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는 동안에도 철판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강 건너 교회에서도 계속 종이 울렸다. 오리가는 온 몸에 불빛을 받으며 언덕을 위아래로 뛰어다니느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얀 양들이 벌건 색으로 보이고 연기 속을 나는 비둘기들도 불빛을 받아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그녀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날카롭게 찌르는 것 같았다.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사샤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아닐까?
드디어 우르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타던 집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오늘 밤 안으로 마을 전체가 몽땅 쑥밭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는 맥이 풀려 바께쓰를 내려 놓고 언덕 위에 주저앉았다. 물을 더 이상 퍼 올릴 기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녀 주위 위 아래로 다른 아낙네들도 큰 소리로, 마치 사람이 죽어서 애곡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슬피 울어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강 건너 지주 댁에서 관리인과 하인들이 달려왔다. 두 대의 마차에 나누어 타고 펌프를 싣고 달려온 것이다. 그 뒤를 이어 하얀 여름옷의 앞가슴 자락을 풀어헤친 대학생이 말을 달려 쫓아왔다. 아직도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학생이었다.
도끼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아직까지 불타고 있던 대들보에 사다리가 걸쳐지고 다섯 사나이가 거기에 기어 올랐다. 제일 앞에는 아까 그 대학생이 나섰다. 대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지휘하고 있었다. 불 끄는 데 익숙한 모양이다. 그들은 오두막집을 때려부수고 가축 우리와 싸리나무 울타리, 노적가리 따위는 불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저 놈들이 집을 부수지 못하게 해라!" 군중들 가운데에서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부수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키리야크가 그 말을 듣고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앞서 험악한 얼굴로 오두막집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지주 댁 하인 하나가 그를 붙잡아 휙 돌려세우더니 턱을 보기 좋게 한 대 먹였다. 와 하는 웃음 소리가 군중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키리야크는 하인에게 한 대 더 얻어맞고는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구경꾼들 가운데로 돌아왔다.
강 건너편에서 이번에는 모자를 쓴 어여쁜 처녀 두 사람이 달려왔다. 아마 아까 그 대학생의 누이들인 모양이다. 두 처녀는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불을 보고 있었다. 집에서 끄집어낸 통나무들은 이제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연기를 엄청나게 뿜어대고 있었다. 대학생은 호스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이리저리 물줄기를 뿜어댔다. 불타는 나무 때로는 농사꾼들이나 물을 나르던 아낙네들이 물줄기를 뒤집어썼다.
"조루지!" 처녀들이 나무라듯, 걱정이 되는 듯 대학생을 소리쳐 불렀다. "조루지!"
불은 다 꺼졌다.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에는 이미 날이 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미 날이 새고 있다는 것, 다들 얼굴이 연기에 그을려 창백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하늘의 마지막 별이 사라질 때쯤에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농사꾼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주코버 장군 댁의 그 요리사 노인네 이야기를 했다. 그 노인네 모자가 타 버렸다면서? 그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장난을 쳤다. 불이 난 것이 마치 좋은 농담거리라도 되는 모양이다. 오히려 이렇게 불이 빨리 꺼진 것이 아쉬운 심정인지도 모른다.
"도련님, 정말 불을 잘 끄시더군요." 오리가는 대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같은 분이 우리 모스크바에 계시면 참 좋을 텐데... 거기서는 매일같이 불이 나거든요."
"그럼 자네는 모스크바에서 왔나?"
아가씨 가운데 하나가 오리가에게 물었다.
"그렇답니다. 우리 주인 양반이 전에 스라비얀스키 파자르 호텔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리고 애는 제 딸이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샤를 가리켰다. 사샤는 추워서 엄마에게 바싹 붙어 서 있었다. "이래 봬도 이 애는 모스크바 태생이랍니다."
두 아가씨는 프랑스 말로 대학생에게 무언가 얘기를 했다. 대학생은 20 코페이카 은전을 하나 꺼내더니 사샤에게 주었다. 오시프 할아범이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범의 얼굴이 갑자기 희망에 찬 듯 밝아졌다.
"나으리, 하나님 덕분에 그래도 바람이 없었습죠..." 그는 대학생을 향해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한 시간 안에 몽땅 다 타버렸을 겁니다요, 나리님, 마나님..." 그는 머뭇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헤헤, 그런데 나으리 새벽에는 무척 춥습니다. 소인도 몸이 얼어붙어서 좀 녹여야 할 텐데... 헤헤, 반 병만 받아 마실 수 있게 해 주십쇼, 나리님... 헤헤."
그러나 대학생은 할아범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오두막집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오리가는 벼랑 끝에 지켜 서서 대학생 일행이 강을 건너는 것, 그리고 풀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 건너편에 마차가 서서, 대학생 일행이 건너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 감동했다. 오두막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훌륭한 분들이에요. 정말 아름답고... 그 아가씨들은 정말 천사같지 뭐예요..."
"그 빌어먹을 연놈들을 모조리 여덟 조각으로 갈가리 찢어놔야 하는 건데, 빌어먹을!" 반쯤 졸고 앉아 있던 표쿠라가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농사꾼 - 7. 그 빌어먹을 연놈들을...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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