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정계(政界)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여기 몇 개의 에피소우드로써 그 상황을 말하여 보겠다.
함경도 사람 홍순필―서울 올라와서 물을 지고 있었다. 순필이의 동생도 역시 형과 같이 물을 져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나이가 스물, 얼굴이 예쁘장스럽게 생겼다. 그 동생이 우물에서 늘 물을 긷는 동안에, 어느덧 나주 합하 양씨(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집 하인과 사귀게 되었다. 사귀게 되자 그 집 행랑에도 놀러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음탕한 양씨의 총애까지 사게 되었다. 동생이 양씨의 총애를 사게 된 얼마 뒤에 형 되는 홍순필은 함경도 어떤 고을의 수령을 배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젯날까지의 물장수는 당당한 현령이 되어, 양씨의 주인 하옥 김좌근에게 이끌리어 상감께 사은 숙배를 하러 입궐을 하였다.
몸에 어울리지 않는 관복을 입기는 하였다. 양씨며 하옥에게 말을 많이 들었거니, 꼴은 되었건 안 되었건 곡배(曲拜)를 드리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장관이었다.
“노형이 나랏님이오? 처음 뵙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함경도 아무 데 사는 홍순필이라는 사람이오.”
이 현령은 상감과 통성명을 한 것이었다.
어진 상감이었다. 그 위에 전생을 초라히 지난 상감이었다. 상감은 이 무지를 관대히 보았다. 그리고 쓴웃음만을 웃었다. 당신의 전생을 생각하여 순필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면의 책임자인 영의정 하옥 김좌근이 가만히 볼 수가 없었다. 유사 이래로 고금 동서를 무론하고, 국왕과 통성명을 한 유일인인 홍순필을 하옥은 황황히 끌고 도로 나왔다.
임지(任地)에 부임을 함에 임하여, 이 현령은 다시 상감께 하직을 고하러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이전의 망신을 미루어, 하옥은 끈끈히 홍에게 말을 주의시켰다.
임금께는 상감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자기를 가리켜서는 신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온갖 말에 지극히 존경하는 말을 써야 한다고 누누이 일러 주었다. 이리하여 다시 입궐한 때였다.
얼마 전에 창피를 당한 이 현령은, 이번은 그 날의 실패까지 모두 회복하려고 잔뜩 마음을 벼르고 들어가는 참, 하옥이 절하기 전에 먼저 덥썩 절을 하고 주저앉았다.
“여봅쇼 상감, 며칠 전에는 진실로 안 됐사와요. 그 때 내―아니―저…”
말이 막혔다. '신'을 잊었다. 그, 저, 한참을 어물거렸다. 무슨 발에 신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미투린지 갖신인지 버선인지를 잊었다. 그래서 한참 어름거리다가,
“버선이 그만 알지를 못 했사와요.”
하여 버렸다.
상감도 알아 듣지 못하였다. 하옥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름어름 지났다. 이리하여 무사히 하직을 고하였다. 이 현령이 대궐에서 나와서 자기의 동생에게 한 술회―
“임금에게는 저를 기껏 낮추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나'라지를 않고 '버선'이라고 기껏 낮추 한단 말이로다.”