 소리가 났다. 촌장은 호스 끝을 불타는 집의 문으로 향했다가 창문을 겨누었다가 하면서 손으로 호스 주둥이를 눌렀다. 호스가 더욱 높은 소리를 내면서 물을 뿜어댔다.
"야, 잘한다. 안티프!"
"더 힘껏 해라!"
안티프는 타고 있는 집의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소리쳤다 -.
"자, 힘껏 눌러라! 정교(正敎)를 믿는 여러분들, 이런 재난을 당하면 모두 힘껏 나서서 일해야 합니다!"
농사꾼들은 몰려 서서 팔짱을 낀 채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타고 있는 집 주위에는 노적가리, 건초 더미, 헛간, 마른 나무 더미 따위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키리야크와 아버지인 오시프 할아범도 있었다. 둘은 다 한 잔씩 걸쳐서 얼큰해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만 있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쓰러져 있는 아낙네에게 말했다...
"뭐, 너무 상심 마슈, 아주머니! 이 집은 보험에 들지 않았나요? 뭐 그렇게 울어댈 건 뭐란 말이우?"
세묜은 아무나 붙들고 어째서 불이 났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저 노인네, 보따리를 안고 있는 키 작은 노인네 말이여, 주코버 장군 댁의 일꾼인데... 그 장군 댁에서 요리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말이여... 천국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여, 그 자리가... 그런데 저 노인네가 지난밤에 우리 집에를 와서 말이여... '하룻밤만 묵어 가자'고 그러는 거여...
그러길래 재워주기로 하고 둘이서 한 잔씩 걸치지 않았겠나... 마누라는 저 노인네에게 차 대접을 한다고 싸모바르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아 그런데 싸모바르를 문간에서 끓이는 바람에 그 불길이 똑바루 지붕으로 치솟아서 짚에 불이 붙었단 말이여... 하마트면 타 죽을 뻔했지. 저 노인네는 모자를 태워버리구, 제기랄..."
농사꾼 - 6. 불이 나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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