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리가 오셨다 - 마을에서는 경찰지서 주임을 이렇게 불렀다. 그가 언제, 무슨 일로 오는지는 오기 1 주일 전부터 사람들에게 낱낱이 다 알려져 있다. 주코버 마을은 겨우 40세대에 불과했으나 국고와 지방 자치회에 내야 할 돈의 체납액이 무려 2천 루블이나 된다는 얘기였다.
지서 주임은 마을에 들어서자 일단 술집에 들렀다. 그는 거기서 차를 두 잔 '잡수시고는' 걸어서 촌장네 집으로 갔다. 그 집 주위에는 이미 체납자들을 떼를 지어 몰려 주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촌장 안티프는 아직 나이가 젊지만, 어울리지 않게 무척 까다롭게 구는 작자였다. 스스로도 가난해서 세금이 늘 밀려 있는 주제에 마을의 다른 체납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들들 볶아대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촌장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이를테면 권력을 자각하며 흡족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 때문인지 마을의 모임에서는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여 그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했다.
그는 마을의 길거리나 술집에서 느닷없이 주정꾼에게 달려들어 손을 뒤로 묶어 유치장에 집어넣곤 했다. 한번은 오시프 집안의 할매를 갑자기 붙잡아 유치장에 집어넣고 며칠씩 구류를 살게 한 적도 있었다. 오시프 할아범이 마을 모임에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였다. 할배 대신에 할매를 잡아넣은 것이었다.
촌장은 아직까지 읍내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책이라곤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몇 마디 어려운 문자를 주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그 문자를 빼놓지 않고 써먹었다. 농민들은 그가 입밖에 내뱉는 그 어려운 문자의 뜻도 모르면서 그냥 그가 유식하다면서 존경하고 있었다.
오시프가 자기 집 세금 장부를 들고 촌장 집에 갔을 때 지서장은 집 안 상석에 앉아 있었다. 하얀 턱수염을 기른 늙은 지서장은 잿빛 평복을 입고, 구석에 앉아 무언가 서류에 써 넣고 있었다. 집안은 구석구석 말끔하게 치웠고, 벽에는 온통 잡지에서 오려낸 가지각색 그림들을 붙여 놓았다. 성상의 곁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전(前) 불가리아 공(公) 바텐베르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탁자 옆에 촌장인 안티프 세레리니코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으리, 이 자식이 낼 것은 백 십구 루블입니다요." 촌장은 오시프 차례가 오자 지서장에게 말했다. "부활절 전에 1루블을 내곤 아직 한 푼도 낸 적이 없습니다."
지서장은 오시프 영감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도대체 이유가 뭐야?"
"네, 그저 용서해 주십쇼, 나으리... 각하님!" 오시프는 사지를 벌벌 떨면서 변명을 시작했다...
"그게 말씀입니다... 아, 작년에 류토레츠키 나리께서 저에게... '오시프, 마른 풀을 내게 팔게나, 마른 풀 말이야...' 이러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팔지 않을 수가 없습죠. 그때 저희 집에는 마른 풀이 백 푸드 쯤 남아 있었걸랑요. 며느리 년들이 들판에 가서 낫질을 하루종일 해서 거둬온 것입죠, 네... 그래서 값을 정했는데요... 뭐 잘못된 것은 전혀 없었는데요..."
그는 촌장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중언부언 중얼거렸다. 곁에 서 있는 다른 농사꾼들을 계속 쳐다보면서 그들이 뭔가 유리한 증언을 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얼굴이 벌개진데다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쥐처럼 생긴 눈이 번쩍거렸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그래서 어쩧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얘긴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지 않으냐 말이다!" 지서장이 도중에 말을 가로챘다. "지금 내가 너에게 묻는 것은 왜 체납금을 마저 내지 않느냐 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너희 자식들은 모조리 세금을 체납한 놈들이야. 지금 그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자는 거야, 뭐야?"
"아뇨,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저 제게는 돈이 없어서..."
"각하, 이 자식들 수작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항상 입에 발린 말로 발뺌을 하려는 것 뿐이니까요." 촌장이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사실 이 치키리제프 네 집은 빈민 계층에 넣어야 하겠지만, 그 원인은 다른 게 아니고 모두 보드카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게으르기는 이루 말할 수 없죠. 한마디로 도저히 구제불능인 인간들입니다."
지서장은 서류에 뭔가 적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는 부드러운 말투로 오시프에게 말했다. 마치 냉수라도 한 그릇 청하듯 그렇게 나긋나긋한 말투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
지서장은 금방 자기 일을 끝내고 마을을 떠났다. 그가 싸구려 자가용 마차에 몸을 싣는 모습, 쿨룩쿨룩 기침을 하는 모습, 길고 비쩍 마른 얼굴의 표정을 보아도 그가 이 마을의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머리에는 오시프나 촌장, 주코버 마을의 세금 체납자 따위는 아에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자기 개인의 문제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가 마을을 떠나 채 5베르스따도 가기 전에 주코버 마을에서는 안티프 세데리니코프가 이미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재빨리 치키리제프 네 집에 쳐들어가 싸모바르를 압수해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 뒤를 할매가 쫓아가고 있었다. 할매는 앞가슴을 다 풀어헤친 채 쇳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못 가져간다! 이 날강도 같은 놈아! 도로 이리 내놓지 못해! 이 순 강도 같은 자식아!"
촌장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발걸음을 크게 띄어 할매와의 거리를 넓힐 뿐이었다. 할매는 허리를 굽히고 숨이 턱에 차서 얼굴 표정을 완전히 일그러뜨린 채 그 뒤를 쫓았다. 머리에 쓴 수건이 어깨로 흘러내리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백발이 바람에 헝클어졌다. 그러다 할매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깡패들처럼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악을 써댔다. 커다란 목소리로 울부짖는 것이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하나님과 정교를 믿는 여러분들! 내 말 좀 듣소! 저 놈이 사람 잡네! 사람을 잡아! 등골을 뽑아가네! 아이구 여러분들! 사람 좀 살리소!"
"이봐 할멈! 할멈!" 촌장이 화를 버럭 냈다. "왜 이 지랄이야! 찢어진 아가리라고 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싸모바르가 없어지니 치키리체프 네 오두막은 더욱 처량하게 되었다. 싸모바르가 없어진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마치 오두막집의 명예라는 게 있고, 그게 누군가에게 박탈되어 모욕과 수치를 당한 것 같은 몰골이었던 것이다. 촌장이 만약 탁자나 의자, 또는 무슨 항아리 같은 것을 가져갔더라면 이렇게 허전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매는 계속 욕설을 퍼붓고, 마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계집애들도 덩달아 모두 목을 놓아 울어댔다. 할배는 모두 제 잘못이라고 나무라는 것 같아 방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고개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니콜라이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동안 할매는 그를 측은하게 여겨 무척 잘해 주었고 지금은 그런 생각마저 모두 잊고 그에게까지 삿대질을 해가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 이건 모두 네 놈 잘못이야! 네놈은 집에 보내는 편지마다 '스라비얀스키 파자르 호텔'에서 매달 50 루블씩 받는다고 떠벌리지 않았더냐? 그런데 집에는 그렇게 조금밖에 돈을 보내지 않았더냐? 겨우 풀칠도 못할 몇 푼 말이야! 그러더니 뭐하려고 이 똥구녘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에 돌아왔어? 처자식까지 줄줄이 데리고 말이야! 네 녀석이 죽는 날에는 도대체 무슨 돈으로 장사를 치르란 말이냐?
몰골이 이쯤 되고 보니 니콜라이와 오리가, 그리고 사샤의 처지는 차마 옆에서 지켜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농사꾼 - 10. 옆에서 보기도 민망한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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