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 모군 모동에 사는 황발(黃潑)이에게 선공감 가감역을 시킨다는 직첩이 내리게 되었다.

 

한 개의 희극은 전개되었다. 군속들이 나라의 직첩을 받들고 풍악이 자지러지게 황발이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황발이의 기특한 행동이 위에까지 달하여, 선공감 가감역을 시키라는 분부가 내렸다는 말을 전하였다.

 

불러 보니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고 한 마리의 개였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제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요 개'라고 도로 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군속들은 연지구지하였다. 그런 뒤에 한 가지의 방책을 안출하였다.

 

황발이의 집에 언젠가 도적이 든 일이 있는데, 그 때 황발이가 몹시 짖어서 도적은 목적을 달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군속들은 이 소문을 캐내어 가지고, 이것을 구실삼아 어리석은 과부를 속였다. 이 황발이의 기특한 소문이 나라까지 올라가서 성은(聖恩)이 금수에까지 미쳤다는 기괴한 결론을 빚어 낸 것이다.

 

이러한 기괴한 말은 과부를 몹시 기쁘게 하였다. 재산은 있으나 미천하던 자기의 집안이, 이제는 개의 덕으로 이 근린의 당당한 명문이 되려니 하였다. 그래서 흔연히 벼슬을 받기로 하였다.

 

상납전(上納錢) 팔천 냥, 중비(中費) 삼천 냥을 지출하였다. 그리고 황발이는 가감역이 되었다.

 

그 뒤부터는 과부는 개에게 비단 옷을 지어 입히어 가지고 자랑스러이 늘 나다녔다. 그 뒤부터는 그 집을 뉘라서 감히 황발이네 집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당당한 '황 감역(黃監役)의 댁'이었다.

 

이 양반 개는, 그 뒤 몇 해를 더 살다가 늙어 죽었다. 개는 죽은 뒤에도 그 집은 역시 '황 감역의 댁'이라 불렀다.

 

성은이 금수에게까지 미친 것이었다.

 

××감사 모는 재임 일곱 달 동안에 수십만의 재산을 만든 사람이었다.

 

당시의 방백들이 행한 온갖 일을 다한 뿐 아니라, 지혜 많은 그는 그의 독창적 취재법까지 발명한 것이었다.

 

관내의 부민들을 모두 긁어 먹는데, 혹은 벼슬을 갖다 씌워 주고 상납전을 벗겨 먹고 중비를 받아 먹으며, 혹은 명목 없는 죄를 씌워 가지고 잡아다 옥에 가두고 뒤를 두드려서 뇌물을 받아 먹고, 혹은 한협으로 받아먹고―이런 별별 짓을 다 하여 벗겨 먹을 대로 벗겨 먹기는 하였는데 아직도 먹지 못한 부민들이 많았다.

 

너무도 자꾸 벼슬을 시키거나 잡아다 가두기도 어색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한 가지의 묘책을 안출하였다.

 

가사는 어떤 날 한 부민(富民)을 불렀다. 그리하여 첫째로는 그 백성이 덕이 많음을 칭찬하고, 그런 뒤에 이런 말을 하였다.

 

나라에서는 이즈음 재정도 곤핍하고 강기도 매우 퇴폐되었으므로, 그 진흥책으로 각 곳에 덕 있고 재간 있는 재산 있는 사람들을 모두 골라서 벼슬을 시키기로 하여, 그 가운데는 당신도 끼었으니, 치하 드리노라―이런 뜻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좀 상세히 변역하자면, '나라에서는 재정이 곤핍하여 지금 재산 있는 백성들에게 벼슬을 팔려는데, 당신도 그 축에 끼었다.'하는 뜻이었다.

 

벼슬을 하나 하자면 상납전이라 중비라 하여ㅡ적어도 이삼 만냥은 걸린다. 그래서, 백성은 감사에게 재쳐서 얼마쯤이나 들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감사는 미리 조사한 바 그 백성의 재산이 합계 삼만 냥쯤 되는 줄을 짐작하면,

 

“아마 못해도 이만 오천 냥은 걸리겠소.”

 

대답하였다.

 

부민에게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만 오천 냥을 내고라도 어떤 고을 수령이라도 되면 밑천 뽑을 길도 있겠지만, 감사의 말하는 벼슬은 명예직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벼슬을 한달사 혹은 뽐내기는 할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생활은 파멸이 되고 말 것이다.

 

백성은 제 집으로 돌아가서부터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신다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 벼슬을 하면 이튿날부터는 굶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나라에서 주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이리하여 누워 있는데 어떤 날 호방(戶房)이 이 백성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